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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니 Mar 06. 2021

10. 이혼 후 행복의 조건 : 정상가족 신화 부수기

안 그래도 힘든 소송 기간, 정상가족에 집착하면 골병들어요

안녕하세요. 레니입니다.

 

벌써 3월이네요. 다음 주부터는 조금 덜 두꺼운 옷을 꺼내도 될 것 같습니다. 소송을 시작하며 사실상의 '돌싱'이 된 후로도 벌써 여러 번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초반에는 날씨가 더워지는지 추워지는지 잘 느끼지도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누그러뜨려 주는지, 이제는 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이혼하신 분들, 혹은 이혼을 전제로 별거 중이셔서 저처럼 사실상의 돌싱인 분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아주 큰 이유인 '정상가족 신화'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은 분들이 얘기하시는 주제이니만큼, 저도 제 나름의 경험과 견해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이혼절차 중이라고 얘기했을 때 가장 절 정면에서 찌르는 것 같았던 상대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헐, 그러면 애가 아빠가 없잖아."



왜 이 말이 그 순간 그렇게 아팠을까요?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이혼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부디 주변의 이혼한 사람에게 이 말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혼해도 아빠는 있지.'라고 대답한다 해도 아마, '그래도 같이 사는 거랑은 다르지'라는 말이 돌아왔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엄마-아빠-아이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뭔가가 결핍된 것이라고 판단 내리는 '정상가족 신화'입니다.


저 말은 사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무례하고 고약한 말입니다. 만약 실제로 이혼이 아이로부터 부모 한쪽을 빼앗아가는 일이라면, 그런 힘든 일이기에 더더욱 상대에게 그 점을 집어서 말하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배려가 결여된 말에 대해선 화만 내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말에 마음이 쿵, 하며 상처까지 입은 것은 - 제 스스로가 그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보통은 저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지만, 어쩐지 아빠-엄마-아이로 구성된 가족의 형태만이 정상 같고, 눈에 많이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가족의 모습은 '아픔이 있는 상태'로 묘사되고는 니다. 요즘 사회가 진보며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만 최소한 제가 자라왔던 시대에서는 소위 '이혼 가정'을 굳이 명명하며 안타깝게 그리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가진 엄마로서, 내 선택이 내 자식으로 하여금 '정상가족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자식을 위해 참고 살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그것은 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참고 사는 것이 답이 아니라면, (고쳐질 수 없는 상황임을 전제할 때) 헤어지는 것이 답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답을 선택하고 있음에도 그렇게 마음 아파해야 했을까요. 




저는 자식에 대해 지극히 보호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모든 상처로부터 한 올도 다치지 않게 지켜내겠다는 쪽으로만 결론이 흘러갔습니다.


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아이는 왜 우리는 아빠와 함께 살지 않는지 반드시 정면으로 물어보게 될 것입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해서 속상하다는 생각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가족 문제뿐만 아니라, 아이는 살아가며 계속 어떤 일들로 영향받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문제도 그런 사건들 중 하나입니다.


일단 아이가 속상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질문, 감정표현 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미리 해 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와 겪게 될 모든 상황적 시나리오를 전부 그려본 후 시나리오별로 어떻게 대응할지 계획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계속 시나리오들을 만들며 붙잡고 있다면, 불가능한 일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편집증적이기까지 합니(제가 좀 그랬습니다^^;;). 아이도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 사이의 일들을 어떻게 모조리 예비하고 대응할 수 있을까요.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면서도, 아이에게 잘 대응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근본적인 생각을 고치는 것입니다. 즉, 내 머릿속에 있는 정상가족 신화부터 부수는 것입니다.






본인의 가치관과 신념이 확실하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일관성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 대해서도 똑같습니다.


가장 먼저, '아빠-엄마-아이'로 구성된 그림만이 좋아 보이고, '아빠-아이', '엄마-아이', '할머니-아이' 등의 그림은 어딘가 안되어 보이고 짠해 보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를 안타깝게 여기면, 남들도 귀신같이 느끼고 안타깝게 여겨 버립니다. 

가정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마인드를 바꾸어야 합니다.


자식이 있기만 하면 모든 남자는 아빠이고, 모든 여자는 엄마입니다. 하지만 아빠라고 해서 다 똑같은 아빠는 아니고, 엄마라고 해서 다 똑같은 엄마는 아닙니다. 서로 다른 개인들로 이루어진 가정들은 다 다른 가정입니다. 가족 문화 간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루어진 사회적 연구 결과들도 많습니다. 부모에 따라 제공해 줄 수 있는 문화자본이 다르다, 정서적 기반이 다르다 같은 이야기들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콘텐츠가 중요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가진 가정을 만들면 됩니다. 


형태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안 쓰러이 여겨서 자식이 그 눈치를 채고 '우리 집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보다는,

형태는 부차적인 문제로 넘기고 더 중요한 콘텐츠에 집중해서 좋은 콘텐츠를 보유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쪽으로 실제로 에너지를 쏟으면 됩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혹시 이게 바로 이혼한 부모들이 자식에 대해 많이 갖는다는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혼을 자식에게 미안한 일로 생각하다 보니, 자식을 지나치게 오냐오냐 하게 되고 부모 역할을 하면서도 지나치게 자책을 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부모 말입니다.



그렇지만 위의 설명과 같은 강박적인 부모는 실제로는 좋은 부모가 아닙니다. 모성에 관한 어떤 유명한 다큐멘터리에서는 "가장 질 좋은 모성은 편안한 모성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좋은 부모로서 좋은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의 내면이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버릴 것은 : 이혼에 대한 과잉 생각, 자식에 대한 과잉 미안함, 기타 과한 비장한 의무감입니다.


추가할 것은 :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나 자신의 자기 계발, 사회인으로 성실히 살기, 미래에 대한 준비입니다.



잘못된 걱정은 줄여나가고 필요한 부분에서 고민해나가며 성실히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이렇게 항상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저 자체가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서, 계속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성은 이렇게 가지고 살아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큰 걱정은, 만에 하나 법원이 이혼을 허락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낮은 가능성입니다. 제 자신이 원치 않는 삶에 구속받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항소, 상고를 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생각입니다. 그만큼 제가 원치 않는 삶을 살지 않을 자유가 간절히 소중하니까요.



102세이신 김형석 교수님이 최근 중앙일보와 한 '자녀교육법' 관련 인터뷰에서, 자식 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자식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링크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078148

 


정말로 통찰력 있고 아름다운 견해였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전 제 자식도, 만약 나중에 본인의 날개를 꺾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면 참고 살지 않고 이혼할 정도로 자유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려움은 있지만 제 자신이 제 선택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소송 준비를 하고 계신 구독자님께서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브런치 상에서의 연대가 얼마나 따듯한지 느꼈습니다. 작가의 서랍에 글을 저장해 두고 짬짬이 조금씩 쓰다가 글을 올리는데, 쓸 때마다 제 스스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리되며 힘을 얻는 기분입니다.



프롤로그에 이 매거진 '변호사는 아니지만 이혼소송 가이드'의 대략적인 목차를 써 두었는데요, 몇 개 추가하거나 통합할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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