심리상담 받기를 망설이는 분들께.
요즘 상담센터는 전국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만큼 상담실 문턱은 낮아졌습니다.
구본용 교수님께서 한국상담심리학회 칼럼에 쓰셨던가요? 상담센터가 약국만큼 많아지면 좋겠다 생각하셨대요. 현실이 되었습니다. 요즘에 어느 도시든 몇백미터에 하나씩 심리상담센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 가까이 심리상담 서비스가 들어왔는데 정작 필요한 분들의 심리적 장벽은 참 높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울은 마음의 감기야.’ 하며 쉽게 문을 열지만요. 어떤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고 몇 개월을 참다 발을 내딛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서울에서 처음 자취생활을 하며 대학원 다니던 중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얼마나 우울하던지요. 힘들어도 꾹꾹 참았는데 당시 학교생활과 사회생활까지 겹쳐 힘들었던 저는 정신과 문을 열고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심리대학원을 다녔던 저도 상담을 받기가 어찌 그리 어려운지 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상담을 받을지에 대해 꽤 오랜 시간 생각하는데 일반인들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먼저 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처음에 대학원 학생상담센터에서 짧은 상담을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내가 남자친구 탓을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지행동치료를 받고 생각의 오류 중 ‘일반화’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책임회피였습니다. 학생상담센터는 10회에서 20회 안팎으로 회수가 정해져 있기에 장기상담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상담자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의 하나로 5년 동안 개인 정신분석을 받았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콤플렉스를 가졌는지, 나의 뿌리인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지, 강점, 약점은 무엇인지 나에 대한 다면적이고 입체적 이해가 생겼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상처)’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이상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콤플렉스(열등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이상 콤플렉스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일어난 일이었을 뿐이고 과거의 나는 마음이 아팠지만, 현재에도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제 안의 8살 내면 아이가 아닌 마흔 살의 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옛날 개그 프로그램 ‘노브레인 서바이벌’에서 정준하님이 아이 분장을 하고 세살이라고 하잖아요? 어떤 사람이든 자기 안에는 그렇게 어린이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함께 데리고 어디든 같이 가는 거죠.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에 보면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상처는 최근 것부터이겠지만, 최근의 상처를 치유하면 할수록 내면 아이가 자랍니다. 어렸을 때의 나처럼 불필요한 긴장,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 지적할까봐 미리 방어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이들은 묻습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서 어떤 효과를 봤냐고요. 첫 번째 효과는 자기이해입니다. 두 번째는 상처(트라우마) 치유입니다. 세 번째는 삶의 방향,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에너지를 균형 있게 효과적으로 쓴다는 것입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더라도 그것이 상처가 아님을 압니다. 사고, 천재지변, 상실 등 실재하는 외상이라고 해도 예전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생깁니다.
이렇게 읽고 나니 이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요?
글로는 잘 와닿지 않습니다. 경험해봐야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죽고 사는 문제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칼 융이 자신의 내담자에게 등산을 가지 않도록 당부했는데 그 내담자는 융의 조언을 듣지 않아 실족사했습니다. 비교가 적절하지 않지만 투자를 생각해보세요. 투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투자 교육을 듣는데 돈이 많이 드는데 뭐 때문에 설명회에 갈까요? 바로 그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상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투자한 비용보다 나를 아는 것이 투자비용보다 더욱 심리적 자본을 늘리게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러 스트레스가 겹쳐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서야 상담센터에 방문합니다. 물론 아동 청소년은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권유에 오기 때문에 제외하고요. 상처가 곪아 터지기 직전에 치료해달라고 내미는 격이니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하는 심정이 됩니다. 마치 수술실에서 응급의가 골든타임을 놓친 기분이 듭니다.
심리상담을 받으려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마음이 힘들다는 증거입니다.
상당한 우울감, 불안을 느끼는 것은 자기를 봐달라는 호소입니다.
갑자기 눈물이 울컥 쏟아지는 것이나 통제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눈물은 힘들다고 말하지요. 자기돌봄이 필요하다는 신호들입니다.
물론 심리상담이 능사는 아닙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많습니다.
명상, 요가, 운동, 독서, 글쓰기, 등산, 요리, 각종 예술활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치료적 효과가 있습니다.
<평화가 깃든 밥상>의 저자 문성희님처럼 바느질 명상만 제대로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말씀드리면, 첫째 그것을 숙제처럼 애써서 하는 게 아니라, 진심 즐거워서 몰입하면 됩니다. 둘째 그 행위를 하면서 자기 대화, 즉 소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아래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정신적인 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극, 잡념이 들어오면 그것이 나가는 과정으로 알아차림과 표현이 필요합니다.
명상가나 수도자들은 알아차림만으로 가능할 거고요. 보통 사람들의 표현이란 글쓰기, 대화입니다. 제가 상담했던 한 내담자는 등산을 열심히 다니셨어요. 하지만 산을 오르는 행위에만 몰두하셨지, 대화는 이뤄지지 않아 자기이해가 어려우셨습니다.
위의 두 가지를 지킨다고 해도 상담과 나머지 것들이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담에만 ‘관계’라는 치유 요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상담을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상담자’라는 타인이 치유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것도 사람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상담자라는 사람이 바로 관계이자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패턴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그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인상, 말투, 행동이 있습니다. 그에 따른 나의 반응도 사람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이쯤에서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가 말이 많아지는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가 듣고만 있지 않나요? 아니면 어떤 이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데, 어떤 이의 분위기는 무겁고 진지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런 관계가 상담실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집니다. 마치 영화 속에 주인공과 조연들의 말과 행동이 펼쳐지는 것처럼 상담실이라는 스크린에 상담자와 내담자의 말과 행동이 비추어집니다. 상담자, 내담자 모두 어떤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 내담자가 이야기하는 고통, 괴로움은 상담자에게도 전달됩니다. 그것을 완전히 똑같이 느낀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담자도 사람인지라 텔레파시처럼 느끼기도 하고, 내담자가 말하지 않고 속에 담고 있는 것을 먼저 말하기도 합니다. 소름 끼치는 영매처럼 말입니다.
내담자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뿌리는 과거에 있습니다.
상담의 치료 요인 중 하나는 ‘자기 대화’입니다.
자기와의 연결이 끊겨있기 때문에 상담자라는 도구를 통해 스스로의 욕구, 감정, 생각, 행동과 연결됩니다. 자기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와 연결됩니다. 상담이 만능일 수 없고 갑작스럽게 로또 맞은 것처럼 삶의 큰 변화를 주지는 않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도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원래 내 안정된 감정과 생활로 돌아갑니다. 변혁, 혁신이라는 단어처럼 하루아침에 삶을 180도로 바꿨다 하는 사람들은 거의 사고, 질병으로 인해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심리상담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서서히 변화합니다.
상담사들끼리는 얘기합니다. 그 각도는 처음에는 1도도 안 되지만 죽기 전에는 몇십도로 벌어진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상담실에 오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되면, 안 그래도 약해져 있는 정신에 또 다른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내담자들은 상담에 가고 싶지만 가기 싫기도 합니다.
실제로 상담실에 꾸준히 오는 내담자들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상담 시간을 잊기도 하고 늦게 오기도 합니다. 갑자기 예약을 바꾸거나 연락 없이 안 오는 것도 예사입니다. 이런 것을 ‘저항’이라고 해요.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만큼 나는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저항은 상담을 시작한 다음에 다루어야 할 것이지,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저항을 걱정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선 첫 상담을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첫 번째 상담사 혹은 정신과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두 번째, 세 번째 다른 사람을 만나보면 됩니다.
정남운 교수님은 농담처럼 정반합의 원리로 세 번째 상담자가 제일 궁합이 잘 맞는 상담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저도 세 번째 분석 선생님과 제일 잘 맞았습니다.
상담이나 상담사가 나와 맞을까 안 맞을까 고민하기 전에 상담을 경험한 후 결정하면 됩니다. 상담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미 혼자 견디기에 힘들고 지쳐 한계에 이르렀다는 뜻이거든요.
용기 내길 바랍니다.
질문 1. 심리상담을 받는다면, 어떤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질문 2.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던 때가 있었나요?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질문 3. 상담을 받고 싶었을 당시 어떤 일이 있었나요?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적어보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질문 4. 그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상담 외에 어떤 노력을 했나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질문 5. 노력 후에 어떤 결과가 있었나요? 만약 심리상담을 받았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예상해서 적어보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질문 6. 상담 후 변하고 싶은 내 모습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기록해보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질문 7. 상담을 받는다면, 어느 기관에서 어떤 상담분야, 어느 상담자가 좋을지 대략 예상해서 메모해보면 좋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한국상담심리학회 홈페이지(http://www.krcpa.or.kr) 첫 화면에서 일반인을 위한 페이지에 가면 전국에 있는 상담전문가, 상담심리사를 검색하실 수 있습니다.
상담 분야, 소속기관, 자격증 급수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