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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가 우울증에 쉽게 빠지는 이유

by 회색달

얼마 전부터 밤잠을 설쳤다. 깊게 잠이 들기 힘들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자려고 하면 할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머리를 조여왔다. 그러다 지쳐 쓰러지다시피 잠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리는 알람 소리.


제대로 된 수면을 못 해서인지 머리는 어지럽고 속이 다 울렁거렸다. 아침에는 가슴까지 답답함을 느껴지더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사무실 사람이 모여있는 단체채팅방에 오전 병원 진료 후 출근하겠다는 상황을 알렸다.


이미 가슴 답답함과 소화가 안 되어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답장 없이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대답을 확인하고는 집을 나섰다. 처방받던 수면제 없이 잠이 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우울증입니다. 환자분은 이미 앓고 계셨을 겁니다 단지 이전까지만 해도 공황장애, 대인기피 같은 증세가 더 눈에 띄어서 몰랐을 수도 있고요. 사실 다 같은 질환입니다. 조금만 더 편하게 생각해 봅시다.”

“......”


앞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몇 알 먹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정도로 머릿속은 잡생각이 가득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대부분이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사실 직장에서는 아무도, 그 누구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과 부딪히는 환경이 싫어 자꾸 피하려고만 했었던 내 행동의 결과였다. 많은 사람이 모여 이야기하는 공간에서는 마치 나를 험담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였고, 닫으려 해도 귀에 맴도는 웅성거림은 벗어날 수 없었다.


정확한 원인은 불명. 그저 혼자 만들어낸 스트레스가 가장 클 것이라고 했다. 우울함.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면 속 시원히 뚫릴 수 있을까. 마음속 차지한 답답함은 공황장애에서 이제는 우울증으로 그 모습만 바뀐 채 나를 다시 괴롭히기 시작했다.


중독에 빠진 사람에게는 우울증이 더 문제다. 분명 ‘아닌 걸 아는데, 몸과 정신은 따로’인 상태. 신체적 욕구가 정신을 지배한 상황이다. 중독에 빠지게 되면 외로움과 싸움이 시작된다. 아무리 주변에서 도움을 준다 한들 결국 이겨내야 하는 건 본인의 몫이라는 걸 수 없이 들어왔다. 그것도 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으로 마땅한 일.


중독 치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여길 때가 가장 위험하다. 처음에는 분명 마음속 하지 못한 말 하나까지 세세하게 다 이야기하고 들어주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직 완전히 지우지 못한 마음속 어둠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특히 잠이 들기 전이나, 혼자 있을 때가 위험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다시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미안함과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이 다시 쌓이는 것이다. ‘괜히 나 때문에 사람들이 피곤해하지는 않을까?’,‘조금만 더 참아볼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안과 우울. 당사자가 아니므로 아무리 가족, 동료, 의사라고 할지라도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다.


잠시 중독을 치료했다고 생각했다가 일상생활로 돌아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또다시 자신만의 고민이 그를 덮친다. 그래서 중독은 완치가 없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껏 자신이 잘 걸어온 길을 스스로 보여주며 밝은 모습만을 머리에 심어주는 것. 그리고 직접 실행하여 증명하는 것 만이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이처럼 중독자는 매 순간을 도전하는 마음으로 본인을 관리해야 하는 외로운 사람이다.


또한, 중독과 우울함이 공존하지 않도록 필수적으로 자신만의 관리법을 고안해야 한다. 누군가는 운동으로, 누군가는 또 다른 취미와 재미를 찾아 습관 자체를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주치의의 말이 ‘무엇보다 본인의 변화 의지가 제일중요’하다고 했다. 이제야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선 센터의 상담과 외적인 치료가 필요하겠지만 그것들은 외부요인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중독과 우울함에 빠뜨려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과 해답을 찾는 것이다.


우울. 마음의 병. 단순하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지키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 안쓰러운 마음뿐.


병원에 머문 시간은 십여 분 남짓의 순간이었지만 내 마음의 상태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전 메모장을 꺼내어 아래 문장을 옮겨 적었다. ‘현재의 삶을 저당 잡혀 미래까지 망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나의 마음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 지금 걷고 있는 터널의 끝에 빛나고 있을 나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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