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뚜껑에 구멍이 뚫린 이유, 알고 있었나요

by 동동수목원


그 구멍은 잉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회의 중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괜히 돌려본다. 손가락으로 몇 번 튕기다가, 나도 모르게 입으로 가져간다. 어느새 뚜껑을 물고 있다. 별 생각 없이, 그냥 그렇게 된다. 이빨에 닿는 단단한 플라스틱의 감각. 그 뒤에 아주 작은 구멍 하나가 혀끝에 걸린다.


늘 거기 있었던 것 같은데, 그제야 느껴진다.


잉크 냄새를 빼기 위한 목적의 통풍구쯤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제조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거나. 너무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그냥 거기 있는 구멍.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구멍은 잉크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사람의 목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볼펜 뚜껑에 구멍이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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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우리는 볼펜을 입에 문다

어딘가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볼펜을 입에 물고 있다. 생각이 길어질수록 더 그렇다. 손은 멈추고, 입이 대신 움직인다. 책상 위에 볼펜이 있으면 손이 먼저 간다. 손에 잡히면 뚜껑이 빠지고, 뚜껑이 빠지면 입으로 간다. 누가 시킨 적도 없다. 그냥 그렇게 된다. 괜히 한 번 더 씹게 된다. 아무 이유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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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나 회의실을 한번 둘러보면 안다. 볼펜 뚜껑을 물고 있는 사람이 한두 명은 반드시 있다.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뚜껑. 아무 생각 없이 물고 있다가, 문득 더 깊이 물어버리는 순간도 있다. 그다음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늘 거기서 멈추니까.


문제는 항상 거기서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뚜껑을 물다가 삼키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특히 아이들에게. 작은 플라스틱 원통이 기도에 걸리면 공기가 통하지 않는다.


문제는 '왜 무느냐'가 아니었다

이건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왜 씹느냐'가 아니라,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영국에서는 1970년부터 1984년 사이, 아홉 명의 어린이가 볼펜 뚜껑에 질식해 사망했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 하나가 아이의 기도를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사고가 반복되자 영국은 1990년, 필기구 뚜껑에 대한 안전 기준을 새로 만들었다. 뚜껑에 공기가 통하는 구멍을 뚫거나, 기도를 막지 못할 만큼 크기를 키우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준은 곧 국제 표준으로 확장되었고, BIC을 비롯한 전 세계 제조사들이 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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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영국에서는 같은 사고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지름 몇 밀리미터의 구멍 하나가 바꿔놓은 결과다.


잘못된 사용을 전제로 설계한다는 것

이 구멍을 설계한 사람은 '사용자가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뚜껑을 물 것이고, 어쩌면 삼킬 것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 그 가정이 구조를 바꿨다.


볼펜 뚜껑을 무는 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동화된 행동에 가깝다. 의식이 개입하기 전에 이미 몸이 움직이는 영역이다. "입에 넣지 마"라고 백 번을 말해도 손에 쥔 뚜껑은 결국 입으로 간다. 그래서 설계자는 다른 길을 택했다. 행동을 바꾸는 대신 결과를 바꿨다. 뚜껑을 물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삼켜도 숨이 통하게 만든 것이다. 행동을 통제한 것이 아니다. 결과를 통제한 것이다.


경고는 실패하고, 올바른 구조는 작동한다

이 구멍은 편의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실수가 발생해도 치명적이지 않도록 조건을 바꿔놓은 것이다. 책임의 방향이 사용자가 아니라 설계의 구조 쪽으로 이동한다.


비슷한 접근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레고 머리에도 구멍이 뚫려 있다. 작은 블럭을 아이들이 삼키기 쉽기 때문이다. 약병의 어린이 보호 포장은 뚜껑을 누르면서 동시에 돌려야 열린다. 가스레인지도 누르면서 돌려야 한다. 동작 하나가 추가된 것뿐인데, 의도하지 않은 사고가 구조적으로 차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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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계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조심하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고는 처음 볼 때만 효과가 있고, 반복되면 결국 무시된다. 그러나 물리적 구조는 무시할 수 없다. 약병 뚜껑은 누르지 않으면 열리지 않고, 가스레인지는 누르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고, 볼펜 뚜껑은 삼켜도 공기가 통한다. 경고는 사용자의 의지에 기대지만, 구조는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너무 작아서, 혹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보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볼펜 뚜껑을 물고 있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하지만 그 뚜껑 끝에는 구멍이 있다. 내가 알든 모르든, 그 구멍은 거기 있다. 1990년 이전에는 없었던 구멍이다. 아홉 명의 아이가 숨을 쉬지 못한 뒤에야 생겨난 구멍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물건을 사용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까지 포함되어 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너무 작아서, 혹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작은 구멍에는 설계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담겨 있다. 사람을 통제하려는가. 아니면, 실수를 포함한 채 설계하려는가. 그 차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 볼펜처럼.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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