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가 동생을 대하는 법

나와 닮은 아이

by 미선씨

둘째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주요 관심사는 첫째 하나의 마음관리였다.

동생한테 사랑을 뺏겼다고 생각해서 퇴행 하지나 않을까,

엄마 모르게 동생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했다.

하나도 아직 어린 아가일 뿐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다짐 또 다짐하며, 하나도 챙기려 노력했다.

신경 쓴 덕분인지, 하나는 누가 봐도 모범적인 언니로 성장했다.

동생 예뻐하고, 동생 잘 챙겨주고, 퇴행도 오지 않았다.


세나가 태어나던 해, 그러니까 하나가 7살이 되던 해였다.

하나가 갑자기 난스럽게 두나에게 못되게 굴기도 하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도 자주 질렀다.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가 여태까지 동생을 예뻐해서 잘 챙긴 게 아니라,

엄마한테 잘 보이기 위해, 엄마한테 사랑받기 위해서 두나를 챙기려고 노력한 것일 뿐인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하나가 두 동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 육아 상담을 신청했다.

" 저도 첫째거든요. 네가 누나니까 동생을 챙기라고 했던 게 그렇게 싫었어요. 그래서 첫째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는데, 부족했나 봐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 본인이 첫째라서, 첫째에게 마음이 가는 거일 수도 있어요. 다음번엔, 아이랑 같이 한 번 만나볼까요?"


그렇게 아이와 함께 한 상담시간. 상담사는 아이에게 집, 가족을 그려보라고 했다.

아이는 일단 스케치북을 반으로 나누더니, 아빠를 왼편에 크게 그렸다.

그리고 오른편에 시터가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 하나가 누워있는 세나를 돌보고 있는 장면을 그렸다.

엄마와 두나는 미처 그리지 못한 채로, 그리는 시간이 끝났다.

모르는 내가 봐도, 이 그림은 문제가 많았다. 일단 아빠와 나머지 가족들이 완벽히 분리되어 있고,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시터였으며, 막내를 돌보는 것 역시 엄마 아빠가 아닌 첫째 하나다.

가족을 그리랬는데 엄마와 동생 두나는 등장도 하지 못했다.

아... 상담사가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나도 당황스럽다. 한다고 했는데, 아이에게 내가 이 정도 존재였나.


이어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집을 그리는 활동을 해보았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들을 표현해보자면서, 우리 둘은 강아지, 토끼 등 동물도 키우고,

별이 보이는 큰 창문도 내고, 마당도 있는 집을 함께 이야기해가믜 그렸다.

활동이 끝나고, 상담사가 말했다. 사실 처음 하나가 그린 그림을 보고서는 좀 놀랐는데,

엄마와 상호작용 하는 걸 보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엄마가 맏이 노릇을 했던 기억 때문에, 하나가 맏이 노릇을 하면서 힘들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오히려 어릴 때처럼 본마음을 숨기고 동생을 챙기는 것보다 표현하는 지금이 더 건강한 것 같다고.

하나는 충분히 잘 표현하는 아이이고, 엄마보다 더 강한 아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오히려 지금은 막냇동생을 보고 퇴행하고 있는 둘째를 더 챙겨야 될 수도 있다고.




그림 그리는 활동 하나로 아이 마음속을 다 알 수가 있겠냐만은,

첫째였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하나를 바라보던 경향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나도 나처럼 의무감으로 맏이 노릇을 하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결국 내 마음이 반영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시각을 달리하니 내 마음도 편해진다. 속마음을 표현하는 지금이 오히려 건강한 것일 수도 있다. 하나가 계속 참고 있지 않아 다행이다.


그렇게 7년 넘게 하나를 바라보던 시각을 바꿨다.

현재 하나의 감정표현은 아주 건강하다. 동생을 잘 챙기기도 하지만 때론 동생들을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당당하게 엄마가 동생을 보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하나에게 동생을 잘 돌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와 둘이만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려 노력하고,

하나가 의젓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오히려 기뻐한다.


아이들 돌볼 손이 모자라다 보니 하나가 도와주는 게 너무 고맙긴 하지만 그럴 때도 하나에겐 꼭 말한다.

" 하나야 도와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건 하나가 할 일이 아니고 엄마가 해야 할 일이야.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하나가 힘들면 꼭 엄마에게 말해줘."


하나가 동생들 때문에 너무 일찍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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