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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Feb 27. 2019

뜬금없지만 정육점 비교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매출을 좌우합니다.

정육점 세 곳을 비교하려 합니다.

첫 번째는 신혼 때부터 살았던 서울 집 근처 어느 아파트 상가 안 정육점 사장님이요.

요리에 서툴러 고기의 어느 부위를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대략 난감이었죠.

국거리 달라고 하면 알아서 주실 줄 알고 이야기했더니 어느 부위인지 정확하게 이야기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살펴보며 고르고 있는데 어지간히 제 모습이 답답했나 봅니다.

장사를 몇 년 하셨는지는 몰라도 한 자리에 오래 하셨던 것 같고 나처럼 단박에 얘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나 봐요.

저한테 뭔가를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습니다.

눈빛이 참 무서웠습니다. 그 눈매는 뭔가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말투는 냉동된 고기처럼 차가웠죠.

순간, 살의가 느껴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았거든요.

대체 왜? 뭐 때문에 갑자기 그런 눈빛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뭔가 그 이전에도 화가 났거나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느꼈을 짜증이 북받쳐 그랬을까요?

저도 덩달아 화가 확 올라왔지만 참았습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잘 참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칼을 들고 있지 않냐고.

칼 든 사람이 뭘 어떻게 할지 아냐고. 나는 그 생각까지 하진 못했는데 내 앞에서 잘 간 칼로 내내 고기를 썰던

그 아저씨가 분명 있었는데 내가 쭉 지켜보고 있었으니 아마도 직관은 알고 있었으리라.

거기서 내가 한 마디 더 해서 상대를 열 받게 하고 뭔가 서로 공격적인 언쟁을 쭉 하다 보면 내가 분명 위험해질 거라는 걸.

결론은 그 이후로 한 번도 그 정육점에 간 적은 없습니다.

두 번째, 작년에 이사 온 아파트에는 정육점이 하나 있었어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여기 사장님도 역시 말씀이 별로 없으세요.

저와 사장님과의 대화는 그저 이거요. 저거요.라는 지시대명사 정도...

사실 거의 할 말이 없었죠. 제가 물어본 건 오늘은 어떤 고기가 좋아요? 나 아니면 고기를 가지고 오거나 잡는 날이 언제? 정도..

세 번째, 아파트 상가 내 정육점이 새로 생겼어요.

두 번째 정육점 사장님께 정말 죄송하지만, 새로 연 곳은 첫 판매가 중요해 좋은 고기를 가져다 놓을 거니까....

한 번 가보았어요.

이 사장님 뭔가 다릅니다.

사장님들 나이는 지금까지 거의 40대~50대 남자분들이었는데 과묵하셨거든요.

이 분은 고기를 다듬으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어우 이 고기 진짜 맛있겠다! 이 부위가 맛있는 거예요. 색깔 좀 봐. 하면서 혼잣말하십니다.

저는 옆에서 그저 거들 뿐입니다. 추임새로 맛있겠다, 좋다고만 하면 됩니다.

돼지고기에 잡냄새가 없고 고기 종류에 관계없이 맛있었어요.

두 번째 사장님께 배신이지만, ㅠㅠ

명절 앞둔 어느 날 가게에서 장을 봐서 들어가느라, 귤 한 박스에 이런저런 식재료를 들고 정육점에 들어가는데

문을 열어 주시면서 "어이구 이런 걸 안 사 오셔도 되는데..."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웃고 말았습니다.

소고기를 많이 산 날은 여기 있는 채소 다 가져가세요. 하면서 인심 쓰듯 말씀하시고

뭔가 물어보면 친절하게 답을 다 해주십니다.

워낙 궁금한 게 많아 남들이 지나칠만한 것도 자잘하고 소소해 그냥 들어도 까먹을 걸 저는 물어보거든요.

귀찮으실 수도 있는데 부위며 어디를 먹으라는 둥, 보관은 어떻게 하라는 둥 일일이 참견해주세요.

명절 때 선물세트도 많이 팔았다고 하십니다. 저도 하나 들고 가는데 든든하더라고요.

고기 하나에도 믿음이 가서요.

필요한 고기는 미리 알려주면 자기가 따로 주문해놓겠다며 칠판에 써놓으셨습니다.

고객 응대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화하며 뭐가 필요하고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아는 게 참 중요하죠.

실제 매출과 연결되는 거니까 사장님들께서 좋은 고기를 공급하는 품질도 신경 쓰셔야겠지만,

고객과 상호작용이 더 매출과 연결될 거라고 봅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말'보다 눈빛이나 태도의 비언어적인 대화가

훨씬 더 명확하고 사람과 연결을 끊거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드는 윤활유가 됩니다.

제가 첫 번째 말한 분의 눈빛과 태도를 잘못 지각하고 다르게 본 거일 수도 있지만,

첫 번째 사장님의 고통은 보지 못한 게 분명하죠.

만약 내가 사장이라면?

하고 질문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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