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존재하는가

그날 회의실에서 손을 든 이유

by 회색달


“나는 왜 존재하는가.”
존 스트레레키의 「세상의 마지막 카페」가 남긴 질문이다. 책에서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묻는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한 줄이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다.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소설에서 흔히 만나는 질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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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책장을 몇 장 더 넘기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 장, 두 장. 이야기 속 인물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니 문장의 방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는 ‘여기’는 장소가 아니었다.
어떤 카페의 좌석도, 여행 중 우연히 들른 휴게소도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은 왜 지금의 삶에 서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문장을 읽은 뒤로 나는 하루에 한 번쯤 멈추는 시간을 만든다.
나는 왜 여기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서.
솔직히 아직도 정확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질문만큼은 아직도 내 안에 굵은 글씨로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삶의 모양은 비슷하다.
어디에서 일하든, 어떤 일을 하든 겉모습만 조금 다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일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출근하고, 일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책임을 다하며 하루를 보낸다.
나와, 당신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하며 살아간다는 것.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장 생활 20년 차다. 지금은 인사관리팀에서 일하고 있다. 행사 준비와 각종 교육 운영, 연중 계획까지 여러 일을 맡고 있다. 회사 안에서는 비교적 손이 많이 가는 업무다. 그래서인지 선뜻 맡으려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2년 전, 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그전까지 나는 창고 정리와 재고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오랫동안 해 온 일이었고 큰 어려움도 없었다. 익숙한 일이라는 것은 때로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쪽에서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단순히 관리하는 일을 넘어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만들어 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회의 자리에서 새로운 담당자를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손을 들었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의 눈빛에는 안도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비겁해 보였다.

지난 2년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전보다 훨씬 바빴고 예상하지 못한 일도 많았다. 여러 부서와 일정을 조율해야 했고 준비했던 계획이 갑자기 바뀌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 과정에서 힘든 순간도 많았다.
한 번은 다른 부서와 행사 일정 문제로 전화 통화를 하다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서로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 오갔고 대화는 점점 짧아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자리 양 옆의 파티션이 높아 고갤 숙인 채 혼잣말로 욕을 해댔다.
결국 그 일로 경위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혼자 하던 욕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일정이 틀어졌는지와 차선책을 준비해 달라는 업무 지시를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지.

경위서를 쓰며 그날 내가 했던 말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조금 더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자리로 돌아와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중요한 회의 자료를 준비하다가 파일을 날려버린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정리했던 내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결국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날은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자료를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회의에서는 준비했던 만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밤새 정리했던 내용이 머릿속에서 엉켜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회의가 끝난 뒤 자리로 돌아와 한동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일을 겪으며 한 가지 생각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는 것. 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준비한 것과 상관없이 상황이 바뀌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려 애쓰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의외로 많은 것을 단순하게 만들어 주었다.
완벽하게 해내려 애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마지막 카페」에는 녹색 바다거북 이야기가 나온다.
바다거북은 파도와 싸우지 않는다. 파도의 흐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힘을 써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구분한다.
사람들도 비슷하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이것저것 많은 일을 붙잡는다. 하지만 방향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필요한 일에 조금 더 집중한다.

나는 아직도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완전히 답하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태도는 조금 달라진다.

예전에는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 끝까지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고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고.

일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은 없다.
어쩌면 그 답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 오늘도 나는 그 질문을 마음에 두고 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그 질문을 잊지 않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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