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를 둔다
삶의 무대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한 달 전 우리나라에서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전문 촬영작가의 작품으로 예상되는 은하수 사진도 몇 장 포함되어 있었다. 한참 사진 속 밤하늘의 광경에 빠져있다가 불현듯 떠오르는지 생각하나. ‘나도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사진 촬영에 관심을 끌게 된 건 된 건 5년째다. 취미로 풍경 사진을 찍거나 지인의 부탁을 받아 아이 사진을 몇 번 찍은 적은 있어도, 야간 촬영은 경험이 없었다.
별 촬영 맛집 리스트를 찾아봤다.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조경철 천문대가 있었다. 곧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기온이 낮을 때에는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는 정보를 입수, 여유분의 배터리도 더 갖췄다. 구도와 카메라에 들어오는 빛 조절하는 기술도 독학으로 공부했다. 연습 삼아 사는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복도에서 밤하늘을 찍어봤다. 그런데도 막상 카메라를 밤하늘에 가져다 대면 머리가 하얘졌다.
‘무엇을 찍어야 하는 거지?’ 그럴 이유가 있다. 사진은 네모 화면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과 같다. 차라리 눈앞에 있는 피사체를 카메라로 촬영하라고 하면 셔터 한번 누르면 끝이다. 하지만 밤하늘은 다르다. 눈으로는 무수히 많은 별이 보인다 해도 막상 카메라의 렌즈로 보면 한참을 찾아야 한다. 조리개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이고 셔터의 속도까지 신경 써야 한다. 만약 설정이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어둡거나, 하얗거나, 형체를 알 수 없는 결과만 보일 뿐이었다.
별이 잘 보인다는 겨울, 그중에서도 기온이 낮을수록 사진 촬영에 유리하다는 말에 10월 마지막 토요일 새벽으로 촬영일을 계획했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한겨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온이 낮은 날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어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운전대를 잡았다.
약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창문을 내리자 마스크 없이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코안을 쑤셨다. 마치 칼로 오려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화천은 역시 강원도였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 장비를 꺼내었다. 삼각대 가방, 카메라 가방과 바람을 막아줄 작은 텐트, 의자, 헤드 랜턴까지 쓰고 있는 모자에 고정했다. 일반인이 접근해 촬영할 수 있는 곳까지는 10분을 걸어가야 했기에 서둘러 걸었다.
‘찰칵’ ‘찰칵’
기계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둠 속 곳곳에서 들렸다. 짧은 감탄과 탄식 소리도 들렸다. 서둘러 삼각대를 설치했다. 마스크를 쓴 탓인지 눈썹에 자꾸 서리가 꼈다. 오늘 사진 촬영을 위해 큰마음 먹고 준비한 휴대형 충전용 핫팩을 들고 있는데도 손가락이 얼어 잘 펴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부는 느껴지는 칼바람이 두꺼운 패딩을 뚫고 들어왔다. 손에 입김을 불며 삼각대 위에 카메라 설치를 마쳤다. 시간은 새벽 01시 35분. 이제 촬영 버튼만 누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꽝이다. 초점 없는 검정 화면만 보였다.
그 뒤로도 몇 번의 실패를 맛봤다. 조리개를 더 풀었다. 셔터의 속도를 낮추고 주변에 빛이 반사될 만한 물건을 모두 치웠다. 마지막으로 무선 리모컨으로 촬영 버튼만 누르기만 하면 끝이다. ‘삑’ 리모컨의 신호가 울렸다. 이제는 셔터가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1초’ ‘2초’……. 기다리던 10분이 됐다. ‘찰칵!’. 바람을 피하려고 설치해둔 1인용 텐트 안에서 밤하늘에 빠져있느라 미처 셔터 소리를 못 들었다. 대신 미리 맞추어둔 알람 소리가 울렸다. 결과물을 봤다. 만족. 그것도 대만족이었다. 마치 오늘 밤이 나에게 준 선물 같았다. 고대하던 은하수는 볼 수 없었지만 마치 바다를 밤하늘에 옮겨둔 것 같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파란색의 바다 위에는 반짝이는 별이 잔뜩 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밤하늘의 짙은 어둠과는 다른 장면이 신기했다.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계절별 보이는 별을 이용해 길을 찾거나, 운명을 점쳤다고 했다. 요즘 같은 내비게이션이 없는 시대에 별을 보고 방향을 찾는 능력은 꼭 필요했다. 그걸 요즘은 누군가는 바라보고 즐긴다. 아무튼, 별 볼일 없이 머리 숙여 손바닥 화면만 바라보며 살았던 나에게 가슴 들뜨게 하는 놀이가 됐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별에 가까이 가고 싶어 했다. 몇 명은 뒤쪽 흙무덤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필경 자신만의 명당이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열렸던 세계 불꽃놀이 축제가 생각났다. 이른 저녁부터 사람들과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 장비를 설치했다.
행사 시작시각이 임박할수록 인파는 늘어났다. 누구는 옥상으로 올라가기도 했고 접근금지 경고표지를 무시한 채 난간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위치를 잘못 잡았던 탓인지 우리 일행의 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촬영이 어려웠다. 아무리 취미였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날을 위해 오랜 준비를 마쳤기에 더 좋은 자리를 찾기로 하고 B와 내가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때였다. 밤하늘이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수백, 수 천 개의 폭죽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닷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움직이던 B와 나는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이 멈췄다. 이동하던 차도 그 자리에 멈췄다.
이 순간 움직이는 건 사람들의 눈동자와 더 크게 울리는 심장뿐이었다. 카메라를 펼칠 생각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담기기 시작했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이용한 뮤지컬 관람을 한 적 있다. 입장료 종류가 다양했다. 특별석, S석, A석이으로 나뉘었는데 금액도 15만 원, 10만 원, 5만 원이었다. 처음엔 무슨 차이인지 몰랐다. 무대에서 좀 더 가깝거나 잘 보이는 좌석 배치도에 따라 나뉘었다. 그땐 돈이 없어 제일 저렴한 5만 원짜리를 예매했다. 현장에 가서야 왜 좌석이 금액별로 나뉘어 있는지 알았다. 그날 나는 무대에서 가장 먼 자리를 배정받아 관람했다.
만약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하늘이 무대라면 우리에게 특별석, S석, A석이 나뉠 수 있을까?. 건물의 옥상에서, 해변가에서, 도로위라고 한들 조금 높고 낮을 정도 일뿐이다. 어차피 입장료나 관람료가 없으니 상관없었다.
안개가 자욱한 소나무 숲 사진이 유명한 곳으로 출사(사진 촬영하러 직접 현장을 방문하는 것) 간 적 있다. 아침에 부는 바람에 안개가 이리저리 소용돌이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흩어지지는 않았다.
놓칠세라 열심히 셔터를 눌렀지만, 안개는커녕 하얗거나 회색빛 화면만 찍혔다. 사진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조작법도, 구도, 빛 조절하는 기술이 부족했다. 시간은 어느덧 안개가 걷힐 시간이었기에 포기했다.
그냥 두 눈으로 구경하기로 했다. 그때 소나무 사이로 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안개는 걷혔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자연현상이었다.
안개 낀 소나무 숲을 촬영하려고 숲 가까이 다가갔을 땐 안개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봤었던 그 멋진 사진은 소나무 군락을 감싸고 있는 듯한 안개였다.
삶의 모습이 매번 아름다워 보일 수는 없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가 보면 비극이 삶이라는 말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걸 알 수 있다. 운 좋으면 소나무 사이 비치는 햇빛의 통로를 볼 수 있듯 삶에도 나만의 빛이 내릴 것이라는 걸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