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집 근처 자주 가는 카페에 들렀다. 낡은 4층 건물의 1층을 수리해 만든 이곳은, 대형 유리창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성인 두 명이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 나눌 만한 테이블이 세 개뿐 인 곳. 메뉴 또한 조촐하다. 어디 가든 쉽게 마실 수 있는 아메리카노, 과일 주스 몇 종류가 전부. 자주 들러서인지 아르바이트생과는 눈인사를 건넬 정도로 친해졌다. 오늘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 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도 제일 안쪽의 테이블은 내 몫.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그러고 보니 지금 노트북과 함께 한 시간이 어느덧 4년째. 생일 선물이라며 절친이 건넨 노트북이었다. 가격이 꽤 나가리라 짐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그랬다. 원체 마음에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다음 친구의 생일에는 더 비싼 카메라를 선물해 줬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전에 준비하던 사업이 어려워져 수 십만 원이 넘는 물건을 내가 가진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던 일. 그래서인지 이제는 지갑 형편이 나아졌다고 너스레도 떨 줄 안다. 올해는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재미도 많아졌다. 퇴근 후에는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들러 글을 쓰고, 주말에는 조용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몇 시간 동안 글과 씨름도 한다. 덕분에 이전에는 생각도 못 한 경험을 많이 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늘 새로운 글을 쓰니 매번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
올해 새로운 삶이 하나 더 늘었다. 본격적으로 에세이스트가 되겠다고 다짐을 한 것. 사실 말이 좋아 에세이스트지, 현실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직장인의 삶을 쓰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낸 경험도 없는 내가, 이런 도전을 선언하게 된 이유는 하나. 기록하지 않으니 내 삶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렇게까지 기억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호기롭게 시작한 사업에 실패했다. 당시에는 ‘다 잘될 거야’라며 나를 위로했다. 금방 일어서리라 다짐했지만, 세상일이 마음처럼 쉽게 된다면 그게 어디 사업이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언제까지 옆에 있을 거라던 가족과의 이별로 더 큰 충격에 빠졌다. 처음부터 혼자 시작한 사업이 아니었기에 후폭풍이 더 컸다.
오랜 시간 고착되어 있었다. 내 삶은 술에 빠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한 시간.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 끝까지 내려온 경험을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차라리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던 분노와 비난, 슬픔, 우울함에 직접 대면하기로 하자, 오히려 삶이 가벼워졌다. 후련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일어서기로 다짐했던 때가 4년 전. 내 삶을 5년 안으로 정상궤도에 올려놓자고 다짐했던 시기가 곧 다가오는 마흔이다. 나와 약속한 날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러니 내가 더 매달릴 수밖에.
술 마시느라 고착되어 있었던 내 삶을 반성이라도 하듯 내 삶에 대한 반성문이 바로 기록인 셈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새로움’에 쉽게 빠졌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는 해석도 된다. 대학 시절에는 여행 사진작가가 되겠다며 일을 배운 적도 있고, 깊은 바닷속을 동경해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다룰 수 있는 악기도 없으면서 가수를 꿈꾼 적도 있다. 텔레비전 속에서 무릎을 꼬고 앉아,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에 구웠던 꿈이었다.
달리기에 빠져 수십만 원짜리 마라톤화도 몇 켤레 있었다. 요 몇 년 사이에는 책을 많이 읽다가 ‘책 한번 써볼까?’ 하는 건방짐에 쓴 수업료가 수백만 원. 취미 부자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만큼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일들. 비록 그 끝이 지금이 모습이지만 부끄럽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도 좋았다. 직접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내가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나에 대해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이 흔들리지 않을 마흔을 맞이하는 과정이니까.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해낼 줄 아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텔레비전 속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업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유명 축구 선수, 가수, 멋진 회사원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노트에 적어 놓고는 남들처럼 목표로 삼기도 했다. 비록 원한만큼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더라도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늘 새로운 경험을 최우선으로 했다.
그럼 이전의 실패라고 여겼던 모든 순간이 어느덧 새로움의 원동력이 되어 있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야말로 멋진 어른이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작가는 글감을 얻기 위해 많은 경험을 한다고 하는데, 이미 많이 겪은 경험이 나만의 글감이 된 지 오래다.
‘성공적인 실패’‘아름다운 실패’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이 말의 뜻을 이해 못 했다. 말만 들어서는 말의 앞뒤가 맞지 않으니, 무슨 말인가 싶었다. ‘실패면 실패지, 무슨 성공이고, 아름다울 수 있겠냐’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내가 일구어 놓은 실패라는 밭에 성공 씨앗을 하나씩 심고 있다. 아무리 기온이 무덥거나 추운 날에도 몸이 흔들릴지언정 단단한 뿌리를 키우기 위해 영양 높은 비료의 투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아무리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지만 진정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꾸준하게 밭을 가꾸어 봐야 한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라도.
얼마 전 내가 만든 좌우명이 있다. ‘미친 듯이 꾸준하라!.’.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누구나 꾸준할 수는 없다. 하루 몇 시간의 노력이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상 가는 것이야 말로 꾸준함이다. 나는 이 꾸준함을 마흔의 나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얼마 전 지역의 독서 모임에서 참여했다가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나는 항상 대답이 똑같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요’. 앞으로도 후회보다는 다짐을, 자책과 비난보다는 희망과 격려를 나에게 해주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 삶도 누구에게는 열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마흔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참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과거의 내 실패가 지금의 나로 이어질 수 있었던 ‘성공’의 씨앗임을 깨달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