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의 누군가의 장례 소식이나, 지인의 지인이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게 남 일 같지가 않다.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고 또 그리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는 법이니까. 굳이 의식하려 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세월의 풍파라는 것을 어제보다는 오늘 더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법이니까. 내 이름이 적힌 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나 보다. 그렇게 '글쓰기'라는 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관심을 가지니, 글쓰기에 대한 강의며 뉴스, 프로그램들이 꽤나 많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의 출판시장은 예전처럼 종이책에 도장 찍어 인세를 받던 그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목적에 따라, 방법에 따라 출판도 여러 가지로 나뉜다는 것, 쉽게 출판할 수도, 어렵게 출판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출판을 앞두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다짜고짜 '책을 내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내가 왜 책을 내고 싶은 거지? 막연했다. 그저 '내가 저자로 명기되어 있는 책을 갖고 싶다. 기왕 책을 출판할 거면 내 이야기를 누군가 읽어줬으면 좋겠다.(즉, 팔리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욕심내자면 누군가에게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이 정도의 생각으로 출판 세계를 기웃거렸던 것 같다.
나름대로 작성한 원고를 모아들고 출판사 기획팀장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이 해주셨던 여러 가지 조언 중에 뇌리에 깊게 남은 말이 있다.
"'나무에 미안하지 않은 책'을 만들려고 해요."
그만큼 가치가 있는 책이어야겠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도 나무에게 미안해지고 싶진 않으니까.
내가 적었던 글을 다시 읽는 건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지만, 그간 적었던 글을 최대한 냉정하게, 제3자의 눈으로 들여다봤다. 내 글에는 대체로 워킹맘의 고단함이 묻어있어서, 조금은 시니컬하고, 조금은 한탄하는 느낌이 든다. 색으로 말하자면 회색빛이다. 아마도 글을 통해 내 힘듦을 토로하고 싶었나 보다.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과, 기왕이면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에 미안하지 않은 책까지는 아직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랜선에게 미안하지 않은 글이길 바란다. 회색이 내 고유한 캐릭터라면, 조금 더 은은해지거나, 조금 더 반짝여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