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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Mar 05. 2024

23.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방법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한 이유


2023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런 재능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냈다. 문학 공모전을 비롯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대학에서 열린 창업 경진대회에 아이디어를 제출해 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은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 그것도 대학 4학년 과정까지 마쳤음에도 다시 3학년으로 편입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았기 때문.


 문예 창작학과. 이름도 거창하지, 글을 창작하고 기초 이론과 학문을 공부하는 학과다. 처음부터 이곳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조금은 더 깊숙한(?)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직장을 다니면서 배울 방법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렇게 내 관심을 끈 곳이 사이버대학이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퇴근 후 밤에는 도서관과 독서카페를 전전하며 강의를 들었다. ‘현대 문학의 기초’‘웹 소설’‘웹툰 시나리오’‘시 창작’ 등. 강의 이름만 듣고서는 어떤 내용을 배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무를 수는 없는 일. 과제와 토론, 출석, 중간, 기말고사까지 한순간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강했다.


 늦깎이 대학생. 말 그대로 만학도였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했고 결과는 평점 B+.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닐 때보다 성적이 더 좋았으니 그동안 밤늦도록 과제와 씨름하느라 고생한 내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5년 전, 내 이름으로 책을 써내겠다며 책 쓰기 수업에 참여한 적 있다. 말 그대로 호기였다. 열 줄도 쓰지 못하는 내가 책을 쓰겠다고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 들기가 창피하다. 그런데도 당시엔 어떤 내용이든 쓰고 싶었다. 써야 했다. 쓰는 일 말고는 할 주는 게 없었다. 두 손으로 술잔을 드는 일보다는 더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 강원도 춘천과 서울 강남을 오가며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심히 쓰겠다, 좋은 작가가 되겠다는 의욕만으로 책, 아니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수업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손으로 옮겨 한 줄 한 줄 채워갔다. 그만큼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수 있어야 했다. 혹여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부분도 기어이 들춰내서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작가라고 했다. 창피했다. 동시에 ‘내가 무슨 작가가 되겠다고 이 일을 시작했을까?’ 후회까지 들었다.

요즘은 그때 만약 지금의 마음을 일찍 배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다 보면 내 마음에 쏙 드는 일만 생기는 법은 없다. 그건 내 삶에 나를 의지하는 일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삶이 나에게 의지하도록 내가 쓰는 대로 바뀌고, 말하는 대로 이루며 살겠다.’라는 생각말이다.


 며칠 전 4학년 1학기가 시작됐다. 스마트폰으로 수강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나에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나는 올해 생일이 지나면 정말 마흔이라는 사실과 지금껏 쓰고 있는 글이 있지만, 아직 나는 제대로 된 책을 출간하지 못한 예비 작가라는 것.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점은 단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냥 쓰는 것이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 쓴 게 아니라 책을 쓰고 싶어 시작할 일이고, 쓰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생각까지.


 과거 안네의 일기의 주인도, 수 백 편의 걸레를 만들어낸 헤밍웨이도 수년 이상을 쓰지 않았는가. 그에 비하면 나는 고작 어린아이 수준이니 마음 급할 일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이 감정이야말로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한 이유였다. 평생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나는‘하고 싶은 공부’를 찾은 것이야말로 성공이라고 생각한 것도 도움이 됐다.     


 창작학과 게 대부분 과제는 자신의 작품을 내야 했다. 시를 비롯한 수필, 영화 시나리오, 웹툰의 줄거리를 만드는 것까지. 그중에는 담당 교수님의 점수를 높게 받은 작품이 일부 선정돼 게시판에 올라왔었는데 읽다 보면 한숨뿐이다. 내가 가진 재능 중에는 글쓰기는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같은 사물을 보고 있으면서도 누구는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몇 줄의 글을 뚝딱 만들어내는가, 반면 나는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마침표를 찍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런데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어 멈추지 않았다. 읽고 쓰고. 다시 읽쓰고. 그렇게 반복한 수개월. 그러다 보면 나도 언젠가 글쓰기에 조금은 더 재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타고난 재능은 없어도 한자리에 앉아 마음먹고 쓰는 글이면 한 시간이 안 되어 3000자 이상의 초고는 써낼 수 있게 됐다. 꾸준히 읽고 쓰는 성실함. 그건 절대 휘발되지 않는 나만의 재능인 셈이었다.


 글쓰기에 빠져 있다 보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전체적인 흐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땐 그 자리에 쉼표를 찍는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빠르게 다시 읽어본다. 열 손가락으로 걸어온 나의 기억. 그러다 보면 금세 지금의 나와 동화되어서는 다음 이야기를 쓰길 재촉한다. 그제야 알게 되는 글쓰기의 매력. 쓰기만 해서는 오래도록 쓸 수 없고, 읽기만 해서도 쓸 수 없다는 진실. 어느 한순간은 멈추어 가만히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 바로 글을 쓰며 내 삶을 돌보는 기회다.     


‘소울 서퍼’라는 영화가 있다. 바닷가에서 자란 여자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서로 성장한다는 영화다. 이대로 끝이 아니다. 10대 시절 상어의 공격을 받아한 쪽파를 잃었지만, 그녀는 다시 바다로 나아가 서퍼로 삶을 살고 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사고와 이를 극복한 여성의 이야기다.


 서퍼는 깊은 바다까지 나아가 긴 널빤지에 자신의 몸을 의지한 체 몸을 파도에 맡긴다. 도중에는 넘어지거나 파도에 휩쓸려 보드와 함께 구르는 경우도 있다. 바닷물을 잔뜩 먹어 입안에 한가득 소금 맛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게 나였다.


  이십 대에 처음 시작한 서핑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겨 일주일을 휴가 내어 제주도에서 보낸 적도 있다. 뜨거운 햇볕에 등과 어깨, 팔, 목이 탔고 모래에 쓸려 발바닥이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내가 스스로 일어설 방법은 오로지 반복만 하면 됐었으니까. 높은 파도를 무서워할 필요도, 까끌까끌한 모래 바닥도 나를 막지는 못했다.


 사실 영화도 제주도 숙소에서 본 것이다. 그땐 처음 배우는 서핑에 온몸이 알이 배어 숙소 침대에 기절해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에서 찾아낸 서퍼의 이야기. 그게 ‘소울 서퍼’였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런 대사를 남겼다. “나를 지나간 파도는 언제든 다시 밀려온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또 다른 파도에 휩싸일 것이다. 그것을 이겨내는 건 오로지 다시 일어나는 것뿐” 이 한 문장이 지금까지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글을 쓰지 않은 날들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글쓰기를 게을리한 것이었다. 영화 한 편으로 깨달았다. 파도를 이겨내는 일은 일어서는 것이고, 글을 쓰는 일은 다시 쓰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에겐 이 쓰는 것과 읽는 일을 제외한다면 마치 발가벗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제 이 두 가지는 나의 전부가 된 지 오래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이유’를 찾는 것. 만약 그 이유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과감하게 놓아도 된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대신 ‘나는 안돼’‘나는 재능이 없어’라는 말보단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즐기기를 권한다. 퇴근 후에 글을 쓰지 않는 사람처럼 PC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 운동을 즐기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 이기때문에 오늘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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