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관계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법
돌 하나에 흔들리지 않는 법
패스팅거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10%,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가 90%라는 이야기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낡은 마구간에는 늙은 소가 있었고 넓고 쾌적한 마구간에는 젊고 튼튼한 말이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 작은 돌 하나를 던졌다. 젊은 말은 크게 놀라 마구간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웠다. 발굽 소리가 울리고 건초가 흩어졌다. 마구간 안은 금세 어수선해졌다.
반면 늙은 소는 고개만 잠깐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여 풀을 먹었다. 돌의 크기는 같았다. 하지만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유치한 비유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문득 그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그랬다.
얼마 전 결혼을 앞둔 후배가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꽤 가까운 사이였다. 시간이 맞으면 밥을 먹었고, 여행도 몇 번 함께 다녔다.
서로 별일 아닌 이야기를 길게 나누기도 했고, 아무 이유 없이 웃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접 들은 것도 아니고, SNS를 통해 알게 된 것도 아니었다.
“걔 결혼한다더라.”
누군가가 무심히 던진 말이었다.
잠깐 멍해졌다. 그럴 수도 있지 싶다가도 어딘가 묘한 기분이 남았다. 나중에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겠지 하고 넘겼다.
며칠 뒤 그를 우연히 마주쳤다. 시내 길거리에서였다.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이 먼저 올라올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어색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짧은 이야기를 했지만 예전 같은 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며칠 전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였다. 책상 위에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청첩장이었다. 그가 잠깐 들렀다 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아까 왔다 갔어?”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선배님 자리 비어 있어서 그냥 두고 갔어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전화라도 한번 하지 그랬냐.”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대답했다.
“요즘 좀 바빠서요.”
짧은 대화였다. 통화를 끊고 나서도 특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아침이었다.
출근길에 운전을 하다 문득 그 일이 떠올랐다.
매일 오가는 길 위, 신호등 앞에 차들이 길게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했던 관계였나.’
그러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구간의 늙은 소와 젊은 말 이야기.
작은 돌 하나.
어쩌면 그 후배의 행동은 그저 작은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 돌을 크게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속 마구간이 소란스러워질지도 모른다.
왜 연락을 먼저 하지 않았을까.
왜 결혼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되었을까.
왜 예전처럼 편하게 대하지 않았을까.
생각은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다. 다만 대부분 답이 없다. 어쩌면 그는 정말 바빴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그 정도의 관계였을 수도 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생각보다 조용하게 변한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조금씩 거리가 생기고,
어느 순간 예전과 다른 위치에 서 있게 된다. 그게 꼭 누군가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가는 방향이 달라지고 각자의 시간이 채워지면서 관계의 온도도 자연스럽게 변한다.
어떤 인연은 오래 남고 어떤 인연은 조용히 멀어진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신호등이 바뀌고 차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핸들을 잡은 채 엑셀에 힘을 주었다.
돌은 생각보다 작았다. 괜히 그 돌 하나 때문에 마음속을 시끄럽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마구간을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젊은 말이 될 수도 있고, 고개만 한번 들었다가 다시 풀을 먹는 소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나는 잠깐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햇빛이 도로 위에 길게 번지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전화를 걸까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다. 다시 핸들을 잡았다. 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