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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왼손으로 귤을 까먹어보자

신박한 감각을 통한 경험의 확장

by 동후

새콤달콤한 청귤 한 박스를 선물 받았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작은 청귤이었다. 손으로 귤을 까려고 하는데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에 상처가 있어서 귤을 까기가 어려웠다. 귤은 먹고 싶은데 귤을 까야하는 손가락이 아파서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 5초 정도 고민을 하다가 생각을 정리했다.


그냥 왼손으로 까먹지 뭐

빠르게 결정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귤을 까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귤을 쥐는 것부터 어색했다. 귤을 둥글둥글 굴려가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왼손 엄지와 검지를 들어 귤껍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갈길을 잃은 왼손 엄지와 검지가 귤 과육에 상처를 내었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껍질을 까는 손가락의 메커니즘을 상상하며 왼손 엄지와 검지의 동작을 교정하기 시작했다. 이내 감각이 자리를 잡고 귤 하나를 무사히 벗겨내었다. 와우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굉장히 신박한 느낌을 받았다. 43년간 통제해 온 신체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내 몸의 새로운 경로를 발견한 것이다. 내 몸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기분이 묘하면서 뭉근한 호기심이 올라왔다.


앞으로 도전할 일이 많아졌다. 왼손 젓가락질, 야구공 던지기, 농구공 던지기, 글씨 쓰기, 왼손으로 현관 비밀번호 누르기 등등 다양한 곳에서 경험의 틀을 깨볼 생각이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한 번 도전해 보시라.


올 겨울에는 꼭 왼손(반대손)으로 귤을 까먹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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