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직접 만들어 대접한 홍콩스타일 밀크티
홍콩 김서방에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S가 있다. S는 영등포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무실 근처에 회사가 소유한 카페 겸 바가 있다며 홍콩김서방을 비롯한 친구 몇몇을 초대한 적이 있다. 20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이 카페에서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후, S와 우연히 홍콩식 밀크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S는 밀크티를 꼭 마셔보고 싶다며, 회사 카페에서 홍콩 밀크티 팝업스토어를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별 다른 고민 없이 수락했다. S의 주선으로 카페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팝업스토어 매출의 10%만 수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했지만, 모임을 여는 것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수익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이 결정되자 S는 포스터를 직접 제작하는 열정까지 보였다. 30분 만에 후딱 만들어낸 것 치고는 완성도가 높아 마음에 들었다. 지인 참석 인원을 10명 이내로 제안해 달라는 매니저의 부탁에 따라, 해당 일자에 꼭 참석할 수 있는 지인만 초대했다. 밀크티에 들어가는 홍차 베이스로 레몬티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음료는 밀크티와 레몬티를 판매하기로 결정했고, 차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홍콩스타일 프렌치 토스트도 메뉴에 추가했다.
홍콩에서 비비안과 함께 생활했을 때, 그녀는 홍차 베이스인 차담(茶膽)이 밀크티 맛의 상당부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특히, 비비안의 어머니는 차담을 만들 때, 찻잎 끓이는 시간과 찻잎과 물의 비율을 신경 쓰라고 조언해 주셨다. 식당마다 차담을 만드는 방법이 다 달랐기 때문에 정형화된 레시피를 구하기 어려웠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차의 종류와 비율 등은 동영상과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비비안과 함께 찻잎의 종류, 각 찻잎의 비율, 물의 양, 끓이는 시간 등을 조절해 가며 차담 레시피를 연구했다. 그 결과, 향이 좋으면서 쓰지 않고, 텁텁하지도 않은 차담을 우려낼 수 있는 홍콩김서방만의 차담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비비안에게 밀크티 팝업스토어를 열 예정이라고 이야기하니, 자기도 참석하고 싶은데 가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또 팝업스토어를 열 테니, 그 때 방문하라는 형식적인 말밖에 못 건넸지만 비비안은 쿨하게 ‘알겠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팝업스토어를 열기 한시간 전에 가게에 방문하여 메뉴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했다. 홍콩에서 직접 구매한 차담용 주전자를 이용해 정성스레 차를 끓이고 스타킹 모양의 망을 이용하여 입자를 부드럽게 했다. 우유는 미리 끓여 놓아 수분을 날렸고 토스트를 위한 계란물도 미리 준비해 놓으며 오픈 준비를 마쳤다.
초대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손님이 몰려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다. 재료 준비를 사전에 해놓았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손이 꼬이기도 하고 주문을 착각하는 등 자잘한 실수가 이어졌다. 하지만 주방을 같이 본 카페 매니저님의 도움과 하나하나 천천히 만들어내자는 마음가짐으로 주문 들어온 모든 메뉴를 문제 없이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 차담은 약 3L 정도 우려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식빵은 30조각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주문이 많이 들어와 목표 판매량을 조기에 달성하여 나중에는 판매하지 못하게 되었다.
손수 만든 홍콩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하며 홍콩에서 보낸 지난 1년을 추억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맛있는 밀크티를 마실 수 있었던 시절이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눈 뜨면 옆에 있고, 시간을 함께 보내며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었던 순간이 소중했다는 사실도... 비비안과 언제 재회할 수 있을까? 재회할 순간까지 서로를 믿고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재회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나갈 것인가? 확실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홍콩김서방은 이렇게 멀리서나마 홍콩을 추억하며, 비비안과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조금은 희박해보이는 가능성 하나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버텨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