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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Feb 24. 2024

20.맛있는 실패

성공을 위한 최고의 요건

 몇 년째 예비작가,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넓은 세상에 내 이름으로 그럴싸한 작품 하나 내지 못한 작가 지망생이다. 가끔은 지금 하는 이 일을 의심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인가?’ 하며 혼잣말할 때도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마침표 하나를 찍지 못해 구겨놓은 수많은 기록의 흔적들. 시간이 지날수록 좁은 책상을 가득 채운 건 장미 및 미래 대신 색 바랜 종잇조각들뿐이었다.

 그러다가 단편집을 써냈다. 세상에 한 권뿐인 내 수필 모음집이었다. 책상에 대충 쌓아둔 기록이 쌓여 청소할 때마다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흩날리던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퇴고를 시작했다.

 

 문맥의 앞뒤도 안 맞고, 맞춤법은커녕 띄어쓰기도 엉망이었지만 그날 시작한 뒤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땐 책의 원고가 되어 있었다. 매일 퇴근 후 방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 앉아 이루어낸 일. 누가 강제로 등 떠밀어 한 일도 아니었고,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의 실패를 보듬어 보기 위함이었다.


 수년째 다니고 있었던 직장에서 매번 승진 누락을 맛본 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욱이 입사가 늦은 후배의 이름이 승진자 명단에 있을 땐 조용히 그들의 뒤에서 손뼉만 치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그때 내가 만약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그때 느꼈던 패배감, 우울함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니까. 직장에서 빠른 승진과 승승장구를 달렸다면 인생의 쓴맛은 느껴보지 못했을 게 뻔하다. 그러다가 한 번 더 크게 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땐 쉬운 위로를 찾아 많이 방황도 했었다. 대부분이 유흥과 의미 없이 떠나는 즉흥적인 여행이었지만 그땐 그 방법이 쉬웠다. 취하면 잊을 수 있었고, 그만큼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건 글을 쓰면서부터다. 이른 새벽과 늦은 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역시 글쓰기 덕분이었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면 외로움을 느낀다지만, 그만큼 나와 가까워질 기회가 생겼다. 그건 고독으로 걸어갈 기회이기도 했다


 23년 10월. 국내 유명 월간 잡지사에서 수필 공모전을 열었다. 그동안에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며 이번만큼은 나도 제대로 도전해 보겠다는 다짐으로 두 달 넘도록 도서관과 독서실을 찾았다.

 남들은 자격증이며, 취업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나만의 인생 공부를 위해 나의 기록을 펼쳤다. 울면서 보냈던 시간, 갈등과 아픔으로 보냈던 시간, 여행지에서 느꼈던 희열과 감동의 순간까지 되짚으며 내 삶의 오답을 하나둘 정리해 나갔다.

그렇게 정리한 글 편수가 10편 남짓.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럴수록 머리에 맴도는 건 실패와 다짐의 반복된 날이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글을 공모했다.


 23년 12월. 드디어 성공을 맛봤다. 공모전에 입선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주최 측의 연락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안내원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성과를 이루어낸 순간이었고, 포기를 수만 번 생각했을 때에도 묵묵히 매일 쓰면서 시간을 보냈던 나의 수많은 실패를 위한 보상이었다.

 

 그 이후 많은 성공이 실패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독서 관련 강연과 인권 분야, 꿈과 동기부여 등의 많은 주제로 강연을 다닐 수 있었다. 때론 강사로, 때로는 작가의 모습으로, 과거 나의 실패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에 힘을 나누었다.


 어느 날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인사말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실패를 맛있게 먹습니다.’라는 문장을 썼다.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곱씹어 어떻게든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이 말을 들은 친한 지인이 물었다.

“아니, 실패가 실패지. 무슨 실패 많이 한 걸 자랑삼아 말하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최고의 재료지.”

실패를 맛본 사람만이 성공의 단맛을 안다. 얼마나 맛있고 값진 순간인지. 많은 실패를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간절함의 끝이 얼마나 달콤한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슨 글을 쓴다고 그래?’였다. 그다음이 ‘심심해?’였고. 편견과 비아냥에 차라리 나에 대한 무관심을 마음속으로 요구하며 계속 모니터 앞에 앉았다. 17년도의 가을에 처음 글을 썼다. 당시 스마트폰의 앱으로 기록된 열 줄 남짓한 일기장이 기록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만 7년째 반복되고 있는 글쓰기다.


 처음 공모전에 입선만 하면 ‘나도 작가’다라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명함 하나 만들 수 있고, 책도 쓰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잠시 맛본 성공은 다시 실패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어 내 곁을 맴돌았다.


 공모전 입선 소식을 받은 날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책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제는 독서의 효과를 담은 내용. 누구라도 독서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나만의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독서에 빠져있었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저렇게 써볼까?’ 하며 책의 목차를 구성하면서 원고를 채워갔다.


 하지만 여러 출판사에서는 미안하다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 기다리는 연락은 없었다. 그중에 원고를 끝까지 읽어본 몇 곳에서 위로의 메시지를 담아 e-mail로 보내온 적이 있었는데 ‘직접 경험한 실패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말이었다.


 1000곳이 넘는 출판사에 투고했다. e-mail조차 읽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위로라는 말은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돈이 되지 않는 내용’이라 그런 그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말이 맞았다. 내 실패는 오로지 나만의 것, 그만큼 나에겐 든든한 아군이 쌓인 셈이었다. 쳐다보기도 싫고, 이름도 부르기 싫은 존재였지만 이번만큼은 누구보다 마음이 놓였다.


 원고를 버리기보다는 수정을 거쳐 이번엔 전자책으로 방향을 다시 잡았다. 20여 분이면 충분히 읽을 만했다. 그렇게 내 이야기는 전자책으로 모양을 바꾸어 세상에 인사하기 시작했다.


 실패라는 말과 ‘아름답다.’, ‘성공적이다.’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실패를 잘 딛고 일어서 하나둘 성장하는 과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고, 끝까지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다면 과거의 실패조차 결국 성공이지 않은가. 지금도 과거 남겨놓은 실패의 얼굴들을 다시 만나며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선물해주고 있다.


 성공은 한순간이지만, 과정은 평생이다.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원하는 장소,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는 불행한 것이 아니다. 단지 성공을 제외한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는 결과 아니라 평생의 과정을 즐겨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도 실패를 아끼고 보살피는 이유는 결심이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이미 내려진 결정은 과거이고, 내일을 살아갈 나에게 필요한 건 결심’이라는 말. 실패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니다. 작은 물그릇에 담겨 있느라 잠시 넘쳐흐른 것뿐, 조금 더 큰 그릇에 옮겨 담으면 된다. 사람이 그릇이라는 말이다. 지금의 실패는 안타깝고 커 보이게 마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조차도 증발하여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새 그릇에 옮겨 놓은 나의 작은 실패를 입맛대로 요리해 볼 생각이다. 완벽하게 완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수많은 거절을 당해도 괜찮다. 실패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미 배웠으니까.




가. 23년 청년 이야기 대상 입선 ‘오지랖과 용기’라는 제목으로 수상했습니다.

나. 브런치 스토리 작가 도전 3전 4기 끝에 선정(24.1.23)되어 글 발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나. 23년도에 전자책 『독서습관 만들기 3가지 비법. 유페이퍼 출판사』을 출간했습니다.

- 그 외 시, 수필 공모전에서 다수 수상 소식을 선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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