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배우는 UX 디자인
아빠, 내 키는 꽃이에요?
둘째 아이가 생후 46개월 되었을 때 이야기이다. 주말 아침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의 키를 쟀다. 둘째 아이의 키를 재고, 눈금 옆에 아이 이름과 날짜를 적었다.
“유안이는 한 달 만에 키가 0.5cm나 자랐네~?”
아이에게 기록을 전달히고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 녀석이 지금 46개월인데… 첫째 39개월일 때의 키랑 비슷하구나…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런가... 키가 잘 안 자라네…’
그때 둘째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내 키는 꽃이에요?
눈금에 적힌 이름을 보면서 둘째 아이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근데 나는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데이터를 비교하느라 답을 하지 못했다.
“아빠, 내 키는 꽃이냐고요~”
“응? 꽃이냐고??? (뭔 소리지...?)”
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눈금에 적힌 아이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러자 아이 이름 옆에 그려져 있는 [방긋 웃는 꽃]이 보였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동심 가득한 표현에 엄청난 감동이 몰려왔다. 동시에 아이들의 키를 데이터로만 취급한 내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감동과 한심함이 서로 뒤섞이면서 잠시 뇌정지가 왔다.
“(당황) 어, 어, 네 키는 꽃이야. ㅋㅋㅋ 근데 그거 진짜 멋진 표현이다!”
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아이는 자신의 키가 꽃이라는 걸 확인하고서는 ‘아빠가 왜 저러지?’라는 표정으로 쿨하게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뇌정지가 온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이들의 키를 눈금과 숫자로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키를 잴 때마다 그 숫자를 주입시켰다. “이번에는 103.5cm이네? 지난달보다 0.5cm 자랐네?”라고 말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길이의 개념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숫자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정보였다. 특히, 둘째 아이는 만 4살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이제 겨우 본인 이름 석자를 쓸 수 있는 사용자(?)인데, 그런 아이에게 cm를 언급하며 ‘길이’ 개념을 학습시키려 한 것이다.
내 기준의 정보를 강요한 것이다.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사람의 시야가 이렇게 좁았던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불현듯 User Centered Design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UX 디자인의 0순위 원칙 같은 기본 철학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에게는 눈금이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과정보다, [아기 버섯]에서 [방긋 웃는 꽃]으로 올라가는 과정이 더 즐거운 경험으로 각인되지 않을까? 아이 덕분에 UX 디자인의 중요한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