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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달린 연필

by 회색달

삶에서 필요한 물건을 딱 하나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지우개 달린 연필을 들고 싶다.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
말하지 못한 상처,
그때 흘린 눈물을
조금씩 지워가며 다시 써 내려가고 싶다.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상처는
오래된 골짜기처럼 패여
눈물이라는 기록으로 차오른다.


언젠가 넘쳐 흐르기 전에
지우개로 작은 구멍을 내어
그 눈물을 흘려 보내고 싶다.


인생의 끝까지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게 되더라도
기꺼이 그 과정을 반복하며
내 행복으로 가득 채워 보고 싶다.


아마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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