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fear: 중국 리밍 클라이밍 트립 후기
겨울 밤 하늘은 투명해서 별이 더 잘 보인다. 소수 민족 마을이 있는 고산 지대에 있는 리밍은 붉은 사암으로 둘러쌓인 협곡 지대다. 운남성의 옥룡설산의 남서쪽 자락에 위치해서 샹그리라와 미얀마에 더 가깝다. 하지만 (놀랍게도) 따듯하진 않다. 고산이라서 마을만 해도 2200미터 이상이니, 한라산 정상에서 시작하니 한국 사람에게는 힘에 부칠만 하다. 고산에 가면 공기가 희박해서 숨이 금방 차고, 금방 피곤해지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겁다. 등반하다가 화장실을 다녀와도 숨이 찰 정도였으니까.
차마고도 트레킹이나 호도협으로 유명한 관광지대랑 가까이 있어도, 최근에 지역 관할 관광 공사와 이슈가 있었는지 모든 상업 시설이 문을 닫았다. 관광버스도, 이맘 때 쯤이면 열린다는 지역 축제도, 수많은 숙박시설도 모두 문들 닫았다. 약국이나 슈퍼 한 두개 정도, 그리고 우리가 머물기로 되어 있던 숙소, 클라이머들이 가는 게스트 하우스 정도만 문을 연 눈치였다. 이 마을에는 동물의 이름을 성씨로 쓴다는 리슈족 사람들, 그리고 붉은 사암을 오르려고 온 트래드 클라이머들 밖에 없다는 소리다.
트래드 클라이머도 소수민족이라고 부를만 하다. 중국은 특히 스포츠 클라이밍이 더 인기가 많기 때문에 시즌에 맞게 유명한 트래드 클라이밍 등반 지역에 사람들이 몰린다. 리밍은 미국의 인디안 크릭처럼 잘 알려진 ‘레드락’ 등반지로, 사암 특유의 뚝 떨어지는 크랙라인과 거대한 섹션으로 유명하다. 미국 클라이머가 개척하고, 십여년 전에는 클라이밍 브랜드에서 후원하는 축제도 있었다고 한다. 함께 갔던 공감 클라이밍 스쿨의 문성욱 선생님과 이명희 선생님도 그 당시 리밍을 방문해서 크랙 클라이밍을 했다고 한다. 전 세계의 클라이머들이 모이는 등반지 중에 하나인데, 한국에서 멀지도 않고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추워서 등반을 못하는 12월에 가장 좋은 시기이니, 빙벽을 시작하기 전에 방문하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단샤 지형(Danxia landform)이라 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철분을 다량 함유한 사암층이 오랜 침식과 풍화 작용을 거치며 붉은 절벽과 기둥, 골짜기를 형성하여 빛을 받으면 붉은 색으로 물든다. 리밍의 산은 풍화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낮과 밤의 큰 일교차로 인해 암석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미세한 균열 사이로 수분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사암의 입자는 점점 분리되어 층층이 부스러지거나, 벌집 모양처럼 제일 부드러운 부분 부터 스러져서 구멍이 숭숭 뚫리는 바위가 생긴다.
첫 날 도착한 디너월은 클라이머들이 자주 오는 지역이 아니라서 그런지 붉은 모래가 티라미수 케이크 처럼 소복하게 바위 위에 쌓여있었다. 크림프에 손을 올려 놓으면 홀드가 잡히는게 아니라 모래에 밀려서 손이 빠진다거나, 크랙에 재밍을 하기 전에 손으로 파내야 할 정도였다. 12시부터 해가 정면으로 들어와서 3시쯤 되니 너무 더워서 반팔을 입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6시가 넘어서까지 낮동안 흡수했던 열로 따듯해서 붉은 바위가 열을 받아서 빨간건가 싶었다. 하산 하고 뒤돌아보면 별이 쏟아지는 겨울 밤에 바위 모양이 분명하게 보였다. 분명 검은 밤이었는데 붉은 색이 천천히 식어가고 있는, 그리고 내일 다시 해가 뜨면 다시 뜨거워질 바위가 보였다.
크랙 클라이밍은 바위와 바위의 틈에 몸을 끼워 넣고, 확보를 위한 장치를 직접 설치하는 종류의 클라이밍이다. 스포츠 클라이밍과 다르게 인공적으로 설치 되어 있는 볼트를 사용하지 않으니 전통적이며, 예전에는 장비의 마찰력이나 안전성이 떨어져서 할 수 없었던 페이스나 슬랩 형태와 달리 확실하게 올라 갈 수 있는 방식으로 등반을 하니 올드스쿨이다. 한국에서 크랙 클라이밍을 배우려면 공감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유등반을 추구하고, 크랙을 좋아하는 클라이머들이 모여서 만든 작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트래드 클라이밍 19기로 처음 크랙을 배우고, 연말에 리밍 클라이밍 트립 2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몸이 준비된 것도 아니다. 이사를 준비하느라 운동 루틴을 놓친지도 오래고, 살은 7키로나 쪘다. 3키로 빠질 때 마다 그레이드가 1개씩 올라간다는 클라이머 계산법에 따르면 나는 -2그레이드이다. 왕초보인데 왕왕초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바위를 경험하고 만지는 것 자체, 그리고 가보고 싶었던 운남성에 가본 다는 것만으로도 궁금했기 때문에 일단 출발했다.
한편으로는 탑로핑 방식으로 간다면, 이미 자일로 안전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에서 루트와 무브를 연습하면서 등반 할 수 있는 가이드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확신과, 어떻게든 해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경험으로 갔다. 리밍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행 중에 스타트도 못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피스트 재밍으로 오버행에 끼운 다음에, 피스트보다 더 큰 크랙에 손바닥과 피스트를 합쳐서 한 번 더 올라가야 하는 루트에서는 1시간 동안 버둥 거리기만 했다. 조금 될 것 같으면 주루룩 미끌어지거나 비명을 지르며 손이나 발이 빠져서 벽이나 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반복했다. 영상으로 보니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의 내면은 전쟁이었다. 물론 빌레이를 봐준 형님도 용쓰는 표정이 웃기고 가상해서 나의 도전을 도와주기 위해서 군말없이 확보를 봐주었다.
해도 안되는 게 있다. 내가 모른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것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것 조차 보지 못한다. 눈 앞에 크랙은 깨끗하다. 이미 탑로프가 깔려있고, 벌써 몇차례나 내 앞에 올라간 클라이머들이 있으니 무브의 정답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는 샘이다. 여기선 저 발 홀드를 쓰고, 저기선 손을 저렇게 겹치지 않으면 안되는 구나. 크랙 클라이밍에서는 사람에 따라 손가락 굵기나 키가 다르니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하지만 큰 흐름은 같다. 누구나 올라가려면 내 몸을 바위에 맞추고, 비틀고, 버티고, 힘을 써서 올라가야 한다. 바위를 타는 방식이 아니라, 바위가 ‘되는’ 방식이다. 바위는 만년이 넘는 시간을 버틴 땅이다. 철분이 남은 사암 부분이 더 강하니 남아있고, 나머지 부분이 풍화되어 떨어져나간 지형이니 더욱 강한 바위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은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에 몸을 맞추려면 뼈 부분이 맞물리게 (운이 좋게도!) 들어맞거나, 뼈와 살을 모양에 맞추고 부풀려서 (피를 보내서) 일시적으로 맞추는 수 밖에 없다.
아플 수 밖에 없다.
“아퍼? 잘하고 있는거야. 계속 가”
선생님은 무상하게 이야기 했다. 바위 앞에서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손이나 발이 척척 들어가서 간결하다. 손가락 크기보다 조금 크니 검지와 엄지를 반지처럼 동그랗게 만든 다음 바위 틈에 넣고 몸을 솟구쳐서 다른 쪽 주먹을 바위틈에 집어 넣는다. 나도 저 쯤이 링락이라는 걸 아는데, 도무지 따라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단련되지 않으면 수행할 수 없다. 한시간 동안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도, 그 모든 것의 흐름과 무게가 충분하지 않으면 바위가 될 수 없다. 아직은 한참 무른 탓이다.
혼자서 볕이 잘드는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아 보았다. 따스함, 바람, 낯선 새소리, 용쓰는 다른 동기들의 오름짓… 그날 모험을 한 친구는 선등을 성공했다. 미리 깔려져 있는 자일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직접 확보물을 가지고 처음부터 한 땀 한땀 올라간 것. 그의 성공을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 나도 덩달아 신이났다. 누군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써서 하고자 하는 것을 해냈을 때는 괜시리 뭉클한 법이니까. 또, 그것이 공동으로 경험한 루트지만 실제 클라이밍의 밀도와 퀄리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느끼는 씁쓸함까지도. 일행의 가장 연장자이자, 열정이 엄청난 형님(산악계에서는 모든 손윗사람을 형으로 통칭한다)이 넌 대리만족 하는거냐고 했다. 뒤이어 선생님이 대리만족으로 끝나면 안되는데, 누구누구가 성공하는 걸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드냐고 했다.
그날은 시도 했던 네개의 루트 중에 하나만 간신히 했었다. 다른 루트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온갖 힘을 다 썼는데도 못 올라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힘을 다 썼기에 방전이었고, 또 도전하겠다는 열의가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다. 열심히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과 여기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의 소리가 교차했다. 표정관리를 할 겨를이 없었을 테지만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기쁜 건 기쁜 거고. 내 몫의 고통은 내 몫인거고.
바위에 부딪힌다고 해서, 내 온몸을 던진다고 해서 모든 일이 마법처럼 일어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어딘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한계라는 거 굉장히 벽처럼 느껴지네. 괜히 일행과 비교를 하면서 마음이 시끄러워졌다. 한참 마무리되어 가던 이사와 여러 회사 일을 뒤로 하고,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이 공간에 있는 것이 무용한 일이 었을까. 꼭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해야지만 잘 한 걸까. 뭐든지 하다보면 잘되는 것에 익숙하던 때도 어렸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일까.
저녁을 항상 푸짐하게 먹었는데 모든 요리를 즉석으로 볶아서 주셨다.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내 앞에 접시가 도착하면 먹고 싶은 만큼 골라서 먹는다. 그날의 등반 이야기도 하고, 아무래도 선생님들이랑 함께 있으니 칭찬도 질타도 받는다. 다른 사람 칭찬할 때는 괜히 청경채를 더 먹는다. 갑자기 ‘혜진이는 끝까지 가는게 목표잖아.’ 라는 말에 청경채를 우걱우걱 씹었다. 나는 지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만큼 클라이밍만 하루 종일 하고, 일어나서 밥먹고 클라이밍만 할 수 있는 곳에 와있다. 경험하는 것이 목표일 때는 그 부푸는 마음이 다다. 거기 바위 어땠어? 라고 물어봤을 때 ‘아임 파인, 땡큐 앤 유’라는 기계적인 연습한 패턴만 반복 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 끝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리밍까지 갔었다. 겨울 밤에 선명하게 오리온 자리가 보였다. 옥수 암장에서 운동하고 집에 갈 때 마다 보이는, 딱 그 골목위에 보이는 허리띠 3개가 선명한 별자리다. 별자리를 보고 누구나 다른 연결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듯, 저마다 바위에서 느끼는 경험들은 각자가 느낀 진실을 열렬하게 전달하려는 스토리텔링이다.
나는 바위를 잘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언어 공부를 생각한다. 내가 영어를 어떻게하면 잘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없는 것 처럼, 감각과 삶의 영역에서 오는 걸 체계화해서 소비하거나 모방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어를 써도 구사하는 방법과 알맹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 처럼. 나는 아직 알파벳과 기초적인 문장을 기계적으로 따라하는 단계에 있다. 가슴에 다글거리는 말이 아직 자리를 못찾아서 답답한…
사암은 과연 아름다웠다. 화강암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바위에서 느껴보지 못한 선과 느낌, 고산지대 겨울의 낮과 밤을 통과하며 경험한 협곡. 건너편에 4피치로 이루어진 멀티 피치를 오르는 두 클라이머가 보였다. 크랙을 이어서, 또 이어서 올라가는 라인이다. 멀리서 봐도 아름다웠다. 초크 가루만큼 바위 모래가 사방에 날려서 햇빛이 비치면 클라이머 주변으로 구름처럼 빛이 반사된다. 서부 영화에서 보는 것 처럼 반짝거리는 골짜기 사이로 오프 위드 크랙이 우뚝 서있다. 높고 넓고 아찔하다. 위험해보인다. 꼭 다시 와보고 싶다.
하루 종일 용을 쓰느라 진이 빠진 몸으로 숙소로 돌아가면서 별 빛을 따라 갔다. 천천히 걸어서 혼자서 숙소로 가며, 오늘 내내 함께 놀았던 붉은 바위가 보였다. 손 끝, 발 끝까지 정교하게 쓰면서 바위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맞춰보는게 몸으로 하는 퍼즐 놀이같기도 하다. 내가 굽히고, 내가 바뀌면서, 나의 고통을 딛고, 내가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매번 찾는다. 끝까지 가면 그렇게 찬란할 수가 없다. 바위 틈에 몸을 너무 집어 넣었더니 어느 부분은 뭉개져서 투명해진 것 같다. 별을 보면서 붉은 바위가 식어가는 것 처럼, 나도 몸과 마음의 조각 조각을 다시 이어 붙인다. 해를 보면 또 잘 먹고 클라이밍을 하러 가려고.
인생에 고통이 디폴트라면, 실패를 통해서 정보가 쌓이는 과정이다.경험의 좋고 나쁨을 떠나 저마다의 진실과 쾌락과 헌신이 영광이라는 감각이 된다. 바위에 부딪히면 아프고, 아파서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마음의 부침이 내가 어디에 반응하는 존재라는 경계 신호인 것 처럼.
“우리는 보고 느끼기 위해 태어났다. 그 밖에 꼭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감동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지고 우리는 이곳에 왔으며, 그 몰입과 감동이 삶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인생을 살아 나가게 하는 힘이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경이나 환경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 대한 집중도’라고 말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천리 밖에 있는 객잔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클라이머 숙소. 1인실 1만 5천원 정도. 예약은 트립닷컴에서 문의가능하지만 가장 빠른 것은 사장 Lao Yu 의 위챗(친구 추가 필요하면 저에게 연락주세요!)으로 직접 연락하는 것이다. 근데 그냥 나타나서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매일 저녁에 뭉쳐서 밥 같이 먹으러 다니고, 캠프파이어도 하고, 등반지 공유도 많이 하는 곳. 던전 같이 어둡고 오브제도 특이하고 가볼만한 곳이다. 등반 사진, 정보, 주변 등반 가이드들의 연락처, 시즌 때는 어디서나 등반 같이 할 사람을 찾을 수 있다. 2주~1달 정도 일정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하는 친구들도 많다.
팅팅 언니는 유튜브도 하고, 리장에서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며,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물흐르듯이 등반지에 도착해서 등반에만 집중 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항-리밍 이동편 섭외 (보통 빵차라고 불리는 회색 미니밴이다)과 숙소, 식사 등 현지 사정에 맞게 조율을 도와준다. 산악인이자 전문가답게 트레킹/등반 팀에게 운남성 일대, 중국내 등반지 (빙벽 포함)에 대해 모르는 정보가 없다. 막강한 인맥과 여행의 낭만을 지켜주는 수호 천사 팅팅언니. 한국인 입맛에 맞게 식사를 예약 해준 것이 아마 젤 고마운 사람이 많겠지만, 유사시에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은 경험 & 능력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특히 중국이라면.
12월 초-중순이 가장 등반하기 좋고, 11월 중순~1월 중순까지 등반 많이 한다고 한다. 그 이후는 우기라서 사암은 등반이 어렵다. 해를 받는 곳과 음지의 온도차가 심각하다. 오후 5시까지 해가 들지 않는 리슈월 웨스트 사이드는 핑거크랙에 손넣다가 뎅강 잘리는 줄 알았다. 해가 들면 반팔입고 등반 가능하고, 아니면 우모까지 껴입고 등반한다. 버프나 보온을 할 수 있는 얇은 긴팔 등은 꼭 챙겨다니길. 저녁 6:30분까지도 해가 떠있어서 등반을 늦게까지 하는 경우가 많으니 랜턴도 있으면 좋다. 현지 클라이머들은 아침 먹고 11시 정도에 나타난다. 숙소는 우리가 잤던 최신식 호텔 (양변기, 온수샤워기, 외풍안드는 시스템창호, 전기매트 있으면 초호화급)이 아니고서야 우풍이 아주 심하고, 온돌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중국의 실내는 냉기가 돌아서 아주 춥고 건조하다. 잘 때 우모복, 수면 양말을 입고 잤고, 따듯한 물을 자주 마셨다.
리밍 트래드 등반 루트를 개척했던 초창기 클라이머였던 마이클 도비의 가이드북이 가장 신뢰할 만 하다. PDF로 구하기도 쉽고, 일행 중 윤서의 도움으로 다른 좀 더 최신버전 가이드북 PDF를 구했다. 현지 친구들은 대부분 어플에서 가이드북 & GPS 를 함께 참고하는 편이다. 1주일 정도 일정이라면 가장 유명한 디너월의 케이브 아레아, 리슈월의 이스트 & 웨스트로도 바쁠 것이다. 다시가서 꼭 하고 싶은 루트는 리슈월의 Scar Face, Off-width Research Center. 디너월의 멀티루트.
트래드 클라이밍을 배우고 싶다면 공감으로, 그리고 배운 것을 몸으로 부딪히며 마음껏 쓰고 싶다면 공감 트립 코스를 추천한다. 등반지에 대한 경험과 정보가 있는 프로 클라이머 선생님들과 함께 간다는 것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는 것이다. 근데 어깨에서 앉아서 보는 것으로 끝날 수가 있다. 트래드 수업으로 기초적인 기술을 익힌 것, 암벽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이 좀 있는 클라이머라야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표는 40~50 정도이며, 현지에서 추가로 지출한 비용은 거의 없다. 인기 코스라 신청이 열리면 선착순으로 입금해야지 조인할 수 있다. 실력을 키워 한번 더 선생님들과 오고 싶으니, 향후에 함께 갈 수도 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