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Life's too short !

by 호랑

� 에스파 - Life's too short


어쩐 일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걸음이 가벼워진다. 원래 매달 가장 자주 들었던 한 곡을 선정해 글을 쓰기로 했으나 오늘 무심코 흘러나온 이 노래가 반가워서, 또 작년에 기록해야 마땅했던 것들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해 이 글을 쓴다.


교환독서(우리는 '환승독서'라고 부른다)를 위해 집에 가만히 꽂혀 있던 <100 인생 그림책>을 꺼냈다. 목전에 다가온 모임을 위해서 후다닥 읽었는데, 오랜만에 읽어도 참 좋았다. 특히 70대의 글귀 중 '여전히 처음인 게 있다니'(정확하지 않음)를 읽고 순식간에 2025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이처럼 작년은 나에게 처음 투성이인 해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고르라면 단연코 JUMF 2025를 고르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락페스티벌이었고, 또 그것을 배짱 좋게 혼자, 오롯이 느끼겠다며 다이소에서 산 돗자리와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받은 보냉백,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을 사며 굿즈로 받은 우양산을 챙겨 들고 전북대학교 대운동장으로 향했다. 입장은 락페 선배님과 함께 했으나 그의 친절한 요약 정리를 듣고 나머지 일정은 혼자 소화했다. 그래선지 음악을 듣거나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뜨거운 여름을 힘겨워하며 그늘만 찾아다니던 내가 땡볕에서 인상도 쓰지 않고 신나게 돌아다니다니.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기록할만한 경험이었다.


아티스트는 알지만 몰랐던 노래도 많았고(예습을 안하고 가서 아쉬웠다) 처음 보는 아티스트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는 밴드 음악만 들었다. 음악만 들어도 그날이 떠올랐다. 가장 좋았던 건 이미지로, 장면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온열 질환을 막기 위해 뿌리는 물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조각의 무지개들과 내키는 대로 몸을 흔들며 음악을 느끼던, 근심 없는 익명의 얼굴들. 그 얼굴에 떠오른 터질 것 같은 미소들. 거울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도 똑같은 표정일 것이 분명했다.


락페의 꽃이라는 슬램도 처음 해보았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음악에 맞춰 몸을 부딪치고 우르르 흩어지는 것이 어린 시절 놀이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처럼 즐거웠다. 베이스, 드럼 소리에 맞추어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음악이란 것이, 예술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사람을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 <돈 룩 업>에서 아리아나 그란데의 무대를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오랜만에 뜨거운 8월의 햇빛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면서 이 순간을 절대 잊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글로 남겨야겠다고, 언제든 이런 '처음'에 도전해야겠다고.


잠시 쉬겠다며 자리로 돌아올 때면 '완전한 행복'이 세로로 적힌 짙은 파란색의 우양산을 찾았다. 내 돗자리랑 비슷한 돗자리가 많아서(어쩌면 당연하다) 특색 있는 우양산을 들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다. 느린 템포의 아티스트가 공연을 할 때면 돗자리에 앉아 흐느적거리며 음악을 들었는데, 때마침 운동장 너머로 지는 노을이 예뻤다. 매일 통학버스를 타러 가로지르던 공간에 앉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곡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 연극 연습이 끝나고 자괴감에 젖어 터벅터벅 걷던 스무 살의 내가 저기 보이는 것도 같았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마지막 아티스트는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밴드였다. 아주 익숙한 곡부터 이런 곡도 있었어? 싶은 낯선 곡까지, 뛰고 춤추고 눕고 앉아서 감상했다. 계속 예술을 해야겠어! 내면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계속 예술을 즐기고, 직접 해야겠어! 그래, 끄덕이며 고개를 젖혔다. 새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어느 순간이 영원토록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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