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안의 손가락 전쟁
아날로그를 밀어내는 터치 디스플레이의 공습을 막아라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다. 이동에 필요한 수고로움을 대신해 주는 존재이다. 통제권은 사람에게 있다. 운전자가 기어를 주행 모드(D단)에 놓고 가속 페달을 밟으면 차가 움직인다. 구동력이 생기고 차가 전진을 하면 운전자는 핸들(정식명칭: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여 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와이퍼를 동작시키기도 한다. 운전자는 이 모든 동작을 감각으로 제어한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다. 기어 봉(gear棒)을 조작할 때에는 기어 봉을 보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에도 페달을 보지 않는다. 학습된 경험에 의해 조작하기 때문에 시각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원격 제어 도구의 기본 속성이다. 운전자가 눈으로 봐야 하는 건 도로 상황이다. 전방을 주시해야 한다. 변화하는 도로 상황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차를 제어해야 한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할 때에는 왼쪽 진입 방향을 바라본다. 스티어링 휠을 쳐다보지 않는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조작감을 가진 기구의 특징이다.
자동차는 전통적으로 물리적 조작감을 가진 장치를 많이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어 봉이다. 기어 봉은 기어 단계를 조작하는 손잡이 모양의 막대기이다. 변속 방식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기어봉은 상하/좌우의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손에 쥐고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작감 측면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요즘은 자동 변속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기어 봉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시계/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다이얼 방식, 누르는 버튼 방식, 멀티 펑션 막대를 움직이는 레버 방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테슬라는 디스플레이 안에 기어 변속 기능을 적용하고 있다. 영화 속 자동차 추격 장면을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공이 눈을 부릅뜨고 기어 봉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며 속도를 높이는 장면이 나온다. 앞으로는 영화 속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기어 봉을 박력 있게 조작하는 장면이 사라질 것이다. 빈 디젤이 디스플레이에 있는 부스터 버튼을 누르는 장면이 나올 수 있다. 물리 버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스위치(Switch)나 노브(Knob) 역시 전통적인 조작 방식이다. [AUTO] 버튼을 한 번 누르면 에어컨이 켜진다. [OFF] 버튼을 한 번 누르면 에어컨이 꺼진다. 항상 고정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실수할 일이 없다. 볼륨을 높이고 싶으면 동그란 노브를 시계 방향으로 돌린다. 말 그대로 직관적이다. 과거 가정용 오디오 데크(Audio deck)의 볼륨 조작 방식은 대부분 동그란 노브 방식이었다. 오디오 볼륨 노브의 기억 때문에 동그란 노브를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동그란 노브 자체가 볼륨 증감의 직관적인 메타포라서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동그란 노브가 내뿜는 증감(增減)의 상징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기어 봉, 노브, 버튼과 같은 장치는 손에 만져지는 물리적 특성 때문에 접근성이 매우 좋다.
물리 기구는 주행 중에도 원하는 기능을 빠르게 조작할 수 있다. 손에 만져지는 장치의 가장 큰 장점은 정확도를 높여서 실수를 줄여준다는 것이다. 장치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주고, 순서를 가늠하면서 장치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에어컨을 끄고 싶다. 그러면 [OFF] 버튼을 찾아서 눌러야 한다. 그 과정을 자세하게 쪼개서 살펴보자
1. 고속도로에서 120km로 달리고 있다.
2. 운전자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스티어링 휠의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
3. 갑자기 에어컨을 끄고 싶다.
4. 눈으로 [OFF] 버튼의 위치를 파악한다. (순간적으로)
5. 버튼의 위치가 파악되었으면 다시 전방을 주시한다.
6. 동시에 [OFF] 버튼에 손을 뻗는다.
7. 손가락 끝으로 버튼 경계와 글자의 각인을 예측한다.
8. 버튼 정보를 최종 판단한다.
9. [OFF] 버튼임을 직감하고 버튼을 누른다.
눈으로 확인하고, 경험으로 공간의 범위를 좁히고, 손끝의 촉감으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약 1.5초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7번 과정이다.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입체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실수가 줄어들고 성공률이 높아진다. 전체 1.5초 중에 0.2초 정도의 시간에 해당한다. 별 것 아닌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공간의 특성을 생각해 보자. 사용자가 앉아 있는 공간은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안이다. 눈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그 순간 에어컨을 끄기 위해 버튼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튼의 위치를 힐끔 눈으로 확인한다. 팔을 뻗는다. 손이 닿지 않는다. 허리를 살짝 숙이고 팔을 뻗는다. 손가락 끝이 목표 지점에 가까워진다. 버튼에 근접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의 감각을 통해 버튼 사이의 경계선과 글자의 각인을 느낀다. 최종 판단을 내리고 버튼을 누른다.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촘촘한 과정을 통해 정보를 판단한다. 손에 만져지는 장치를 다루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각 정보이다.
최근에는 그러한 전통을 무시하는 흐름이 대세이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테슬라이다. 스티어링 휠 전면에 있는 버튼과 스티어링 휠 후면에 있는 레버 이외에는 그 어떤 스위치도 찾아볼 수 없다. 냉난방 버튼, 내비게이션 버튼, 라디오 버튼 등 기존 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버튼을 대형 디스플레이 안에 모두 집어넣었다. 물리 버튼의 금형비를 줄여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고, 전통적인 제어기 중심의 자동차 제조 환경에서 벗어나 SDV(Sofrware Defined Vehicle) 중심의 개발 환경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과정에서 귀결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일단 시각적으로는 강렬하다. 차에 탑승하면 노트북 사이즈의 대형 디스플레이가 대시보드 중앙에서 위압감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의 개방감은 정말 압도적이다. 태블릿 PC 하나를 새로 구입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저것 눌러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자동차의 인터랙션 방식이다. 대형 디스플레이가 일반화된 시대에 적절한 전략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운전 상황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려면 화면 하단에 있는 작은 화살표 아이콘을 터치해야 한다. 정확한 터치를 위해서는 눈으로 보면서 조작을 해야 한다. 잠깐 시선을 놓치면 다른 부분을 터치할 수도 있다. 바람 방향이나 풍량을 조절하려면 공조 화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공조뿐만이 아니다. 모든 기능을 터치로 제어하기 때문에 주행 중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조작을 하면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실수 확률이 높아진다. 평면 디스플레이는 물리적인 조작감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정확한 지점을 터치해야 한다. 눈으로 보는 시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감각에 의존한 터치를 해야 한다.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확도가 떨어져서 터치에 실패를 하면 다시 눌러야 한다. 전방 주시를 못하는 상황들이 늘어난다. 그런 상황들이 누적되면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을 지향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대형 디스플레이가 맞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완전 자율주행 단계가 아닌 이상 사람은 어떻게든 운전을 하게 되어 있다. 만약 60분 동안 운전을 하는데 - 59분이 자율주행 시스템에 의한 주행이고, 1분만 사람에 의한 운전이라고 한다면 - 그 1분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도 자동차 제조사의 의무이다.
최근 물리 버튼을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2023년 6월 Autocar의 Tiguan 출시 인터뷰에서 Volkswagen CEO Thomas Schäfer는 Golf Mk8 / ID.3가 터치 컨트롤에 대한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고객의 비판을 인정했다. 터치 중심의 접근 방식이 고객 충성도 측면에서 "확실히 많은 피해를 입혔다"(definitely did a lot of damage)라는 코멘트를 했다. 그 영향이 컸던 것인지, 코펜하겐에 있는 Volkswagen City Studio에 노출된 ID. 2all 컨셉카(2025년에 양산 예정)의 인테리어에는 적정한 수준의 물리 버튼과 디스플레이가 조화를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입체감이 있는 버튼은 사용성이 뛰어나고, 평면 디스플레이의 터치 버튼은 사용성이 떨어진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물리 버튼이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주행 중인 상황에서는 물리 버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리 버튼을 사용하면 입체적인 정보 인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수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고 운전자가 직접 통제하는 도구이다. 통제 과정에서 운전과 상관없는 것에 집중력을 빼앗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주행이라는 상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만약 자동차가 정지된 상태에서 사용하는 도구라면 24인치 대형 디스플레이를 제공해도 된다. 하지만 자동차는 빠르게 달리는 이동 수단이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최소한의 안정성을 더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감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손에 만져지는 버튼이나 노브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언젠가는 버튼이 사라지고 디스플레이가 대시 보드를 덮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끝까지 물리 버튼의 가치를 주장할 것이다. 터치 스크린이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 있다. 인간의 손가락 끝 감각이 소멸되지 않는 한 물리 버튼의 가치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촉감으로 버튼의 위치와 순서를 판단하고 각인된 글자의 형태를 구분하는 과정은 항상 거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7번 프로세스가 자동차 안에서 만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끝까지 아날로그 장치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안전한 주행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의 해답을 찾게 된다면 무차별적인 터치 디스플레이의 공습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