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맛본 광동식 음식
홍콩 신계 동쪽에 있는 "사이컹 (西貢)"은 한적한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사이컹의 바닷가에는 산책로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고, 애완동물도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산책로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바닷가를 따라 난 산책로 옆으로 들어선 식당 앞의 수조에는 각양각색의 해산물이 진열되어 있고, 식당에서는 해산물을 갓 잡아 광동식으로 요리하여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바다 위에는 특이하게 선상에서 해산물을 판매하는 어민들이 있으며, 이 곳에서 해산물을 구매한 뒤 음식점에 가지고 가면 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요리해준다. 조리비와 자릿세는 따로 지불해야 한다.
휴일을 맞아 쉬고 있던 찰나에, 비비안 어머니가 사이컹으로 얌차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사이컹의 음식점들은 주로 해산물 요리를 팔며, 특히 점심시간에는 사이컹 근처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로 요리한 딤섬 요리 (얌차)를 판매한다. 이는 홍콩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한 가격 차별화 정책으로, 홍콩의 대부분의 식당은 이런 식으로 시간대를 세분화하여 각각의 시간대에 다른 메뉴를 제공한다. 얌차는 주로 점심에 원탁에 둘러앉아 여러 가지 광동식 음식을 주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즐기는 행위를 뜻하며, 식사뿐만 아니라 친목도모의 목적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면서 가족 및 친구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다. 사이컹에 있는 해산물 음식점 중 비비안 부모님의 단골 음식점이 있었다.
집 밑에 있는 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탑승하고 30분 정도를 가니 사이컹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홍콩은 도로가 좁고, 평지가 적으며, 산지가 많고, 인도 밀도가 높아 도로에 차가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홍콩 정부는 차량 구매에 높은 세금을 매겨 개인의 자동차 소유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덕분에 침사추이, 센트럴, 코즈웨이 베이 등 중심지 및 상업지역은 교통체증이 자주 발생하지만,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막히지 않고 한적하다. 우리가 방문할 가게 이름은 "全記海鮮 (광동식 발음 츈게이 허이산)"으로 해변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비비안은 출근해서 같이 올 수 없었으므로 비비안의 부모님과 나, 이렇게 세명이 식당에 방문했지만, 적은 인원에 비해 꽤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이하 독자분들에게 식당에서 맛본 광동식 음식을 집중하여 소개하겠다.
1. 차시우바오 (叉燒包): "차시우 (叉燒)"는 광동식 돼지고기 바베큐로, 홍콩에서 매우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다. 돼지고기를 간장, 설탕, 식초 등을 섞어 만든 소스에 양념하여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나는 게 특징이며 쌀밥과 잘 어울린다. 주로 점심 식사로 쌀밥 위에 닭고기, 오리고기, 거위 고기 및 야채를 올려 먹으며, 따로 그릇에 담아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면이랑도 잘 어울려 국물이 있는 쌀국수에 토핑으로 올려서 먹기도 하며, 광동식 볶음면과 함께 먹기도 한다. 약간은 붉은빛이 돌며, 겉은 쫄깃하고 안은 부드럽다.
차시우는 빵과도 매우 잘 어울리는데, 하얗고 부드러운 빵 안에 차시우를 넣은 것이 바로 "차시우바오 (叉燒包)"다. "바오 (包)"는 빵을 뜻한다. 차시우바오 안에 들어가는 차시우는 밥과 먹는 차시우와는 달리 물기가 있는 걸쭉한 소스가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얀 빵은 우리나라 찐빵과 매우 비슷하지만, 찐빵보다 수분이 많고 부드럽다. 차시우바오는 비비안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광동식 음식 중 하나로, 얌차를 먹으러 갔을 때 빠뜨리지 않고 주문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차시우바오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앞서 설명한 찐빵 같은 도우에 차시우를 넣어 쪄낸 것이 첫 번째이고 이를 통상 차시우바오라고 부른다. 두 번째는 구운 차시우바오로, 특별히 차시우찬바오 (叉燒餐包)라고 한다. 차시우바오보다 크기는 작으며, 도우 안에 차시우를 넣고 구워 낸 뒤 겉에 설탕 시럽 및 꿀을 바르는 것이 특징이다. 구웠기 때문에 빵 위쪽은 갈색빛이 나며, 아래쪽은 흰색을 띤다. 작은 크기와 겉에 발린 시럽 때문에 디저트나 애피타이저 같기도 하고, 안에 있는 차시우와 빵 때문에 식사 같기도 하다.
2. 소고기 미트볼 (牛肉球)과 피쉬볼 (魚肉球)
소고기 미트볼과 피쉬볼도 대표 얌차 음식 중 하나다. 소고기 미트볼은 이름 그대로 다진 소고기를 동그랗게 뭉쳐 쪄 낸 음식으로, 안에 고수, 후추 등의 향신료를 넣는다. 특징은, 마제 (馬蹄; Water Chestnut)라고 하는 재료를 잘라 넣었다는 점이다. 마제의 마(馬)는 말, 제(蹄)는 발톱이라는 뜻으로, 식물의 모양이 꼭 말발굽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제는 식감이 매우 아삭하여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미트볼과 아주 잘 어울렸다. 특유의 향이 있어 소고기의 잡내를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마제는 소고기 미트볼 이외에도 광동식 젤리 디저트 등 다양한 음식에 쓰인다.
피쉬볼은 소고기 미트볼과 마찬가지로 어육을 잘게 다진 뒤 뭉쳐서 쪄낸 음식이다. 얌차에서 소고기 미트볼과 함께 쪄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토핑으로 완탕면 위에 올려서 먹기도 한다. 피쉬볼의 특징은 생선을 통째로 갈아 그것을 그대로 쪄낸 음식으로 생선살의 식감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쉬볼을 먹다 보면 중간중간 은색 빛깔의 생선 껍데기와 생선 살 덩어리가 보이기도 한다. 홍콩에도 우리나라의 어묵처럼 가공처리를 한 피쉬볼도 있는데, 이를 유단 (魚蛋)이라고 부른다. 유단은 생선의 알이라는 뜻으로, 모양이 동글동글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단은 피쉬볼과는 달리 가공처리를 하여 생선의 식감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며, 우리나라 어묵과 비슷하지만 어묵보다 생선 생선 비율이 훨씬 더 높아 더 쫄깃하고 부드럽다. 유단은 홍콩에서 주로 핫팟이나 국에 넣어 먹는다.
3. 청판 (腸粉)과 무 케이크 (蘿蔔糕)
청판(腸粉)은 쌀과 찹쌀 혹은 타피오카로 만든 혼합물에 물로 점성을 조절하여 만든 반죽을 특별 제작한 네모난 모양의 철판이나 팬에 익혀 롤 형태로 만들어낸 음식이다. 철판 바닥에는 구멍이 나있어, 수증기가 올라온다. 반죽을 넓게 펴 익히면서 그 위에 돼지고기, 소고기, 야채, 새우 등의 토핑을 올리는데, 토핑은 다진 것보다는 크게, 하지만 아주 잘게 썰어 넣는다. 철판 위에 올려놓은 반죽 아랫부분이 익기 시작하면 달걀말이처럼 말아낸 뒤, 기다랗게 익은 것을 먹기 좋게 잘라내며, 일반적으로 3 등분한다. 철판에 조리한 뒤, 추가로 팬에 기름을 둘러 구워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조리하면 고소한 맛과 함께 표면에 바삭한 식감을 낼 수 있고, 구워내지 않고 바로 먹으면 찐 것처럼 담백하다.
청판은 식감이 매우 부드러운 것이 특징인데, 반죽의 농도를 잘못 조절하면 속이 익지 않아 물처럼 되며, 반죽을 생으로 먹는 느낌이 나 맛이 없다. 따라서, 재료의 비율을 알맞게 맞추어 반죽의 농도를 조절한 뒤 팬에서 잘 익혀내는 것이 좋은 식당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청판의 또 다른 특징은 간장이다. 청판은 꼭 간장과 함께 먹는데, 간장 소스를 따로 내는 것이 아니라 손님 식탁에 올라오기 직전에 직원이 청판 위에 간장을 뿌려서 준다. 꽤 많은 양의 간장을 뿌려주지만, 생각보다 짜지 않고 청판과 궁합이 매우 좋다. 잘 만든 청판은 매우 부드러워, 쌀국수 같기도 하며 국수처럼 후루룩 먹을 수도 있다.
무 케이크 (蘿蔔糕)은 다진 무를 물과 쌀가루와 섞어 쪄낸 음식이다. 가장 큰 특징은 무를 완전히 다져 가루로 내지 않고, 작은 조각 느낌으로 다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먹을 때 무의 향이 강하게 느껴지며, 씹는 재미도 있다. 청판과 마찬가지로 케이크 안에 잘게 썬 돼지고기, 소고기, 야채, 버섯을 함께 넣어 쪄내며 고급 얌차 전문점에서는 속 재료의 비율을 높여 그 향을 높이기도 한다. 청판처럼 쪄낸 뒤 바로 식탁 위에 내거나, 마지막에 기름에 살짝 부쳐서 내기도 한다. 무 케이크는 청판과는 달리 간장소스보다는 걸쭉한 광동식 고추장 소스나 굴소스에 찍어 먹는데 두 소스 모두 매우 짭짤하여 간이 안 되어 있어 밍밍한 무 케이크와 매우 잘 어울린다.
4. 두부 튀김 (炸豆腐)
이번 얌차 식사에서 가장 놀랐던 음식은 두부튀김이었는데, 딱딱한 두부가 아닌 부드러운 두부를 네모난 모양을 유지하며 아주 맛있게 튀겨냈기 때문이다. 홍콩의 두부는 딱딱한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부드러워, 그 식감과 맛이 한국의 순두부와 비슷하다. 비비안의 부모님께서는 순두부 튀김은 집에서 만들어 먹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두부를 고온의 기름에서 빠르게 튀겨내야만 모양을 유지하면서 맛있게 튀겨낼 수가 있는데, 집에서 이렇게 만들어 먹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겉은 아주 바삭바삭하지만, 튀김옷이 얇아 느끼하지 않았으며, 튀김 안쪽에는 부드러운 순두부의 식감이 그대로 유지되어 다양한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홍콩 사람들은 순두부를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만든 뒤, 위에 꿀이나 시럽을 뿌려 디저트로 먹기도 한다.
5. 하가오 (蝦餃)
돼지고기 딤섬인 시우마이와 함께 한국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으며 딤섬의 대표 주자이기도 한 하가오는 투명한 피 안에 새우를 넣은 뒤 쪄낸 음식이다. 가게에 따라 새우와 함께 다진 돼지고기, 버섯 등을 함께 넣기도 한다. 특징은 새우를 다지지 않고 통째로 넣는다는 점인데, 이러한 조리법 덕분에 탱글탱글한 새우의 식감과 새우 본연의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피는 속이 보일 정도로 얇고 투명해야 하며, 쫄깃쫄깃해야 한다. 어떤 음식점의 하가오는 피가 매우 두껍고 물렁물렁한데, 이러한 음식점의 하가오는 질이 매우 낮은 것으로, 필히 피해야 한다. 하가오 피의 표면에는 적어도 7개 이상의 선명한 주름이 있어야 좋은 하가오이며, 하가오의 맛은 요리사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뒤, 사이컹 바닷가를 걸었다. 최근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는데,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없이 맑았으며 햇빛도 셌다. 비비안의 아버지께서 식사값을 계산해 주셨다. 친소유별이라는 개념을 고려하더라도, 비비안의 부모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친절에 항상 놀랄 따름이다. 밖에서 식사를 하면 대부분 부모님께서 식사값을 계산해 주시고, 이것 이외에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많이 해주신다. 어떻게 보면, 나는 아무 상관없는 이방인일 뿐인데 말이다. 딤섬 안에 베풀어주신 친절에 대한 감사함과 홍콩 바닷가에서의 추억을 담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