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혼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과연 필요할지, 그리고 이혼 과정에서 주변인들을 통해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변화를 담아보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이혼 결정 자체는 주변과의 대화에 의존하지 않고저 혼자서 내렸습니다. 이혼 결정을 내리기 전, 제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는 소수의 지인들은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저에게 '차라리 이럴 거면 이혼해라'라거나, '그래도 이 정도면 참고 살아라'라고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혼이란 큰 의사결정이고, 타인이 이래라저래라 말을 얹기는 곤란한 문제이니까요.
그런데 이혼 결정을 내린 후 소송 등이 진행되며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제 마음에는 무수히 많은 고민과 괴로움이 있었고, 가까운 이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저 제이야기를 속시원히 토해내고 싶은 마음과, 저의 선택에 대해 '잘했어'라고 지지받고 싶은 마음, 저의 미래에 대해 '넌 잘 해내고 잘 살 거야'라고 격려받고 싶은 마음 등이 혼재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법적으로 정리된 상황은 아니라서 주변에 공개적으로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사생활의 비밀을 지켜주리라고 믿을 수 있을 법한 사이의 지인들에게 '비밀'이라는 단서를 달고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지인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습니다. 그 반응이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합니다만은- 제게 있어서 '흡족스러운지' 여부는, 평소 그 상대와 제 관계의 친밀도에 완전히 비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혼 진행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일련의 과정은 평소의 인생에서는 겪기 힘들었던, 인간관계에 대한 상황 실험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마음도 많이 아팠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혼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 반응이 제 마음에 좋게 느껴졌던 경우가 딱 어떤 경우라고 정리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반응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습니다.주변 지인들의 반응을 대략 세 가지 부류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저에게 힘이 되는 반응을 주었던지인들입니다. 이들은 일단 저의 선택 자체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혼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래, 그렇구나'라는 식으로 일단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들어주되, 제가 공개하고 싶지 않아 하는 부분까지 추가적으로 캐내기 위해 취조하듯이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이혼을 '비극'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적당한 선에서 조심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비극적 일이라고 단정하며 너무 안타깝다거나 너무 짠하다, 앞으로 너 어떡하냐 라는 식의 반응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안타까워하는 것이존중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조언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아이가 받을 상처'를 걱정할 경우, 제가 엄마로서 가진 '객관적으로 좋은 여건'들을 잊지 않도록 말해 주기도 했고, 저의 인식이 편협해서 과도한 걱정이 유발되는 부분에 대해 집어 주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상대의 인생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따스한 우정을 보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친밀도와 무관한, 자기 본인의 인격적 성숙도와 관련되는 일입니다. 저또한 저의 지인이 저에게 내밀한 일을 오픈했을 때, 이렇게 힘이 되는 사람으로 있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나중의 글들에서 제가 이들로부터 들었던 격려의 말들을 소개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둘째로, 대화 이후 제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지인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대놓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식도 있으면서) 이혼을 하니'라고 저의 선택을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이혼 절차가 끝나고직장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직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분들 중에서는 오지랖의 형태로 저런 말씀을 하실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 지인들은 대부분은 저와 비슷한 연령대이므로 최소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다른 형태의 반응으로 씁쓸함을 주기는 했습니다. 그런 지인들의 특징은, 저의 이혼 소식을 듣고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라며 본인의 인생과 비교하며 위로받는 기색이 역력한 것이었습니다.이러한 경우 '네가 힘든 것을 보니 내 기분이 나아지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본인들은 티가 나는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문제로 여럿과 대화를 해 본 저에게는 그것이 보입니다. 예컨대, 대화 과정에서 호기심이앞서면서 취조하듯 상세히캐묻습니다. 연예인 가십거리를 서칭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이후 제가 다시는이야기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힘들지 않냐며 재차 자꾸 물어봅니다. 화제를 돌리며 피해도 계속해서 궁금해합니다.
조금 더 심하면, 추가 정보를 알고 싶어서 저와 가까운 다른 친구에게 제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는지인도 있었습니다.
남의 불행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 중 하나라고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의 이혼으로 인해 제 지인들 중 몇십 퍼센트 정도는 '그래도 나는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리라는 추정 자체는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티 나지 않게 억누르지도 못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불행의 이야기를 더 듣길 원하는 기색이 보이는 경우, 그간가졌던 애정이 무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듣고 잠깐 놀라지만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치여 있기 때문에 친구에게 기울일 에너지 자체가 부족한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둘째의 '저의 이혼으로 위안을 받는 친구'와 중첩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만(이런 경우 잠시 위안받고, 관심이 빠르게 사라지되, 궁금해지면 또 캐묻습니다), 당장은 상대적으로 더 편안한 유형이었습니다. 대신 더이야기를할 이유는 없는 지인입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건대, 이혼 이야기를 터놓았을 때 저에게 위안이나 힘이 되었던 지인들은 평소 친밀했던 사람이라기보다는 가치관이 다소 진보적이라서, 이혼을 '개인의 선택'이라 여기고 그다지 '크나큰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사람은 깊은 대화를 조금만 해 보면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제가 겪은 고통에는 공감해 주었지만, 제가 이혼으로 인해 인생 실패를 겪는 중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 티가 났습니다. 다른 어떤 말보다도, 그런 그들의 생각이 제게 전달되어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반면, 저에게 대화란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 이들의 경우, 이혼을 실패라고 생각하는 편이었습니다. 또한, 본인의 인생이 상대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상황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타인의 불행에 자기만족적인 목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본인의 결핍된 상황을 노출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대화 경험들을 통해서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한, '주변 사람들과 이혼에 대해 대화 : 과연 필요할까요?'에 대한 대답은이렇습니다.
1. 대화 욕구를 느낀다면 -대화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2. 다만 - 어느 정도의 확률로 상처도 받게 됩니다.
3. 다만 - 그로 인해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는 것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1.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이유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숨겨두고 있으면 마음의 그림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늘이 생기게 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오픈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어떤 부분은 열고 어떤 부분은 닫는 것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이들에게 모두 '나 이혼했어요'라고 이야기하라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은 TMI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 이야기는 대화 욕구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부정적인 일로 여겨서 마음속에만 꾹꾹 누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혼뿐만 아니라 그 어떤 주제에 관해서도 친한 이와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면, 소통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즉 이혼만을 굉장히 특별 취급하여 대화 주제에서 격리시킬 이유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상처도 받게 되리라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정 비율의 사람들은 타인의 힘든 얘기를 들으며 자신의 인생이 상대적으로 나은 듯한 감각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가깝게 여기던 이에게서 이런 반응을 보면 꽤나 충격적입니다. 사람을 가려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런 분별력이 있으신 분들은 내밀한 이야기를 할 만한 상대를 잘 분별하여 선택하여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분별력이 부족하여 제 기준으로는 진정성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이들로부터도 씁쓸한 반응을 겪은 경우들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상대의 반응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고 해도 큰상처는 아니며, 금방 극복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런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고, 인생은 길기 때문에, 언젠가는 현재 이혼을 겪고 계신 분들도 이런 심리를 느낄 수도 있는 일입니다.즉,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딱히 악한 사람인 것은 아니고, 다만 서로를 진정으로 위할 인연이 아닌 것일 뿐입니다.이들과 모두 사이를 단절할 필요도 없으며, 그저 '사회생활을 위한 관계' 정도의 영역에 재배치하는 정도의 마음 조정만 하면 됩니다. 깊은 우정을 나누기에는 부족한 것일 뿐이며 어차피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그런 관계가 대부분입니다.
3. 인간관계에 대한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다'라는 식상한 이야기이긴 합니다.다른 영역에서도 그러하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충격을 받고 나면 기존에 갖고 있던 어떤 틀이 깨져나가면서 사람을 다시 보게 됩니다. 다소 냉소적이고 우울해지는 느낌도 들지만, 또 그 감정이 쭉 오래가는 것은 아니고 회복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거창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인간 존재의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면을 알지 못하고 마냥 환상 속에 관계를 맺어오며 살았다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가지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혼'으로 계기가 왔지만,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계기는 오지 않을까요. 모두가 인생의 모든 순간에 완벽할 수만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많은 책들이나 타인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본인에겐 절대 그런 일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시련을 겪고, 누군가의 손을 간절히 잡고 싶어지는 그 순간, 사람에 대하여 인간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알아야 할 현실이라면 일찍 깨닫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순진한 관점에서 탈피해서 좀 더 현명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조금 정신승리 같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은 모두 사적인 지인과의 대화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혼이 종결되고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할까- 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저는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제가 아직 이혼이 끝나지 않아 경험이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만, 제가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을 다른 글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조심스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어느덧 목차를 쓰고 여덟 편의 글을 이어오면서, 구독자님이 90명을 넘었습니다.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새로운 경험입니다. 아마 이혼을 진행하시거나, 이혼을 고민 중이신 분들께서 주로 글을 읽어주시리라고 생각됩니다. 힘든 인생의 한 고비인 것은 명백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으니 잘 헤쳐나가면 또 다른 한 시기를 맞이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도, 독자님들께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