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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Jun 23. 2019

<십자가> by 이디스(edith)

2019. 06. 23. 작성

이디스(edith) - 십자가 (2019)


우리는 시를 해석하는 것에 익숙한 세대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해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시를 해부해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 작가의 생애 등 다양한 배경지식을 동원해 시를 해석하며 단어마다 담긴 뜻을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푸는 행위도 의미 있다. 텍스트를 일차원적 감상에서 벗어나 그 너머의 영역으로 끌고 가서 현실에 편입시키는 연습은 훗날 사회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여러 실용적인 능력들을 길러준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과정이 확실한 체계와 의도를 갖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네 교육과정이 예술의 미적 영역을 (어쩔 수 없이) 경시하는 태도는 분명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한 예술가가 굳이 메시지를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까닭은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움 자체에도 집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고득점을 위해 그 포장지를 전부 벗겨내고 알맹이만 찾아서 문제풀이에 써먹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나 역시도 좋은 가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시는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그 숨은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생각해보면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노래 가사와 시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디스의 <십자가>는 윤동주 시인의 원작에 멜로디를 붙인 작품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 감상했을 땐 곡 전반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감상은 가사를 눈으로 읽으며 진행했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같은 독특한 가사가 신기하여 초록창에 [이디스 십자가]를 검색해보았다. 이때 이 작품의 원작이 윤동주 시인의 것임을 알았다.



교과서적인 해석 방식, 예컨대 첨탑은 해방을 뜻하고 피를 흘리겠다는 구절은 희생정신을 나타낸다는 등의 설명을 듣고 감상하면 그 나름대로의 숭고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 입장을 견지해보자면 새로운 방식으로 탄생한 <십자가>를 이런 메시지만 집어서 소비하기엔 너무 아깝다.



이디스의 담담한 목소리, 전자 비트, 신비한 신디사이저로 조성된 벌스는 불안감이 느껴지고, 교회 성가대를 연상시키는 코러스의 공간감과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메인 멜로디는 이를 뒤집듯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번째 벌스가 시작되면 이 두 감성이 섞이며 점점 고조되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환희 섞인 기타 솔로가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이런 음악적 요소가 가미된 <십자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당장 모든 예술 작품을 순수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바라보는 꽉 막힌 관점을 조금은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지금까지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마야의 <진달래꽃>도 있고, 이디스는 예설이라는 듀오로 2018년에 같은 컨셉의 [시집]이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원작과의 차별성/작품의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디스의 <십자가>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디스가 작업한 <십자가>는 지난 4월에 발매된 수림의 [쉽고 확실하게]에 수록된 본인의 작품을 다시 한번 편곡한 것이다. 두 곡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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