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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적 독립운동가 Feb 04. 2021

악마의 프라다와 아내의 샤넬 빈티지 2.55

Feat. 결혼 10주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미란다가 나이젤을 비롯한 다른 디자이너들과 드레스에 맞출 벨트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하고 있던 자리에서 안드레아는 그만 피식하고 웃어버리고 맙니다. 그녀의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벨트를 두고 디자이너들이 너무 심각하게 토론을 하고 있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미란다는 그런 안드레아에게 다음과 같이 독설을 날립니다. 

[출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알았어, 넌 이게 너완 아무 상관없는거라 생각하는구나. 넌 네 옷장으로 가서, 예를 들자면, 그 보풀이 잔뜩 일어난 블루 스웨터를 골랐나본데. 왜냐하면 그걸 껴입고 대단한 지성이나 갖춘 양 잘난 척을 떨면서 세상에다 다른 것엔 관심이 있다는 걸 말해주려고 말야.


하지만 넌 그 스웨터가 단순한 블루색이 아니란 건 모르는구나. 그냥 그냥 터키 옥색이 아냐. 군청색이 아니지. 그건 세룰리언 블루야. 또 당연히 모르겠지만 2002년에 오스카 드 라 렌타가 세룰리언 가운을 발표했었지.


그 후엔 입센 로랑이었지. 아마, 그가 군용 세룰리언 색 재킷을 선 보였었고. (...)


그 후 8명의 다른 디자이너들의 발표회에서 세룰리언 색은 속속 등장하게 되었지. 그런 후엔 백화점으로 내려갔고 그리고는 슬프게도 캐주얼 코너로 넘어간 거지. 거기 할인매장 상자에서 네가 그 옷을 찾아낸 것이 틀림없을 테고.


그렇지만 그 블루색은 수백만 달러의 재화와 무수한 일자리를 창출했어. 근데 좀 웃기지 않니? 패션계와는 상관없다는 네가 사실은 패션계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게? 그것도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네게 이런 'stuff'들 사이에서 골라준 스웨터를 말이야."




책 '명강'에서 유홍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명강: 송호근, 유홍준, 정재승, 최재천, 김지하, 문정인, 이것일, 도정일]


[다시 장인 정신을 말한다 - 유홍준]

"명품은 장인이 만들지만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


p.48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새로운 의문이 일어난 것입니다. 본래 작가 정신에 대한 요구는 장인 정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작가 정신이 너무나 고양되고 상상력이 남발되는 상황에 이르자, 그 뿌리를 이루고 있던 장인 정신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생겨난 거지요. 


p.65

우리 고려 불화 중에서 14세기의 명화들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보여요. <수월관음도>를 보면 수월관음이 보타락가산에 앉아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는데 흰 사라를 걸치고 있어요. 그런데 이 흰 사라를 어떻게 그렸나 볼까요. 피부가 드러나 있고 속옷 위에 흰 사라를 걸쳤는데 살도 나오고 속옷도 나오고 흰 사라도 표현되어 있지요. 요즘 말로 하면 '시스루 패션'을 표현한 거에요. 속살이 보이는 패션이잖아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가? 참 신묘한 기법이에요. 이것을 자세히 보면 얇은 선으로 수십만 번 X자를 긋고 육각형의 무수히 많은 선을 그려 놓으니까 멀리서 보면 그것이 흰 사라로 보였던 거에요. 그 붓질이 몇십만 번인지 세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영웅적인 참을성'을 갖지 않은 사람은 이 장인의 세계에 들어올 방법이 없는 거에요. 


고려 불화 가운데 <법화경>의 <보탑도>를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받침대로부터 금물로 7층 보탑도를 그렸는데, 사실은 그린 게 아니라 <법화경> 7권의 전 내용을 글로 쓴 거에요. 지붕골이나 풍경, 서까래 등이 다 글씨로 그림 효과를 낸 겁니다. 4.5미터 높이의 <보탑도>가 그래서 나왔습니다. 믿음이 가게 하기 위해서 그런 거지요. 참 끔찍해 죽겠는데, 저것을 만들 때 한 글자 쓰고 세 번 절했대요, 나 참. 


p.69

석굴암 불상을 둘러싼 벽을 보면 돌판들을 이어 붙여서 원으로 만들었어요. 남천우 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통일신라 사람들은 삼각 함수의 사인 15도의 값을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구했다고 말했어요. 그것을 구할 줄 모르면 애당초 설계가 불가능한 거에요. 더욱이 1미터를 쟀는데 1밀리미터의 오차가 없다는 것은 1000분의 1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건데, 석굴암에서는 10미터를 쟀는데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었어요. 명작이 탄생할 때 장인들이 갖고 있던 공력이 그런 것이었어요. 1000분의 1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았던 거에요. 


p.75

일본 사람들한테서도 배울 만한 것이 있습니다. 일본은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하나가 있으면 그것으로 존경받아요. 일본의 성산인 히예 산에는 비석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조우일우 차즉국보'. 오직 한 자리만 비추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우리는 나라의 보배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금도 도자기 도공이 14대, 15대까지 이어지고, 우산 잘 만드는 집도 몇 대를 내려가고, 단팥죽 잘 만드는 집도 4대째 전해지는 등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어요. 


p.77

장인들보고 일 똑바로 하라고 하지 말고 소비자가 장인을 대접해서 장인 정신이 들어간 비싼 것을 사줘야 합니다. 그래야 장인이 나옵니다. 정말로 잘 만든 것을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소비자가 있을 때 그 문화가 나옵니다. 문화는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만듭니다. 




어렸을 적 읽었던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 대량 생산된 프랑스 명품에 열광하는 일본, 한국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정작 명품에는 큰 관심이 없는 프랑스인들은 일본, 한국인이 명품에 지출한 돈으로 여러 복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초판 출간년도가 1987년임을 고려했을 때, 당시 개발도상국 단계였던 우리나라의 귀중한 외화가 명품 구매로 새어나가는 모습이 당시의 시각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의 명품에 대한 인식은 유홍준 교수와 미란다의 시각에 가깝습니다.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값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여깁니다. 


대표적인 작가들에 의해 낭만주의 (ism), 사실주의,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등으로 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가며 서양미술사가 이어지듯, 패션의 역사도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해 패러다임이 바뀌어왔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의 패션 철학은 실용적이고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화려한 장식과 값비싼 드레스를 강조한 유행을 증오했던 가브리엘 샤넬은 코르셋을 없애고 바닥에 끌리던 드레스 길이를 무릎까지 올렸으며 남성 정장에서 볼 법한 직선의 실루엣을 선보였습니다. 그녀의 혁신은 1920년대 여권 신장 운동과 맞물리면서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72세이던 1955년에 '샤넬 2.55백'을 선보이며 자신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했습니다. 당시 여성 가방에는 대부분 짧은 손잡이만 달려 있었는데 가방에 체인을 매달아 여성들에게 양손의 자유를 선사했습니다. [출처: 국민일보, [한마당-김상기] 샤넬의 패션 철학] 

[Coco Channel (Gabriel Channel)]


앤디 워홀은 본인의 예술 작품을 실크 스크린 기법을 통해 대량 생산으로 만들어내면서, '상업 예술'이라는 새로운 미술사적 의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패션의 역사에서도 소수의 귀족계급만을 대상으로 고급 수제품을 제작하던 브랜드들이 일종의 대량생산 체제로 변화하였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깁니다. 특히나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예술가의 작품이라면 말이지요. 


너무 거창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아내를 위한 결혼 10주년 선물로 '샤넬 2.55백'을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Channel 2.55 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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