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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Dec 03. 2019

모든 것이 남의 일이 될 때

나에게는 조카가 있다. 영어로 조카는 다 같은 조카가 아니고 남자 조카는 'nephew'  여자 조카는 'niece'라고 한다는데 오늘은 나의 5살짜리 nephew에 대한 얘기다. 남자애라서 그런지 로봇과 공룡을 좋아하고 처음 보는 물건을 보면 넘치는 호기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손을 뻗는다. 한 번은 운전을 하고 있는데 조수석에 앉아있던 조카가 운전을 하고 싶었는지 갑자기 기어 레버를 당기려고 해서 식은땀을 흘린 적이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조카 녀석과 있을 때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어느 날 집 앞 슈퍼마켓으로 가는 횡단보도에 서서 조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길을 걸을 땐 항상 주변을 잘 보고 차를 조심해야 해. 뛰어다니면 절대 안 돼.” 밖으로 나오면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주위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뛰어나가고 보는 조카 녀석이 걱정되어서 했던 말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말해도 5살짜리 어린이 귀에 경 읽기라는 것을 잘 알기에 좀처럼 걱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뉴스를 보다가 어린이 사고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면 조카 녀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일부 나쁜 유치원 교사로부터 매질을 당하지는 않는지, 등하원 하는 봉고차 뒷좌석에서 졸다 선생님이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까, 차 뒤에서 놀다가 운전자가 미처 발견 못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들과 함께. 얼마 전 '민식이법'이 한 포털에서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랫동안 랭크되어 있어 눌러보았다. 9살의 어린아이가 동생 손을 잡고 스쿨존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는 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이었다. 스쿨존이었던 것이 무색하게 횡단보도 주변에는 주차한 차들로 인해 어린이들의 시야는 가려졌고 지나가는 차들은 규정 속도를 지키지 않았다.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매스컴을 탔고 국민청원도 이루어졌다. 어린이 교통안전을 강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민식이법'도 발의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상대방 때문에 민식이법과 민생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고 두꺼운 낯짝을 들이밀며 기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에만 급급하고 본인들이 국민을 대표해서 국회에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는 듯하다. 



'역지사지(之)'를 영어로 표현하면 'Put yourself in other people's shoes.'라고 한다.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의 처한 상황에 넣어보라는 것이다. 내 아들과 딸이, 아니면 조카나 손자, 손녀가 그런 사고를 당해도 팔짱을 끼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남의 일처럼 여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막장 드라마라면서 혀끝을 차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니까. 지금 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많은 사건, 사고가 나와 나의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은 나부터 스쿨존에서는 속도를 낮춰 주위를 살피게 만들고,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소중히 여기고 돌봐주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진보할 수 있게 여러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는 기분 좋은 기대를 걸어본다. 오늘도 열악한 공사현장에서 노동자들은 다치거나 추락해서 죽어나간다. 어린아이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치거나 죽는다. 모든 것이 남의 일이 될 때 우리는 지옥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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