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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다가 운다면

by 회색달

공저 쓰기 과정은 24년 8월에 시작해 10월의 끝자락에서 끝났다. 이름도, 얼굴도 한 번 만난 적 없는 사람 열 명이 백란현 어부의 낚시에 줄줄이 낚였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탓에 오프라인으로 모임을 할 순 없었고 줌(Zoom)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었다.


어색한 인사말로 포문을 연 공저 안내. 대충 들어도 쉽지 않은 도전 같았다. 지금까지 단편을 써본 경험이 많았지만 4편 이상의 글을 한 가지 주제로 써야 한다는 말에 뒤통수만 긁적였다. 거기에 더해 책의 목차에 맞게끔 제목을 다듬는 것, 다른 작가들과 글의 내용이 겹치지 않는 것까지 서로 토의해야 했다.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리라 생각했다. 이미 함께하기로 한 이상 나 역시 속도를 내가 써야 할 분량을 서둘러 끝마쳐야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2주 남짓했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기간을 꽉 채웠다. 글 한 꼭지당 약 A4용지 1.5매의 분량. 4편을 썼다. 혹시라도 꼴찌로 제출할까 싶어 서두르긴 했지만 1등은 이미 다른 작가의 이름이 올라왔다. 이튿날 원고 종합 본이 채팅방에 공유됐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했다. 왼손으로 턱을 괬다. 집중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오른손으로는 마우스 잡았다. 첫 페이지부터 읽으며 휠을 조금씩 내렸다.


만약 이 세상 바다가 울어 바닷물이 몽땅 사라진다면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래와 자갈, 암석, 고래, 상어, 등등 셀 수 없는 다양한 존재가 남아 있을 터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몸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물, 눈물이 몽땅 사라진다면 쟁반엔 무엇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픔. 기쁨, 즐거움, 사랑, 그리움 등 몸 밖으로 나오는 감정의 물길이 메말라 그제야 내 몸 안에 이렇게 수많은 감정이 나와 함께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터다. 삶이 그랬다. 나는 몰랐는데, 모른 척하고 지난번 많았는데 마음 한구석 차지하고 있었던 나의 감정이 보였다. 공저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땐 그런 감정이었다.


강혜진 작가의 글에서는 불평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감정을, 김서현 작가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어 쓰며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에 마음이 일렁거리기 까기 했다. 그 외에도 많은 글이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줄여야 하지만, 처음 그들의 원고를 읽었던 순간의 감정은 잊지 줄이지는 못하겠다.

돌아보면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한 도전이 많았다.


중간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포기를 밥 먹듯 했다. 창피한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해본 경험이 많은 덕분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책 쓰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도전의 마침표를 찍는 기분에 활력 넘치게 시작한 책쓰기, 겨우 두달이 지났는데 벌써 끝난다고 하니 아쉬웠다.


10월 둘째 주 토요일 출판사와 출간 계약이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울러 대전에서 축하 행사를 한다는 소식에 곧바로 ‘참석합니다!’를 채팅방에 썼다. 춘천에서 대전까지는 직접 운전하기로 했다. 평소 입지 않는 장까지 꺼내었다. 고속도를 곧장 달려 4시간이나 걸렸지만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분명 혼자 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도전이었기에 함께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더 크게 느껴진 덕분이었다.


행사장에 도착해 짧은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며 계약서에 이름을 썼다. 신기했다. 아니 실감 났다. 이제야 세상에 내 이름이 작가라고 소개되기 위해 첫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행사 마지막 무렵 한 작가분께서 노래 한 곡을 요청했다. 평소 노래라 하면 빠지지 않는 성격이라 못 이긴 척 응했다. 신청곡을 받았다. 가수 임재범의 비상이었다. 외롭지만 따뜻하고, 쓸쓸하지만 가슴 뜨거워지는 노래였다. 반주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누구나 한번 즘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순간이 있지.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다시 돌아오는 길을 모르니.’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고 몇 초도 되지 않아 코가 막혔다. 울컥해질 때 나타나는 나만의 증상이었다. 모른 체했다. 입술을 꽉 깨물어 불렀다. 다행히 앉아 부르느라 손을 꽉 쥐는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따라 불렀다. 그런데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글쓰기 전의 삶보다 쓰고 난 후의 삶이 더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온몸이 부서지하고 운동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공허함이 찾아왔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술을 마셔도 다음 날엔 채워지지 않은 외로움이 나를 괴롭혔다. 책과 직접 만나온 작가의 수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이 넘쳤다.


어느 순간 내 등을 든든히 받쳐주고 있었다. 옆에 서 있었다. 나와 함께 도전한 작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꽃다발을 선물해주는 작가, 새벽부터 일어나 선물로 약밥을 만들어온 작가. 한 명 한 명이 모두 고마웠다.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노래를 마치고 그동안의 내 고생이 아니라 덤덤하게 하루를 살아온 작가들을 보니 손뼉 쳐주고 싶었다. 혼자는 작지만, 노력의 크기가 얼마나 과정에 담겨있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기 상품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 없다. 노벨 문학상을 노릴만한 실력도 못 된다. 그런데도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사람이 됐다. 인생은 의미 있는 일에 도전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의미가 있다. 두 달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직장 일이 많아서 퇴근을 늦게 해서도 거실 한 가운데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식탁에 앉았다. 온 불을 다 끄고 독서 등 하나만 켜놨다. 모니터 하면에 검정 깜박임이 멈추지 않도록 쉬지 않고 써 내려갔다. 글이 끊겼을 땐 책을 펴 읽으며 문장을 발췌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공모전 준비도 해야 했고 대학교 과제 제출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꼬박 밤을 새우고 출근한 날도 있다. 이번 공저는 결코 썼으니 당연하게 나온 것도, 쉽게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꾸준하게 글을 써온 노력, 브런치 이야기에서 활동하는 작가 경력이 도움이 됐다. 개인 블로그에도 소식을 몇 줄 올려뒀다. 앞으로 이런 나의 경력이 쌓일수록 삶에 자랑스러우면 한 줄이 쌓일 테지. 내가 얼마나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는 없을 테지.


나는 5년 차 초보 작가다. 공저를 쓰게 될지는 결코 예상 못 했다. 때로는 밀려온 파도에 몸을 맡겨보니 가슴 일렁이는 경험이 하나 쌓였다. 함께 경험이 나를 한껏 성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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