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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예리한 것

32.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이렇게 사람 마음을 도려내는 말 한마디가 또 있을까. 듣는 순간 괜찮았지만, 뒤늦게 서늘함이 스며드는 말이.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쓰다듬는 듯했지만 손끝은 차가웠다. 의도는 좋았겠지만, 마음에는 닿지 않았다. 그런 말이 오히려 아픈 곳을 조용히 찔렀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이.


분명 말은 부드러운데, 나를 보는 눈이 없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는지 모른 채 건너온 말들은 외로움만 남긴다.


위로는 빨리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천천히 듣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걸 조금씩 배운다.

조언보다 먼저 필요한 건 상대의 언어를 잠시 빌려 쓰려는 마음이다.


‘거기 있었구나. 나도 여기 있다.’

이 한 문장이 더 많은 걸 건져낸다.


어설픈 위로가 무서운 건 좋은 말 뒤에 정작 나를 보지 않는 마음이 숨어 있어서다.


그래서 나는 쉽게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말이 모자라도, 침묵이 길어도 괜찮다. 그저 마음 옆에 함께 서 있는 사람. 예리하지 않은 사람.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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