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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m Jul 08. 2019

나를 사로잡은 뮤비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03


뮤직비디오는 기본적으로 음악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지만, 때때로 좋은 뮤직비디오들은 뮤직비디오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장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유튜브를 위시한 동영상 플랫폼의 출시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동시에 보게 되었다. 케이팝에서는 때때로 음악보다 뮤직비디오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아래의 뮤직비디오들은 어떤 이유로든 나를 사로잡았던 뮤비들이다. 사실 2주나 안 해서 이번에는 꼭 해야 될 것 같은데, 따로 음악을 찾아볼 시간은 없어서 그냥 평소에 좋아하던 뮤비들을 가져왔다. 그래서 아마 절반 이상은 블로그에서 이미 한 번 이상 다루었을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자 하는 본래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원래 좋아하던 것을 다시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변명해본다.










뮤지션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던 뮤비들이다. 태민의 'Drip Drop'은 드물게도 본 뮤비가 없이 퍼포먼스 비디오만 있는 경우인데, 이는 퍼포머로서의 태민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괴도'에서도 이미 뛰어났지만) 실제로 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태민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보적인 퍼포머로 각인되었다. 곡의 이미지에 맞게 갈증나게 하는 로케이션부터 후반부 댄서들이 모두 사라지고 태민만을 남겨두는 부분까지 완벽하다. 여전히 헤이즈 노래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And July'는 'Shut up & Groove'의 태도를 이어가면서도 훨씬 더 매력적인 곡이다. And July - 비도 오고 그래서 - Jenga - SHE'S FINE으로 이어지는 커리어는 헤이즈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정말 영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지금 BTS와 함께 가장 중요한 뮤지션이 아닐까 싶은 Billie Eilish는 일관된 분위기의 음악과 뮤비를 통해 누구보다도 선명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다. 'bury a friend'의 뮤비가 낯설어도 이미 'Bellyache'를 봤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식이다. Rosalia의 뮤직비디오들은 플라멩고에 기반한 음악 스타일과 잘 조응하기도 하고, 나한테는 몇 년 앞서간 뮤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MALAMENTE'와 'PIENSO EN TU MIRA' 뮤비를 특히 정말 좋아하는데, 'PIENSO EN TU MIRA'는 플레이리스트 2에서 다뤄서 'MALAMENTE'를 가지고 왔다.











형식미가 돋보이는 뮤비들이다. Fiona Apple의 전 애인이기도 했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연출한 'Hot Knife'는 PTA답게 조명과 구도의 활용이 압도적이다. "He makes my heart a cinemascope screen"이라는 가사가 있기도 하고 음악 자체가 영화적인데, 그런 음악에 딱 맞는 형식을 보여준다. Jamie XX의 'Gosh' 뮤비는 플레이리스트 1에서 다룬 M.I.A의 'Bad Girls' 뮤비를 연출했던 로메인 가브라스 감독의 작품이다. 'Bad Girls' 뮤비를 보면 알겠지만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담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를 읽어보니 문화 도용(Cultural Appropriation)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고 하며, 실제 뮤비 촬영지가 파리가 아니라 에펠탑 복제품이 있는 중국이라는 점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래 3개의 뮤비는 SM에서 나온 뮤비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뮤비들이다. NCT U의 'Baby Don't Stop' 뮤비는 박희아 기자님의 말을 빌리면 "NCT는 이제 미술의 영역에 들어간 아이돌"임을 보여준다. 에프엑스의 '4 Walls'와 레드벨벳의 '7월 7일'은 모두 신희원 감독님의 연출작이다. 위의 듀 뮤비는 뭐랄까 뮤비라기보다는 그림책을 한 페이지씩 넘겨서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Gosh'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면, 'Baby Don't Stop'이나 '4 Walls'는 미술관에서 보고 싶다. '7월 7일'은 어제는 볼 자신이 없어서 오늘에서야 봤는데 다시 봐도 정말 잘 만든,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뮤비였다.










감정적으로 큰 울림을 준 뮤비들이다. 가급적이면 이전에 여러 번 언급한 뮤비는 넣지 않으려고 해서 Janelle Monae나 Childish Gambino도 뺐지만, Rae Morris의 'Do It'은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 뮤비가 Dirty Computer나 'This is America'처럼 훌륭한 뮤비인지는 모르겠다. 혹은 엄청  새로운 점이 있는 뮤비도 아닌데 이상하게 감동적이다. 반복되는 'Do It' 주문에 걸려 일단 하면 되고,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앤드류 가필드가 출연한 Arcade Fire의 'We Exist'는 후반부의 연출이 감동을 줬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던 인물이 '나는 존재한다'라는 가사를 노래하는 밴드의 공연장에 나타나 관객들 앞에서 주체로서 우뚝 서버린다. Mount Eerie의 'Ravens'는 마운트 이레가 아내 준비에브와 사별한 후 만든 앨범 [A Crow Looked At Me]의 수록곡이다. 뮤비는 멀리 달려나가는 준비에브를 찍은 영상으로 시작해 둘이 함께 찍었던 자연을 담은  영상들을 계속 보여주다가 준비에브가 다시 달려오는 영상으로 끝난다. Sia의 'Chandelier'는 원래도 좋아하긴 했지만 최근에 다시 보고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20대에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음악이라는 생각도 들고 시아는 매디 지글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튼 정말 희대의 뮤비라고 생각한다.









표현 방식이 재밌는 뮤비들이다. 1986년 곡인데 조회수가 8.7억회나 되는 a-ha의 'Take On Me'는 만화와 실사를 넘나드는 표현이 재밌다. (80년대 뮤비를 통틀어 건즈앤로지스의 'Sweet Child O'Mine' 다음으로 조회수가 높다.) yaeji의 'last breath'는 "자존심을 이렇게 손가락에 조금 덜어서 무릎 위에 천천히 펴서 발라주세요"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메이크업 튜토리얼 영상의 문법을 가져와서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는 놀랍도록 창의적인 뮤직비디오다. 오마이걸의 'WINDY DAY'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바람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아이돌 뮤비의 클리셰인 클로즈업을 활용하되 그것을 훨씬 극단적으로 해서 멤버들의 외모를 강조하기보다는 뮤비의 기이한 느낌을 강조한 것, 벌스 부분과 훅 부분의 강렬한 대비도 인상적이다.










뮤직비디오의 가치가 음악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이 가진 매력을 잘 보여주는 뮤직비디오가 좋은 뮤직비디오인 것만은 분명하다. BTS의 'DNA'는 무엇보다도 색감이 좋다. BTS의 성공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설명이 있지만 'DNA' 뮤비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보편적으로 좋은 콘텐츠라고 말하는 듯하다. Wednesday Campanella(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이 시리즈 제목을 지을 때 마침 수요일의 캄파넬라 노래를 듣고 있어서 제목을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로 정했다.)의 'Melos' 뮤비는 몽골을 배경으로 하여 음악의 자유로움을 표현해낸다. Flying Lotus의 'Never Catch Me'와 The Avalanches의 'Because I'm Me'도 뮤비를 보고 나면 음악이 더 좋게 들리는 경우다. 'Never Catch Me'는 곡의 주인인 Flying Lotus와 피쳐링으로 참여한 Kendrick Lamar, 베이스로 참여한 Thundercat의 시너지가 돋보이는 곡이다. 뮤비는 'This is America'를 연출한 히로 무라이 감독의 연출작으로, 'Chandelier'와 함께 춤이 가장 인상적인 뮤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랑스러운 뮤비의 'Because I'm Me' 속 소년의 목소리는 1959년 발표된 Six Boys In Trouble의 'Why Can't I Get It Too'를 샘플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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