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빌 언덕 Nov 27. 2021

상담자에게 바라는 것

상담실 이야기

내담자 : "선생님도 이런 경험이 있으세요?"


상담자 : "상담자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내담자 : "똑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더 이해받을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이 없는데 해주는 공감은 왠지 허무하고, 진실된 것 같지 않아요."


상담자 :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의 공감이 필요하다면 그런 분야의 모임이나 같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의 집단 상담을 소개해줄 수 있어요. 그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인가요?"


내담자 : "아니요. 그런 모임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생각해보니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잔뜩 있다면 그것도 답답하고 힘들 것 같아요.."


상담자 :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위로와 공유는 아주 의미있고 중요한 것이예요. 치유하는 힘도 있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런 주제의 모임이나 집단 상담에도 꼭 한 번 참여해보기를 추천해요. 상담자도 내담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만약 그런 공감대가 있다면 내담자 입장에서는 반갑고 또 안심도 될 것 같아요. 다만 내담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야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동의하기 어려워요. 어떤 강한 경험을 한 사람은 그게 중요한 선입견이 되어서 무슨 이야기를 듣든지 그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00씨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초반에는 공감대가 많다고 느끼다가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00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결국 자신의 경험에서 생긴 기준을 고집하는 걸 느끼지요. 반면 그런 부분에 대한 강한 경험이나 선입견이 없는, 그러나 00씨에 대한 진솔한 관심은 많은 사람이 해줄 수 있는 투명한 경청이 있어요. 아마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에 가까울 거예요. 설령 내가 00씨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우리의 상담 시간에 나의 경험을 꺼내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면 나를 위한 상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예요. 내가  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00씨의 시간이 침범을 당하게 되는 거예요. 00씨가 세상에 나가서 만나고 함께 살아야 하는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00씨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일 거예요. 그런 면에서 상담자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과 기준을 더 잘 대변해줄 수 있어요. 결국 내가 내 경험을 공감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고 나눔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내가 나와 경험이 다른 사람들과도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면 이런 개인 상담 작업이 그 연습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내담자 : "나와 같은 경험이 있다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겠네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충분히 수긍은 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더 외롭고 씁쓸해요. 나를 제대로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아요."


상담자 : "신이 아닌 이상 한 명의 사람이 00씨의 인생과 경험을 통째로 이해해줄 수는 없어요. 그런 유일한 한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또 건강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봐요. 00씨의 가족과 주변의 소중한 여러 사람들이 각자 그들이 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00씨를 걱정해주고, 또 00씨에 대해 궁금해하고, 또 00씨가 잘 되기를 바래주고 있다고 말이예요. 십시일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마음이 씁쓸하고 외로워요?"


내담자 :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공감에 대한 미련이 약해지네요. 제가 '같은 경험'에 너무 집착하고 있던 것 같기고 하네요.. 따뜻한 관계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되는 것인데......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편하게 생각하는 지인이 하나 떠올랐어요.. 자주 보지도 못하는 사이지만 그 사람을  만날 때 딱 그런 느낌이예요. 적당히 날 걱정해주고, 적당히 나를 궁금해하고, 적당히 나를 응원해주는. 그런 정도의 이해나 관심도 좋은 것 같아요."


상담자 : "아 이상하게 저는 딱 그 지인에게 경쟁심이 느껴지네요. (웃음) 나도 00씨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상담자가 되어주고 싶어요. 이건 솔직한 내 감정이고 표현이예요."


내담자 : "그런 지인이 둘이 된다면 그것도 참 좋은데요(웃음)"



매거진의 이전글 공감 못하는 상담자(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