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능소화

by 회색달

2025년의 봄은 유난히 짧았다. 꽃샘추위의 기억이 가시기도 전 여름이 회사 담을 타고 내려왔다. 주황빛 꽃송이들이 덩굴 끝에 매달려 마치 등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나만의 마당을 만들어 직접 꽃을 심는 것. 씨앗을 하나 골라 빈 땅에 꽃을 피워 보고 싶다. 반드시 피리라는 믿음을 걸고 기다리는 일. 흙 속에 묻힌 씨앗이 적막을 견디는 마음이 궁금하다. 지금은 상상으로만 꽃을 피워 보지만, 내 마음 구석에 가장 먼저 심기로 작정한 꽃, 능소화다.

능소화(凌霄花).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란다. 한 여름 더위와 장마, 비바람 속에서도 피는 이 꽃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퍼부어도, 나는 피어난다.’라고.

이 꽃을 떠올리면서 덩굴을 따라 올가 가면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주의 낡은 집, 그리고 고모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부모님은 야채 행상을 하느라 새벽이 오기도 전에 집을 나섰고, 어린 나는 짐짝처럼 공주 고모 댁에 맡겨졌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해였다. 마당에는 종아리까지 눈이 쌓였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눈사람을 만들다 보면 손끝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아려왔다. 그때 고모는 말없이 나를 불러 아궁이 앞에 앉혔다.

고모는 부엌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아궁이 불씨 위에 올려주셨다. 치직거리며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 투박한 냄새가 퍼지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마치 '여기는 안전하다'는 무언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고모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많은 말이 없어도 존재만으로 든든한 담벼락이 되어주었던 사람. 그때 나는 몰랐다. 아궁이의 장작불과 익어가는 고무가 냄새가 훗날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될 줄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졌다. 집안의 가구들 위로 빨간딱지가 붙고, 나는 혼자 남겨진 월세방에서 어른의 고독을 먼저 배웠다. 형광등 불을 끄면 방 안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희미한 전기 소리가 천장에서 새어 나왔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몸을 숨겼다.

결국 나는 다시 고모 집으로 보내졌다. 이번에는 맡겨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공주로 향하는 시외버스 안에서 창문에 머리를 기댈 때마다 차체의 진동이 뇌로 직접 전달되었다. 저녁 시간이라 버스 창밖은 금세 어두워졌고,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내가 아는 세상은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버스 안의 눅눅한 시트 냄새와 사람들의 낮은 웅성거림이 더 진하고 컸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 고모 집까지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마을 입구에서 내린 후에 높은 언덕을 다시 올라 대문을 열었을 때, 고모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왜 왔니"라는 한마디대신 밥상을 차려주셨을 뿐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김치찌개, 김. 흰 밥. 그리고 계란 프라이 두 개. 낮부터 굶었던 끼니를 대신하여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기는 동안, 내 마음속 얼음도 깨지고 있었다.

고모는 늘 같은 방식이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 그곳이 고모의 집이자 나의 유일한 요새였다.


대학교 1학년 여름, 고모의 소식을 들었다. 치매와 뇌종양. 평생을 담벼락처럼 버텨온 고모의 정신이 툭툭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병원 복도는 조용했다. 형광등 불빛이 타일 바닥 위로 번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카트 바퀴 소리만 맴돌았다. 고모의 병실 문까지 걸어가면서 내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탁, 탁, 탁.' 운동화 밑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소리는 벽을 타고 되돌아와 내 귀에 박혔다. 그 울림은 마치 "정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니?"라고 묻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병실 앞에 도착해서도 누군가 억지로 나를 병실 문 앞으로 등 떠미는 것 같아 숨이 막혀왔다.

'고모가 나를 알아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니,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까.' 손바닥에 맺힌 식은땀이 차가운 손잡이를 손잡이를 돌렸다.

병실 안은 숨이 고여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고모는 한없이 작아져 있었고, 손등의 피부는 종이처럼 얇아져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고모의 눈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누구세요.” 그 말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듯했다. 나는 차마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내 이름 석 자가 고모의 망각 속으로 영영 가라앉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결국 누구의 아들이라고만 답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굵은 빗방울이 천천히 담장 위로 떨어졌다. 담벼락 아래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일부는 떨어져 있었다. 막 시든 것이 아니라, 가장 선명한 주황빛을 가진 채 송이째 내려앉아 있었다.


한 걸음을 떼려다 멈췄다. 툭. 또 한 송이가 떨어졌다. 꽃들은 너무 쉽게 바닥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 어디를 밟아야 할지 몰랐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빗 줄기는 점차 굵어졌고, 꽃들은 그만큼 더 많이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 꽃들은 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온 것이라고. 하늘을 업신여길 만큼 당당했던 꽃이기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온전히 보존한 채 땅으로 귀환한 것이라고. 고모의 망각 또한 패배가 아니라, 생의 무거운 기억들을 털어내고 가장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전히 능소화 덩굴 아래 서 있다. 2026년의 태양은 뜨겁고, 담장 위의 꽃들은 여전히 당당하다. 나는 이제 능소화를 밟지 않고 지나가는 법을 안다. 고모가 나를 잊었다고 해서 우리의 연결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모는 여전히 내 안에 뿌리내리고 있다.


삶이 형벌처럼 느껴지는 한여름이 찾아와도, 나는 내 머리 위 먹구름을 능멸의 눈빛으로 바라봐 줄 용기가 생겼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넝쿨로 연결되어 있으며, 누군가의 낙화는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씨앗으로 심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능소화가 다시 피면 나는 그 담벼락 앞에 서서 인사를 건네려 한다. 병실 복도에서 울리던 겁 많은 발소리를 대신해, 이번에는 누구의 아들이 아닌 온전한 나로서.

“고모, 저 왔어요. 제 이름은...”


그때 울지 못한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지겠지만,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다시 피어날 계절을 향한 가장 뜨거운 약속이 될 것이다. 꽃은 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피기 위해 잠시 땅으로 내려앉는 것뿐임을, 나는 이제 믿기 때문이다. 올해의 능소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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