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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Mar 24. 2024

24.어제의 아픔이, 오늘의 성장이 됐다.

삶은 녹화 없는 생방송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때로는 침묵이 최고일 때가 있다.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이야기하거나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나서서 해결해 주려고 해도 오히려 화가 되어 상대의 마음에 가시가 될 수가 있는 때도 있다.


 직장에서 근무한 지 10년째 되던 해였다. 인사고과 점수가 부족했던 탓인지 계속해서 승진대상자에서 제외됐다. 맡은 일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부족한 능력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무기 삼았다. 그러다가 커다란 벽을 만난 셈이다.


설상가상 낯선 곳까지 따라와 나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약속했었던 가족은 갑작스러운 우울증으로 나에게 이별을 전했다. 후에 찾아온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어두움. 우울증이 찾아왔다.

 내 인생 최고의 고비를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더욱 일에 미쳐 있었다. 퇴근 후 불 꺼진 거실을 마주하는 현실이 싫어 사무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쪽잠을 청한 적도 많았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생각에 버텼다. 그러나 내 삶에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마음을 몇 줄 옮겨 글로 썼다. 몇몇 잡지사의 독자 참여란을 활용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빈 마음이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는 오해가 됐나 보다. 갑자기 변한 태도에 ‘돈을 벌고 싶어서 그러냐’‘인정이라도 받으려고 그러냐?’‘왜 쓰냐?’ 등의 말을 들었다. ‘너 말고도 더 힘든 사람 많아. 너 정도는 약관데 뭘 그래?’‘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들은 적도 많았다. 분명 별 뜻 없이 말했을 텐데, 나에게는 화살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그 사람을 앞에 붙잡아 두고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모든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 아픔의 모양도 깊이도 다른 법이라고. 제발 건방진 위로는 그만해달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사람 중에 내 편은 한 명도 없다고 느껴졌다. 말 그대로 몸도, 마음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불에 땀이 스며들 때까지 온몸이 아파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자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신과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둘 셋만 모여 있는 곳에 가도 나를 향해 수군거리는 듯한 기분. 밤이 되기만 하면 다시 떠오르는 불안감, 약을 끊을 만하면 두근거림에 뒤척이는 날이 많았다. 그 자리를 술이 대신 한 적도 많았다. 내 마음의 병은 대인기피, 공황장애. 우울증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내 삶에 온기를 다시 불어넣은 존재가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낯선 존재.

 삶을 토해내듯 SNS에 올려둔 일기에 다시 접속해서는 그날의 마음을 정리하며 조금씩 수정하며 있었는데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너무 무리 마세요’‘힘내세요’‘기분 좋은 날 되세요’ 등의 인사와 응원. 늦은 밤낮선 이들의 조용한 한마디는 무미 건조한 키보드위를 촉촉하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세상에 대한 원망 때문인지, 조용히 내 뒤에서 등을 두들겨 주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글을 쓰며 삶을 돌아보니 비틀거리고 있는 ‘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주변에서 잡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정성을 다해 쓴 글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마음을 얻고 갑니다.’라는 댓글에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창문 밖을 한참 동안 봤다.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한 이후부터,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22년도부터는 강의까지 나간다. 주제는 이미 내가 겪은 이야기, 독서, 꿈과 비전, 중독 예방 등이다.


 한번은 강의에 참여했던 한 사람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지금껏 삶이 불투명했는데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유리창을 한번 닦아낸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삶은 생방송’이라는 말이 있다. 녹화 방송 없이 매 순간 멈추지 않고 연속되는 시간의 반복. 설령 예고 없는 NG 장면이 나오더라도 멈출 수 없다는 말이다. 실수하더라도, 넘어지더라도, 방송은 계속해서 진행된다. 그러니 늘 ‘다시’라는 말을 꼭 기억해뒀으면 한다.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한 어제의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우리는 그 과정을 기꺼이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겪었던 어제의 아픔은, 오늘의 성장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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