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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즘 Jan 15. 2024

글을 매일 써야 하는가?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하루에 몇 자를 쓰느냐에 대해 이야기하고, 매일 5천 자 이상 쓸 것을 강조하는 챌린지가 있다고 한다. 단순히 몇 자 이상 쓰면 실력 향상에 좋다는 덕담을 넘어, 하루에 n천 자 이상 못 쓰면 XX라는 등의 과격한 언사가 넘쳐난다. 심지어는 하루에 1만 5천 자까지 쓴다는 지망생과 작가도 있다.


  이른바 '5천 자 챌린지'는 이상하게도 디시인사이드의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만 퍼지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웹소설 프로 작가나, 다른 장르의 문학 작가, 비문학 필자들은 이 챌린지를 하지 않거나 적어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문능력 향상과 창작 체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5천 자 챌린지', 왜 다른 작가들은 하지 않을까?


작가의 시간은 유한하다

  많은 독자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으로, 전문 작가나 필자는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편견이 있다. 프로 작가가 되면 집필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키보드만 대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갈 수 있는가? 나는 '프로 작가'도, '전업 작가'도 아니라서 모르겠다. 다만 이런 오해들은 일반적인 집필 프로세스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글을 쓸 때 주제와 소재 구상-자료 조사 및 정리-개요에 자료와 근거 배치-집필-퇴고-완성의 순서로 씀이 일반적일 것이다. '5천 자 챌린지'가 관여하는 것은 네 번째 순서, 집필이다. 집필을 제외한 나머지 일들을 보자. 


  주제 구상? 나도 그렇고, 많은 필자와 작가들은 기획연재가 아닌 이상 글의 소재와 전개를 구상하느라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쥐어짠다. 자료 조사? 자신이 잘 아는 전문 분야이거나, 경험 위주의 에세이라면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슈를 총체적으로 탐사하듯이 조사한다든지, 관련자를 인터뷰한다든지, 서적과 논문을 찾아 읽는 등의 취재 활동이 들어간다면 하루종일 취재를 해도 모자랄 것이다. 


  논리를 짜는 일은 어떤가? 하나의 메시지와 그 논거를 정연하게 배열하려면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나도 논리를 짜다가 전개가 마음에 안 들면 지우고 다시 짤 때가 많다. 퇴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최소 1시간은 기본이고, 길게는 수년까지도 걸리기도 한다. 이들 활동을 하다 보면 하루에 5천 자를 그것도 매일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가의 아이디어도 유한하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이디어를 노트나 휴대전화에 메모해서 모아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디어는 항상 넘쳐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시점에서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는데, 다른 시점에서는 소재 고갈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기에 주제를 저축해서 필요할 때 인출하기 위해 메모를 한다.


  또 하나, 이 시리즈의 이전 화의 제목처럼 '주제는 순간과도 같은 것'이다. 아이디어가 그렇게 많이 떠오르지도 않거니와, 그렇게 떠올린 무수한 주제들은 글이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한 사람이 하루에 10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면, 그중 단 하나를 글로 완성하면 많이 쓴 것이다.


  이러한 가지치기는 좋은 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하다. 만약 생각나는 모든 소재를 글로 써버리면 어떻게 될까? 논리를 제대로 다듬지 못해 엉망인 글 열 개가 탄생할 것이다. 하루에 엉망인 글 열 편을 쓰는 것과, 최소한 기본기가 되어 있는 글 한 편을 쓰는 것은 분명 다르다.


작가는 글 쓰는 기계가 아니다

  작가 지망생들은 데뷔하고 성공하기 위해 기계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실성은 모든 직업의 기본이다. 그 성실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키워드를 주면 생각 없이 '아무 말 퍼레이드'를 하는 chatGPT가 아니다. 그렇게 글을 쓰면 정신건강이 악화될 뿐만 아니라, 몸 자체가 고장 난다.


  나는 작년에 겨우 한 달, 여섯 편을 마감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목디스크 의심증상과 그로 인한 3주 휴재였다. 매달 그렇게 쓴 것도 아니다. 단지 딱 한 달만 그렇게 썼는데 목이 고장 나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 키보드가 고장 나면 다른 키보드를 사면 되고, 아니면 자필로 쓰고 옮겨도 된다. 그러나 손을 쓰지 못하면 집필에 많은 지장이 간다. 작가와 필자의 대표적인 직업병으로 꼽히는 것이 손목터널증후군과 안구건조증, 목디스크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본인마저도 요즘 지나치게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 본인 혼자 그렇게 쓰면 될 일이다. 자신의 삶의 양식이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삶의 방식, 일하는 방식이 있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또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할 때 가장 높은 효율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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