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의 사색노트
상담실은 기본적으로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내담자들은 종종 불행이라는 택배 상자가 오배송되었다는 말로 상담을 시작합니다. 주문한 적이 없다거나, 나 말고 더 악하게 사는 내 주변 누군가가 받아야 한다거나, 내가 주문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게다가 서비스로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는 식의 하소연을 자주 접합니다.
상담자가 보더라도 그 불행을 발송하는 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사람마다 적절하게 보내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분의 불행 발송 리스트를 보면 일관성이나 공평함이 있는 것인지 종종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견딜만한 고난만 주신다',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는 설명서와는 다르게 가장 어렵고 힘든 불행의 시간을 만난 사람이 결국 더 힘든 모습으로 주저앉는 일을 많이 보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온 인류에게 주신 그 설명서의 글귀가 네 불행도 극복해야 한다는 강압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불행에 대한 내담자들과의 대화에서도 극복이니 치유니 하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불행은 누가 배송한 것인지, 수신자는 어떻게 골랐는지, 내가 혹 이 불행을 받을만한 행동을 했는지, 이 불행을 받아 마땅한 나 아닌 그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이 불행을 반송시키거나 다른 집 문 앞에 두고 도망할 방법은 없는지, 이 불행을 평생 개봉 안 하면 안 되는 것인지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받게 되었다면 보상으로 다른 행운을 추가로 요구할 수는 없는지, AS 기사를 보내달라고 할 수 없는지 등 소비자의 권리와 이의 제기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합니다. 하다 하다 마지막에는 이 원치 않는 불행을 그나마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는지, 그리고 또 이런 불행 택배가 오지 않게 하려면 얼마나 강력한 민원을 제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눕니다. 내담자가 원한다면 저는 '억울하게 불행을 받아 화가 나 있는 소비자들의 모임'의 연락처도 알려줍니다.
불행이란 택배를 받는 것은 정말 화 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불행을 단지 극복하기만 한다면 불행을 보낸 사람에게 너무 쉽게 굴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불행의 극복을 논하기 앞서 이 불행 택배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고찰하고 분노해야 합니다. 착한 어떤 내담자는 자신보다 더 큰 불행을 받은 다른 사람의 예를 들면서 "저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잖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런 말들이 저에게는 가장 화나는 말입니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어두운 밤을 쉬이 받아들이지 마세요.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나오는 딜런 토머스의 시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이 시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모든 내담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원작자가 의도한 느낌과는 약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불행을 만났을 때 수용하고 극복하려고 하면 세상은 단조로워집니다. 극복하는가 또는 극복하지 못했는가 하는 이지선답만 남습니다. 그러나 불행을 만났을 때 분노하고 반발하려고 하면 세상은 더 넓어지고 입체적이 됩니다. 불행의 원인과 결과를 넘어 불행을 연료 삼아 돌아가는 세상 속 내연기관이 보이기도 합니다. 돈에 대한 불행은 경제적 관점을 일깨우고, 사람에 대한 불행은 사회적 관점을 일깨웁니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합니다. 불행이라는 원치 않는 택배가 온다면 우선은 분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