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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un 29. 2024

기록의 쓰임

오래된 기억에 지금을 더해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사람.

이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 나달리의 문장 사전 '작가'




 알츠하이머, 흔히 치매를 일으키는 뇌의 늙음 중 하나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지만 누구나 이 증상을 겪지는 않는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익숙했었던 기억을 뇌에서 지우기 시작한다. 다시 그 위에 원하는 만큼 색을 입혀도 금방 지워지기 일쑤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특단의 방법이 있다. 생활하는 모든 곳에 메모지를 붙이는 일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이다. 가스레인지 손잡이, 형광등 전원, 문고리, 냉장고 등 등. 심할 땐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적어놓고는 목에 걸어놓기까지 한다.


 한 번은 티브이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 있다. 오래된 가족사진을 비닐로 포장해서는 얼굴 밑에 모두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할아버지의 기억을 위해 같이 지내는 할머니께서 손수 한 일이다. 그럴 때 보면, 기억은 머릿속에 저장해 놓는 일이 아니라, 특정 장소, 사람, 사물에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 제일 좋아하던 토끼 인형을 어른이 되어서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우연히 길 옆 유리창으로 만난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던가 하는 기억.


 다시 말하면 지금 내가 보는 장면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이미 있었던 일이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랄까. 


 작가는  이 모든 기억을 소중히 여긴다.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시간과 장소, 모든 인연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을 부려 하얀 백지에 자신의 기억을 기록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집 근처 강가에 나갔다가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기어이 돌 하나 들고 와서는  결국 책상 서랍 깊숙이 처 박혀 있는 기억도 되돌아보면 하나의 추억이고 생명이 된다. 


 쓰임이 있는 것은 기억,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오래되어 죽어 버린 할아버지의 기억 위에 지금을 입혀 놓는 것처럼. 기억은 한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일이고, 기록은 기억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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