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맞이하는 여름은 유독 힘들었다.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 탓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겪는 이별 때문이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은 갑자기 쏟아진 한여름 소나기에 휩쓸렸다. 3주간의 조정 이후, 다시 찾은 가정법원. 어색함의 기류 속에서 서로에게 마지막 인사만 남기고 돌아섰다.
마침 그날이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앞서 전화로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계셨지만 정말 갈라설 줄 모르셨을 거다. 태어나 지금까지 부모님의 말씀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생신 축하드려요’라는 말 대신 ‘죄송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로 아버지께 문자를 넣었다. 너무 속상했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다. 화가 나고, 손이 떨렸지만 애써 속으로 삼켰다.
그 이후로부터 1년 동안 알코올 중독을 겪었다. 처음에는 우울함을 떨쳐 내려 찾은 술이었다. 손쉬운 위로. 누구는 내 말을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네가 잘못해서 그렇지!’ 식으로 핀잔을 남겼을 테지만 앞에 놓인 술잔은 그런 법이 없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역할을 할 뿐. 한 잔, 두 잔, 석 잔…….;.
하루는 도저히 출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술이 깨질 않아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가 가는 도중에 잠이 들어 깨지 못한 적도 있었다. 회사 앞에 도착한 택시 기사는 몇 번을 나를 흔들어 깨운 지 모른다. 마침 지나가던 친한 동료가 그 모습을 보고는 나를 깨워 사무실까지 간 적도 있었으니까. 창피한 일이다. 손가락질받아도 할 말이 없는 일. 그런데도 내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변에서 가만히 두면 안 되겠다는 말과 함께 알코올 치료센터를 권했다.
마치 무슨 병에 걸린 사람처럼 취급받는 받는 것도, 매일 아침 눈을 떠 다시 시작하는 것도 그냥 싫었다. 차라리 영원히 잠자리에 들면 낫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었다. 나에게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 부닥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래 x 같은 세상 네 마음대로 해보라고 해!.’
센터를 찾았다. 반강제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강권, 그리고 세상에 남겨진 아들에 대한 책임감. 만약 내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평생 손주를 키워야 하는 두 분에게 또 다른 불효를 저지르는 셈이었다. 그렇게 술과 싸움을 시작했다. 사실 치료보다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주변으로부터 이미 좋지 못한 평판을 받고 있었고, 누구 하나 응원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는 게 더 힘들었다.
고민하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참여해 집단 상담을 받기도 하고 관련 수기를 읽는 게 도움 된다는 말에 수시로 들고 다니며 읽었다. 하루, 이틀. 반강제적으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날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관심 분야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동안 오로지 관심 분야는 ‘퇴근 후의 술’이었다. 위로라는 핑계로 시작한 끝이 중독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그 관심이 사람들과의 대화로, 나중에는 SNS와 수기 쓰기에까지 옮겨갔다.
인터넷에 ‘중독’을 검색하면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알코올’을 비롯해서 ‘게임’‘도박’‘성형’‘음란물’‘쇼핑’‘스마트폰’ 등. 처음 중독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내가 무슨 중독이야.’ 했지만, 일반 사람들이 하는 이상의 행동을 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 그 자체가 중독이라는 말에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일상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으니까.
센터의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낸 뒤에는 사진을 찍으면서 SNS에 태그를 붙여 중독 탈출기를 올렸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지금 내 처지에는 찬밥, 따듯한 밥 찾을 수 없는 일.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도움의 손길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올린 용기였다.
직접 자신이 겪었던 수기를 댓글로 써준 이도 있었고, 도움이 되는 약과 책을 추천해 준 사람까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위로였다. 시간이 지나 그들의 따뜻함은 차가웠던 내 마음을 데우는 데 충분했다.
이제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직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터라 경제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지금의 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일, 그게 무엇이든 할 수만 있다면 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의 겪었던 일, 보고 들으며 마음속으로 담아두었던 고민과 씁쓸함을 꺼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일이었다. 평생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도 했다. 지금껏 되는대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되고 싶은 대로 살아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맞춤법도, 제대로 된 글쓰기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는 내가, 하루아침에 미친 사람처럼 책을 들고 다니며 읽기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이번에도 난리다.
“네가 무슨 글을 쓴다고 그래?”“갑자기 안 하던 짓 하면 사람이 일찍 죽는다는데”“책 읽으면 뭐가 바뀌어?”
그 틈에서 악착같이 버텼다. 그때마다 SNS에 올렸던 수기를 읽은 사람들의 응원이 힘이 돼줬다. 살아오면서 일면식 하나 없는 사이에 내가 내일 당장 잘못되더라도 그들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도 하나 같이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응원의 글을 남겨줬다.
덕분에 나는 힘을 잃지 않았다. 오로지 나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고 이제만 5년 차 글쓰기 러버가 됐다. 단지 쓰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도중에 여러 문학 공모전에 관련 수기와 기타 문학 작품을 공모하여 당선된 적이 있다. 24년에는 온라인 작가 플랫폼 중 하나인 ‘브런치스토리 ' 에 정식 작가로 입문도 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던 내가 이제는 ‘글쓰기 중독’에 빠져 하루를 바꾸고 삶 전체를 바꾸어 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는 안다. 마음속 불안과 분노, 우울, 억울함은 누구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겪는 오늘을 사는데 두려움과 한탄으로 끌려갈지, 아니면 다짐과 설렘으로 맞설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이라는 것도.
중독은 완치가 없다. 죽을 때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마음으로 품어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 삶의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고개를 슬며시 드는 중독을 누르는 방법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나는 이걸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하자’라는 삶의 태도다.
누군가가 나에게 ‘만약 당신의 삶 중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묻는다면 나는 분명히 말할 것이다. ‘바로 지금, 오늘이 순간’이라고. 분명 지금까지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한 단계씩 성장하는 순간의 희열과 기쁨을 느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삶의 의미를 깨닫고 태도가 바뀐 셈이다.
마지막 날 정신과 진료까지 마치면서 ‘완화’되었음을 안내받았을 땐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눈으로 보이는 것 중에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변화. 그것 하나가 생겨났을 뿐인데 하루하루가 설렌다.
만약 나에게 또 다른 중독, 아니 삶의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잠시 흔들릴지언정 다시 똑바로 걸어갈 것이다. 매일 나를 위한 일기를 쓰며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만이 내 꿈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하더라도 나는 안다. 내가 나를 놓지 않는 한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언제든 똑바로 걸어갈 수 있음을. 그래서 나는 지금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