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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고수가 되는 길

독서 초보, 인생 초보 탈출 기

by 회색달

운전을 배운 지 올해로 20년이 넘었다. 법정 나이로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나이가 되던 해에 생일이 지나자마자 면허를 땄다. 그때만 해도 한 반에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몇 안 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겨우 네다섯 명. 인문고를 나왔지만, 일찌감치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아버지를 졸라 운전을 배웠다.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긴장과 떨림이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만큼 뇌리에 깊게 박힌 시간이었다는 의미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친한 친구들하고 몰래 담벼락을 넘어 학교 후문 앞 분식집을 갔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곧 있을 중간고사도 이유였겠지만 복도 끝에서 지키고 있는 담임 선생님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만큼은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수학 문제집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차피 외워도 금방 지워질 뿐이지만…….;


그런데도 같은 책상을 쓰고 있는 짝꿍이 정리해 놓은 요약 노트를 보여주며 '이것 몇 개만 외워봐. 시험에 꼭 나온다고 했어'라는 말을 했을 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이런 걸까 했다. 교과서 구석에 있는 몇 문제를 그대로 시험에 출제하신다고 했으니 답이라도 외우면 이번 시험만큼은 저번보다 잘 맞을 수는 있겠다 싶었다.


시험날 당일. 거짓말처럼 짝꿍이 정리해 놓은 문제 몇 개가 그대로 시험에 나왔다. 문제 순서까지 똑같았던 덕분에 답을 빠르게 찍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학 과목 자체의 점수가 높아진 건 아니다. 단지 머릿속에 기록되지 않는 수많은 숫자와 외계인 언어로 보이는 기호의 위협으로부터 잠시나마 뇌의 고통이 작아졌을 뿐이다. 결국, 시험 결과는 여전히 저조했다.


시간이 흘러 이공계 계열의 대학을 진학했을 땐 중학교 수준의 미적분을 해결하지 못해 시험을 망친 적이 있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어찌 보면 이공계를 선택한 것 자체도 잘못된 것일 수도.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그다음 학기에 전공과목 중 하나인 공학 이론 2의 시험 문제를 거의 다 맞혔다. 주변에서는 한 학기 만에 오른 내 성적의 비결을 궁금해했다. 어차피 대학 점수야 절대평가로 이루어졌고 일정 등급 이상을 맞으면 됐으니 크게 문제 될 일도 아니었다. 비법은 중학교 교과서를 중고서점에서 구해다가 다시 공부한 거다. ‘대학생이나 되어서 중학교 문제를 다시 푼다고.?'


맞다. 문제를 해결할 머리가 없고 공식도 모르니, 해결할 방법은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자 뿐이었다.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 그때 받은 성적 증명서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시절의 기억 덕분에 초보 딱지 떼는 방법만큼은 안다. 기초부터 공부하고 연습과 반복뿐이다.


처음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학원에서 기능 수업을 일정 시간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운전대와 브레이크, 가속페달, 룸미러 조절 등등 키를 넣고 출발하기 전부터 확인하고 몸으로 체득해야 할 일이 많다. 2종 보통이라면 액셀과 브레이크만 알면 되지만 1종은 하나가 더 있다. 클러치다. 처음엔 클러치를 너무 빨리 떼는 바람에 시동을 자주 꺼트렸다. 다행히 기능 시험 당일에는 꺼뜨리지 않아 통과했지만 연습하는 동안 자주 꺼지는 바람에 옆에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죄송하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았다. ‘적응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괜찮다'라는 말을 위로로 거네 주셨지만 그때만큼은 얼굴이 시뻘게진 기억이 있다.


어떤 일에 서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초보'라고 부른다. 수학 초보, 운전 초보 외에도 누구나 오늘을 처음 살아가니 ‘인생 초보'다. 물론 비결이 쌓여 시간 관리, 인맥, 직업, 신분 등에서 실수보다 성공이 많다면 남들은 이런 사람들을 두고 초보라는 말보다‘성공한 사람'이라 부른다.


초보의 실수는 어쩔 수 없다.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연습만이 살길이다. 필요하다면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가져다가 다시 풀면서 공부해야 하고, 남들의 이루어놓은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실천도 해봐야 한다.

보통 성공은 알아주지만, 실수와 실패는 인정하지 않는다. 흔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교차로 신호에서 대기 중인 고가의 외제 차와 국내 경차가 앞에 있을 때 신호가 바뀐 후 뒷사람들의 반응을.


처음 독서를 시작하고자 마음먹은 때가 2017년 여름 즈음이다. 그땐 이유가 없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때였다. 필요하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머리 깎고 산에라도 올라가고 싶었다. 중독이 그만큼 위험하다. 사람을 극단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눈을 글을 따라가는데 뇌는 따라오지를 못했다. 달달한 소주 한 잔이 생각났고 급기야는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자괴감도 들었다. 책 몇 권 읽는다고 당장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하다못해 누가 책 사라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땐 월급 받아 족족 서점 가서 책 사서 읽느라 다 썼다. (그만큼 술 마시는 시간과 돈은 줄어들 수 있었지만). 중독 치료 센터에서 권했던 일이었기도 했지만 처음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독서 초보다.'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생 초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할 독서 초보.


독서 초보의 문제는 하나다.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독해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앞서 학교에서, 주변에서 읽어보라며 권한 책을 읽었었지만, 머리에 남은 건 없다. 그 흔한 일기도 쓰지 않았으니 읽었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 증거가 없으니 거짓말쟁이로 남느니 차라리 ‘아직 책 읽는 법을 몰라 독서를 못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련다. 그게 속 편할 테니까.


다만 이제부터라도 ‘읽자!'라고 다짐했다면, 중고등학생을 위한 추천도서를 읽어보는 것이 좋다. 필요하면 어린이를 위한 우화도 좋다. 우리가 아는 '어린 왕자' 이야기를 읽어보면 어린이에게도 동시에 어른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미치게 되는데, 특히 이야기 속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가 그렇다.


무언가를 길들이지 않고서는 그것을 잘 알 수가 없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울 시간조차 없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사는 상점은 없기 때문에 친구는 사귀지 못하는 거야.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말은 ‘관계를 맺고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라는 의미다. 한쪽에서 길들이고 길드는 우위의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종종 친구 사이, 가족, 동료,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제대로 된 길들이기를 하지 못해 아픔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 관계에 관해 언급한 책이 수만 가지라고 하지만 사실 어린 왕자만큼 두께도 무게도 얇은 책은 없다. 어른과 어린아이가 동시에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은 더더욱.

이런 책 한 권이면 두 시간 이내에 독서는 끝난다. 마치 영화를 가만히 앉아 손으로 재생과 정지를 눌러가는 느낌. 한 권 읽고 나면 기분이 묘하다. 이런 식이라면 주말에 조용한 카페에 앉아 몇 권도 읽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만히 앉아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는다. 처음부터 두껍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읽지 말자. 오늘날 책의 모든 내용은 이미 과거에 쓰인 ‘동화'에서 비롯된 것이 많으니까. 한참 읽다가 질리면 그때 가서 ‘있어 보이는' 책을 읽으면 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수십 권으로 이어지는 소설 삼국지 등이 그 예다.


오늘날 SNS는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으로 사업을 하기도 하고 개인끼리 친목 도모도 한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기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발명품인 셈이다.


한 번은 SNS 속 사람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하루 동안 얼굴 본 사람보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소름이 돋았다. 그날로 SNS를 다 삭제했다. 대신 블로그 하나를 만들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 고민을 올려놓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며 정리해 놓는 곳이다.


경험이 쌓이면 더는 초보가 아니다.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쓰지 않는 순간에도 늘 경험을 쌓아놓는다. 머리 혹은 메모장을 꺼내어 순간에 있었던 일을 남겨놓고는 언젠가 글 감으로 재창조한다.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생각에 ‘이거, 마치 내 이야기 같은데?'라는 순간이 있다. 이런 순간이 쌓일수록 독서 초보는 독서와 친해지기 시작한다. 더는 손과 뇌가 따로 놀지 않는 독서를 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그 시작은 초보를 위한 독서 비법, 당장 읽어라!, 필요하다면 지금 아이 책 방에 꽂혀 있는 ‘피터 팬'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있어도 좋다. 가끔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가서는 스마트폰만 잡은 아들, 딸을 볼 때 잔소리 대신 ‘나'부터 읽는 모습을 보여줘라. 나는 스마트폰과 술을 마시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아이들에게까지 적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독서 초보 딱지는 내 선에서 끝내자. 아이들에게는 독서 고수가 되는 법, 나아가 인생을 고수답게 사는 법을 터득하게 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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