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닫는 그 순간, 하루치 피로가 온몸에 스며듭니다.
오늘 저녁
뭔가 딱히 손이 가는 반찬도 없고,
배달 앱을 켰다 껐다 결국 대충 한 끼일지 아니면 따끈한 집밥 한 숟갈일지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누군가는 혼자 누군가는 가족과 때론 친구와 함께.
방식은 달라도 결국 우리 모두 하루의 마지막엔 밥 한 끼 앞에 앉아
“나 오늘도 수고했다”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밥상은 그렇게 하루의 끝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지요.
그런데 이런 평범한 한 끼가 조선시대 왕에게는
‘나라’를 움직이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1737년, 영조 임금이 다스리던 조선.
큰 흉년으로 백성들이 힘들어하자 영조는 열흘 동안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확 줄였습니다.
백성들 고생하는데 임금 혼자 호사할 수 없다— 이런 마음을 밥상 위에 담아 보여준 거죠.
왕이 “나 절제한다!” 선언하면 신하들도 따라 절제하고 조정 분위기도 바뀌었습니다.
말로만 소통하는 게 아니라 진짜 ‘밥상’으로 나라 분위기를 움직였던 시절입니다.
왕은 엄청 잘 먹었을 것 같죠?
실제로 조선의 왕은 보통 하루 4번, 간식상까지 합치면 많게는 6~7번까지 밥상을 받았다고 해요.
아침, 점심, 저녁은 기본이고 새벽엔 죽, 오후엔 간식, 밤엔 야식까지.
특히 아침과 저녁 12가지 반찬이 빠짐없이 차려진 ‘12첩 반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화려한 궁중 밥상의 상징입니다.
특이한 점은 주요 반찬 하나하나가 다른 재료, 다른 조리법을 쓰기 위해 애썼다는 것!
그리고 수라상에 올리는 음식은 지방에서 최고급 재료들을 보내 만들었기 때문에
왕은 밥상만 봐도
“올해 쌀이 참 좋군”
“제주도 전복이 신선하네”
이렇게 전국 각지의 상황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해요.
칼질, 밥 짓기, 고기 굽기, 술 만들기 등… 각 분야의 ‘프로’들이 협업했습니다.
하나의 밥상에 열명이 넘는 손길이 닿았던 진짜 ‘궁궐급 협업 프로젝트’였죠.
밥상, 마음을 나누는 창구
왕의 밥상은 그저 배를 채우는 끼니가 아니었습니다.
백성과 마음을 나누는 창구이자 정치의 도구.
지금 우리의 밥상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군가와 나누는 한 끼, 자연스럽게 안부와 마음을 묻는 시간.
조선이 끝나며 궁중음식도 자취를 감출 뻔했지만, 우리는 이 특별한 식문화를 국가무형유산으로 남겼습니다.
특별한 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차려 먹는 집밥처럼 조선의 왕도 밥상에서 소통과 위로를 실천했습니다.
오늘 내 앞에 놓인 소박한 밥상도 사실은 나를 위한 최고의 위로이자 작은 세상을 지탱한 힘일지 모릅니다.
궁궐의 수라상이든 우리의 배달음식이든 밥상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 과거와 오늘, 나와 세상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밥 한 끼 잘 챙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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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궁중음식 (朝鮮王朝宮中飮食)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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