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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Aug 02. 2019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컴퓨터 바탕화면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진 휴양지의 바다 풍경을 미친 듯이 방출해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콤비네이션 펀치에 넉다운된 지 오래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우리의 그것과는 달리 너무 맑아 기분까지 좋게 만들어 주는 하늘과 몸과 마음에 찌든 때도 말끔히 씻겨 줄 새파란 바다까지, 회색도시에서 이 망할 놈의 무더위를 상대하고 있는 지금의 나와는 대조되는 장면 들이다. 방구석에 처박혀 입고 있는 티셔츠로 얼굴과 목의 땀을 닦으며 선풍기로 연명하고 있는 나는 땅바닥 여기저기를 뒹굴며 몸부림치다가 지쳐 아가미만 벌렁이고 있는 물고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여름을 보내면 후회할 거야',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재밌는 것에 도전해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서핑'이 떠올랐다. '나는 파도를 가르는 서퍼가 될 거야' 외국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집 앞 슈퍼마켓 가듯 서프보드 달랑 들고 바다로 뛰어들어 서핑을 즐기고 서핑이 끝나면 근처 카페나 펍에 들러 맥주 한 잔 하며 수다를 떠는 장면은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무릉도원이라고 할까.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만 가면 해변이 나온다.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비치에 있을법한 큰 야자수가 줄지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닷속 산호가 보일 정도로 에메랄드 바다는 아니지만 (게다가 영화 속 쭉쭉빵빵 외국인을 만날 확률도 현저히 낮지만) 그래도 서핑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파도가 쳐주는 몇몇 해변이 있다. 



보통 서핑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바다 근처 서핑 스쿨 찾아가 이론 교육을 듣고 체험을 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투자 대비 불만족스러울 것을 감안하여 나는 마음대로 유튜브를 통해 10분짜리 영상 하나 달랑 보고 바다로 향했다. (그것도 서핑을 배우고 영어 공부도 한다는 일타쌍피 미명 하에 외국 콘텐츠를 선택해 기본 동작 몇 가지만 익히고 갔다) 바다에는 역시나 20명 남짓되는 교육생들이 그룹을 지어 모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온 사람은 나 밖에 없는 듯했다. 교육생들은 샵에서 대여해주는 같은 색깔의 서프보드로 연습하고 있었고 나만 덩그러니 다른 색상의 서프보드 위에 올라타 있었다. 실력이라도 좋으면 옆 교육생들이 부러워하는 눈으로 쳐다보겠지만 급하게 10분짜리 영상 하나 보고 달려왔는데 파도가 저절로 타질 일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Now or Never', 'Act first, Reflect later'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보드 위에 중심을 잡고 엎드려있는 아주 기본 적인 동작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부들부들 몸을 떨며 수차례 풍덩하며 빠졌다. 처음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할 때 쪽팔림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옆에 사람들이 보고 비웃지는 않을지 힐끗힐끗 주위를 살피게 된다. (반드시 이 쪽팔림을 무릅쓰고 일어나리라) 파도에 치이고 몇 초 서보지도 못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우연히 오래 서 있기라도 (대략 3초?) 하면 기분이 좋아져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그때 대학 시절 친구들과 스키장에 가서 처음 스키를 탔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여러 차례 넘어져 엉덩이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너무나 재밌어서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스키 강습을 찾아봤더랬지. 그런 거 보면 나는 타는 것들을 (자전거, 스키, 보드..) 꽤나 좋아하는 듯하다. 준비과정이 조금 귀찮더라도 해수욕도 즐기고 서핑도 하고 역시나 집 밖으로 나와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바다에 둥둥 떠서 석양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덤이다.  




수영장에서만 수영을 해본 사람은 거친 바다의 파도를 뚫고 수영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정화되어 반대편도 훤히 보이는 수영장 물과 달리 1미터 앞의 시야도 나오지 않는 바다, 눈을 깜박깜박 거릴 때마다 눈이 얼마나 따가운지, 바닷물이 코에 들어가거나 행여 마시기라도 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수 없다. 끝없이 넓은 바다에 몸의 맡기고 바다의 소리와 리듬에 이리저리 부유하다 보면 바다가 주는 무언의 적막함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인간의 하찮음이 이런 것일까. 해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경계는 명확하다. 



'경험주의자가 되자' 그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알아가야지.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로 내 하루를 채워야지. 인생은 짧으니까. 우리에겐 내일은 없으니까. 



"Doing things means a lot more to me than having a lot of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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