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허리가 뻐근하더니, 어제는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통증이 심했다.
하필이면 추석 연휴다. 병원도 닫았고. 집에는 가기 싫었다. 직장 핑계로 혼자 지내는 집에서 쉬고 있다. 그래도 허리가 여전히 아프다. 이럴 때마다 예전에 시술받으려고 입원했던 병실이 떠오른다.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병실은 이미 북적였다. 간호사가 커튼을 걷는 소리, 링거대가 끄는 쇳소리, 침대마다 들려오는 신음까지.
새벽에 진통 주사를 맞고 겨우 잠들었는데, 신경이 다시 곤두섰다.
신경외과랑 정형외과가 같이 있는 병실이었다.
허리디스크 환자들이 시술을 기다리거나, 수술 뒤에 회복하는 곳. 나도 어젯밤 통증에 못 이겨서 간호사 호출 벨을 눌렀다.
처음 들어왔을 때 제일 힘들었던 건 냄새였다.
소독약 냄새랑 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침대는 여섯 개, 얇은 커튼으로만 나뉘어 있었다. 천 뒤에는 서로 다른 인생들이 누워 있었다. 이유는 같았다. 허리.
허리디스크는 어떤 자세로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앉으면 바늘이 찌르고, 서 있으면 다리가 저린다. 누워도 편하지 않다. 어느 쪽으로든 고통이 따라온다. 누워 있던 사람들은 늘 몸을 뒤척였다.
침대는 쉬지 않고 삐걱거렸다. 밤이면 누군가 창가에 앉아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창밖 불빛을 바라보다가 새벽을 맞는 사람도 있었다.
내 옆 침대엔 육십 넘은 남자가 있었다. 평생 화물차를 몰다 허리가 망가졌다고 했다. 밤마다 진통주사를 맞아야 잠을 잤지만, 아침이면 간호사에게 농담을 던졌다. 고통은 컸겠지만, 마음만은 버티고 있었다. 그 웃음이 병실 공기를 조금 덜 무겁게 했다.
맞은편엔 스물아홉 대학원생이 있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하다 허리가 나갔다고 했다. 링거를 꽂은 채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순간엔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고통이 집중을 방해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그게 묘하게 멋있었다.
창가 쪽엔 칠십 넘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치매 초기라 말을 길게 잇진 못했다. 가끔 단어 몇 개만 툭 내뱉었다. “고마워.” “아파.” “괜찮아.”
그 말들이 오래 남았다. 짧지만, 묵직했다
밤이 깊어지면 병실은 합창을 했다.
끙끙 앓는 소리, 링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보호자의 한숨. 아무도 깊이 잠들지 못했다.
새벽 두세 시쯤이면 누군가 창가에 앉았다.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다들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언제쯤 이 고통이 끝날까.’
며칠 뒤, 나는 시술을 받았다. 수술대에 누워 있으니 괜히 긴장됐다. 마취가 퍼지자 가슴 아래로 감각이 사라졌다. 의사가 “금방 끝나요”라고 했고, 정말 금방 끝났다.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돌아오자 옆 사람들이 물었다.
“괜찮아요?”
“이제 좀 나아질 거예요.”
며칠 본 사인데, 오래 본 사람들 같았다. 몸은 의사가 고치지만, 마음은 결국 사람이 고치는 거였다.
병실 생활은 고됐다. 그래도 버틸 만했다.
간호사가 “조금만 참으세요” 하면 이상하게 참을 만했다. 환자들끼리 나누는 짧은 말이 약보다 나았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실은 아픈 사람들이 누워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으로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곳 같다고.
각자의 몸은 망가졌지만, 그래도 서로 챙겼다.
누가 신음하면 옆 사람이 물을 밀어주고, 누가 힘들어 보이면 그냥 옆에 앉았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제 새벽에도 거실 창문 밖을 봤다.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 잠들지 못한 시간, 여전히 깨어 있는 도시. 그 불빛을 보며 그냥 생각했다.
이 통증도 언젠간 지나가겠지. 그래도 잊히진 않을 거다. 그때 그 병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건넸던 말들. 그게 다였다. 그게, 오래 남았다.
25.10.06.
*모두 추석 연휴 건강관리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