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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Feb 24. 2024

22.기억을 기록하는 이유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

(2023년 12월 10일 23시 15분)


많은 책을 읽었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읽으면서 마음 어딘가 구석에 대충 구겨 던져넣은 기억이 담긴 종이 하나를 꺼나오기도 했다. 책이란 그런 것이었다. 작가와 나와의 소리없는 대화,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눈치 볼 일도 없는 시간.


 어딜 가나 늘 책을 들고 다녔다. 직장에서 퇴근 후에는 카페에 들러 그들과 대화했고, 때로는 '나도 그랬는데....' 하며 볼펜을 들어 책의 빈 공간에 생각을 남겨두었다. 시간이 흐른뒤, 나의 글 쓰기는 머리 속으로부터 책 의 여백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애초에 글 쓰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매번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없어 늘 몇 줄에 그쳤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 질문 하나 덕분에 나를 성장 시킬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생각의 샘에 깊숙히 들어간 나는,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인생 질문을 하나 주워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수면 밖으로 나와 가뿐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 이라는 책을 읽었다. 서양 소설가의 일상을 담은 수필을 모아 펴낸 유작이었는데, 모든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기록으로 남겨둔 책의 일부가 글 쓰기와 삶의 '어떻게'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됐다.


 진정한 삶이란 돈과는 멀어진 삶, 야망을 옆으로 제쳐놓은 삶, 어떻게 해서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지만, 그 삶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산 탓에 가난해지는 경우는 보통 없다.

                                                -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 제임스 설터-



소설인지, 수필인지, 아니면 독서감상문 인지 모를 그 날의 기록을 읽으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가정의 보기를 하나씩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SNS에 올려둔 몇 편의 기록 아래로 낯선 이의 방문이 눈에었다.


"저는 70넘은 할머니입니다. 전라도 시골마을에 살고 있으면서 몇 달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 했는데 처음엔 무엇을 써야할지 가늠 못하다가 이웃마을 사는 언니와의 대화를 적기도 하고, 집 앞 코스모스를 구경 한 날을 옮겨 적기도 했지요. 그렇게 하루, 이틀 이 지나면서 쌓인 시골 마을 할머니의 일기는 세상에 하나 뿐인 나의 역사를 남기는 기분이었답니다. 무리 하지 마세요. 님도, 저도 우리 모두는 오늘을 살아갈 뿐이니, 오늘 을 잘 기록 하세요. 그것만이 글 쓰는 방법이 더군요"


 무슨 용기였는지, 노트북 구석 깊숙히 넣어둔 기록을 몇 편 꺼내와 그 분께 보냈다. 어디 자랑 할만한 실력도 아닌 글. 맞춤법 조차도 제대로 맞지 않는 대부분이 미운오리처럼 살아온 내 삶 이야기를 보여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글을 읽은 한 사람 앞에 속 이야기를 더 꺼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 만큼은 어떻게 써야 잘 쓰는지 보다, 감히 당신 앞에 나의 기록을 꺼내어 나 잘 살고 있느냐고 묻고 싶은 용기였을지도.


"너무 깊게 고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 깊숙히 노를 넣으면 힘만들거든요. 적당한 깊이에서 노를 저으세요. 삶도, 글쓰는 방법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전업 작가도 아니니, 지금은 쓰기와 기억을 함께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너무 한 가지에만 몰두 하면 다른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한 가지에만 빠지지 말라는 말에 마음이 일렁였다. 다만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내 삶을 틈나는 대로 돌아보게 되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는데, 걸어온지 겨우 인생의 절반도 안된 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과거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직장에서 새벽까지 일하다 퇴근 하면 잠이 오질 않아 술에 의지 한 날 도 많았다. 일종의 번 아웃 이었다. 하루종일 일에 빠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고 무언가 계속 하고 있어야만 내 삶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며, 쓰는 동안 신기하게 마음 만큼은 편안했다. 바쁜 일터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읽고, 잠들기전 침대에서 쓰던 몇 줄은 돌이켜 보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더이상 술과, 수면제에 의존하지 않는 위로. 나는 그날의 기록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서.'

-20년도의 일기 중-


 그때의 나와, 올 해를 시작하는 날의 나와, 그리고 오늘의 나까지. 나는 계속 묻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이 질문의 대답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을지 몰라도 '나 이거 정말 좋아합니다.' 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대신 글을 쓰며 얻은 건 있다. 솔직함. 내가 바라보는 나에 대한 솔직함이다. 직장 동료 간에, 가족, 친구, 선 후배 등 등의 관계 혹은 업무중 실수로 힘들어 했었던 나를 한 발자국 떨어져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어떻게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쉬지 않고 쓰려고 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창문을 열어 마음을 들여다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고 그 만큼 내 기억을 아끼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도 글 을 쓰겠다라는 다짐은 변함 없다. 기록 해야만 하는 대부분의 기억 속 수많은 일이 후회와 절망 뿐이라는게 흠이지만,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내일의 나에게 약속을 해야겠다. '너무 깊이 젓지 말라' 는 말 처럼, 때로는 흘러가는 대로 즐겨도 좋으니 있는 그대로 숨쉬어 보고 무리 하지 말자고. 책상 앞 창문을 열었다. 새볔 공기가 온 몸으로 퍼지는 기분. 상쾌하다. 내일은 오늘의 상쾌함을 기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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