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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Jun 20. 2016

브런치에게 고함

브런치팀이여 제밝 읽어다오

모독감 #1


나는 브런치 망명자이다. 싸이월드 초창기에 진솔한 그림과 글로 꽤 인기도 있었다. 블로그,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가 생겼을 때에도 그 개방성과 상업성,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싸이월드에 계속 은둔했었다. 한 동안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소수의 지인들과 밀담을 나누는 재미로 살다, 싸이월드의 괴상망측한 개편과 이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일방향에 실망하여 그마저도 접었다.


그러다 브런치를 만났다.


원래도 글읽기와 쓰기의 매력이 좋았던지라 블로그와는 차별되는 그 정갈함과 무게감이 좋았다. 그래서 그동안과는 또 다른 나만의 심리학적 글쓰기를 브런치에서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은 네이버 블로그가 더 나을지 몰라도 나는 내 글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관심있어 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당장의 방문자나 좋아요 클릭이 많지 않아도 좋았다. 언젠가 내 글이 충분히 익어가면 그에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라.


처음에는 몇 백 명의 구독자가 있었다. 어쩌다 00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하는 메시지가 뜨면 설레고 좋았다. 하루에 한 두 명의 알림이었지만 참 좋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하루에 수 백명의 사람들이 내 브런치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알림이 오 분에 한 번씩 울렸다. 내 글이 어디 메인에도 올라간 적도 없는데 왜 그럴까 당황했다. 그렇게 생겨난 구독자를 가만보니 그들은 모두 구독작가가 11명 뿐이었다. 알고 보니 브런치에서 작가를 11명 이상 구독하면 이모티콘을 무료로 주는 프로모션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구독자가 8000명을 넘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심한 모독감이었다. 


내게는 관심도 없고, 내 글을 읽지도 않을 사람들이었다. 단지 이모티콘을 타기 위해 구독 버튼을 클릭한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딱 작가 11명에 맞춰. 나는 할 수만 있으면 그 사람들이 내 브런치의 구독을 해지해주고 싶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8,000명의 구독자 중에 내가 글을 올려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몇 십 명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모독감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억지로 구독자를 8,000명을 만들어주면 브런치 작가들이 기쁘고 반가워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블로그도 아닌 굳이 브런치에 둥지를 트려고 마음 먹은 작가라면 그런 허수에 기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브런치가 다시는 그런 이벤트를 억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 많은 SNS, 그리고 네이버의 비슷한 서비스와 경쟁하려면 그 따위 통속적인 상업적 전략은 써서는 안된다. 브런치는 작가들의 감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짜증 #2


나는 브런치의 작가이지만 또 열렬한 독자이다. 내 글만 휙 써놓고 반응 살피는 것 뿐 아니라 남의 글 읽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글은 구독자가 많은 유명작가의 글이 아니라 뜻밖의 사람들이 쓴 뜻밖의 글 들이다.


나는 서점에 있는 베스트셀러를 지독히도 싫어한다. 자기계발서를 특히 싫어하고, 제목만 그럴싸한 글을 싫어한다. 나는 진솔하고, 자기만의 삶과 경험을 쓴 글을 좋아한다. 브런치에는 유명하지는 않아도, 문장솜씨가 유려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작가의 꿈을 갖고 느낌을 써 나가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의 글을 읽고 싶다.


그런데 브런치에서는 브런치가 보여주는 글 외에는 내가 그런 보석 같이 숨어 있는 글을 찾아 읽기가 어렵다. 브런치 에디터 눈에는 별로여도, 내 눈에는 좋아보일 수 있는 글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찾아 읽기가 어렵다.


나는 브런치에서 글을 읽을 때 '메인'이나 '브런치 나우'에서 읽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접근경로는 '최신글'이다. 거기에는 그야말로 신분의 귀천없이 시간 순으로 모두의 글이 있다. 그 글을 제목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눌러 책 표지를 본다. 읽기 싫으면 옆으로 스와이프해서 또 다른 책 표지를 본다. 그러다보면 문득 재미난 글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다. 제목은 좀 밋밋해도 이어지는 글이 좋을 때가 있다.


그런데 짜증나게도, 최신글은 무한정 스와이프가 되지 않는다. 한 20개쯤 보면 더 이상 스와이프가 되지 않는다. 목록으로 돌아왔다가 다음 20개가 로딩되고 나서야 다시 연속으로 스와이프를 할 수 있다. 그게 독서를 엄청 방해한다. 쪼잔하게 트래픽이 아까워서였을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메인글이나 추천글은 읽지 않는다. 나는 랜덤이 좋다. 그리고 20개 제한없이 그냥 내가 시간이 되는만큼 여러 사람의 글을 보고 싶다. 책장 넘기듯 잡지 넘기듯 시원하게 넘겨볼 수 있는 브런치였음 한다.


불쾌함 #3


나는 브런치 나우에 나오는 그 '분류'를 아주 싫어한다. 그 분류가 생겼을 때 아주 실망했다. 브런치 개발자는 브런치의 수 많은 글들을 보기 좋게 분류해주면 사람들이 자기가 관심있는 영역의 브런치를 집중적으로 찾아보기 좋을거라 생각했나보다. 아주 단순하고 익숙한 방법이지만, 글읽기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짓이다. 그것은 선입견 때문이다.


사람의 내면에 관한 어떤 글을 썼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장 심리, 자기계발 관련으로 분류되어 버린다. 그것이 사실은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3개의 태그에 의해 자동으로 심리학 글이 되어 버린다. 심리학글이란 분류를 갖는 순간 그 글을 읽는 사람은 그 글이 갖고 있는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면은 무시하게 되고, 유용하고 쓸모있는 심리학 글이라는 전제를 갖고 보게 된다. 그 글은 '글쓰기' 분류에 해당될 수도 있고, '에세이'에 해당될 수도 있고, 그 여러 분류의 어딘가에 있을수 있다.


나는 브런치에서 '심리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내 글을 '심리학'이라는 태그 없이, 전제없이 그냥 글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독자의 마음대로, 누구는 심리학적 글로 이해를 할테고, 누구는 다분히 문학적인 느낌으로 이해할테고, 누구는 자기계발 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상관없다. 반대로 내가 남의 글을 읽을 때에도 그런 아무런 전제 없이, 그냥 제목에 끌려, 간단한 소개에 끌려 읽고 싶다.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는 것은 꿈도 못 꾸고, 브런치 나우에라도 좀 올라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브런치가 나눠 놓은 분류에 잘 들어맞아야 한다. 브런치 나우에 잘 걸릴려면 태그를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브런치 나우에도 못 가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점점 더 브런치 분류에 맞게 글을 쓰지 않을까?


걱정  #4 

브런치 서비스가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이용자가 늘고 있다. 그런데 브런치 팀이 걱정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묻혀지는 글들'이다. 브런치의 메인이나 브런치 나우는 언제나 최신의 글들만을 보여준다. 키워드로 검색해도 최근의 글들 위주로 보여준다. 정말 좋은 글인데 순간 브런치 나우에 못 올라간 많은 글들은 그냥 묻혀지고 만다. 브런치에 많은 글들이 쌓일 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랜덤 보기' 기능이 필요하다. 과거에 쓰여졌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잘 못 받았던 그런 글이라도 랜덤보기를 통해 먼지를 털고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그걸 통해 많은 보석같은 글들이 다시 빛을 볼 수 있다.


요청사항 #5


어떤 유명 브런치 작가의 브런치를 가보니 이제 브런치를 접는단다. 왜냐면 네이버 포스트에 유명 작가가 되었는데 거기서는 월 30만원씩 창작 지원금도 준단다. 네이버는 대기업이니까 돈으로 작가도 살 수 있나보다. 그럼 브런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 차별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궁리를 브런치팀원들끼리만 하지말고, 브런치에 애정을 갖고 정착하려는 작가들과도 공유했으면 좋겠다.


브런치에 애정이 있기에, 브런치에 대해 이런 저런 의견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이 망할 놈의 페이지 어디를 봐도 고객과 소통하는 게시판 하나가 없다. 그냥 일방향적인 서비스이다.


다음카카오는 서비스 하다가 아닌 것 같으면 그냥 빨리 접어버리는 습관이 있다. 최근 브런치에 꼬박 꼬박 애써 글을 쓰다가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도 돈 안된다고 접으면 어떻게 하지? 물론 글은 백업받을 수 있지만 싸이월드가 추한 모습으로 망가져갈 때 느꼈던 그 참담함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다.


만약 브런치가 어설프게 그런 길을 따라간다면, 결단코 나는 다시는 다음 카카오에서 만드는 어떠한 서비스에도 정착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심리학적 글쓰기만 하는데, 오죽 하소연할 게시판 하나가 없었으면 이런 글을 글로 써서 발행한다. 이 글은 과연 관리자가 볼까? 이렇게 해도 관리자에게 닿지 않는다면 브런치에 둥지를 트는 일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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