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 노릇 재미없어

by 미선씨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기록은,

이 사회가 엄마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에 대한 여자들의 말없는 반항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버스에서 먼저 내린 아이 안 챙기고 뭐했어?

엄마가 되가지고 애한테 햄버거나 먹이니까 병에 걸린 거 아냐.

엄마가 애를 못 챙기니 노키즈존이 생기는 거야. 누가 애 탓해? 개념 없는 맘충 탓이라고.

애 좋은 학교 보내려면 엄마가 그만큼 서포트해야지. 정보도 얻고 애 학원도 픽업시키고.

워킹맘 하겠다고? 애는 어쩌고? 친정엄마든 시터든, 일하고 싶으면 엄마가 소싱해야지.


늙어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삶

난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 사람인데. 그저 엄마로서의 역할만 강요받게 되는 삶.

그러느니 엄마가 되지 않겠다며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것조차, 결혼 안 하니 애는 안 낳니, 애는 둘 이상 낳아야지 이런 잔소리를 버텨내야겠지만.




난 아이를 셋 낳은 워킹맘이다.

솔직히는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내 계획엔 없었다.

현재 내가 엄마가 된 이유는,

잔소리를 듣느니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하고 말지 했던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이 크다.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서 지냈다.

밥해서 애들 먹이고, 정신없이 내 입에 몇 술 떠 넣고, 그러고 나면 치우고, 애들 기저귀 갈고 조금 돌보다 보면 다시 밥시간, 또 밥 하고 먹이고 치우고, 짬 내어 빨래도 돌리고 개고 널고, 틈틈이 애들 보고, 반복하다 애들 씻기고 재우고, 기절하듯 나도 잠들고, 자는 틈에도 애가 아픈지 챙겨야 하고, 먼저 일어나 깨우는 애들 덕에 정신없이 일어나서 다시 하루를 반복했다. 주중에는 위 일정 사이에 아이 등원 및 회사 출퇴근이 추가된다.

24시간 전부를 엄마 역할만 수행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제야 고백한다. 첫째를 낳고 100일가량은, 솔직히 내 자식이 예쁘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24시간 반복되는 모유수유와 기저귀 갈기, 달래고 재우기에 지쳐서, 내가 낳았으니까 키워야지 라는 의무감으로 애를 키웠다.

둘째를 낳고서는 우울함의 바닥을 찍었다. 큰애 겨우 재워놓고, 잠들지 않는 둘째를 안고 큰애가 자는 방에서 나와 부엌 한편에서 보채는 애를 달래며 울었다.

'제발 좀 자라. 왜 이렇게 안 자니.. 너 왜 이래. 엄마 말라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그리고 막내 때는, 집안일과 육아를 아웃 소싱했다. 주 1회라도,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혼자 아이 보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아서 나름대로 처방한 돌파구였고, 덕분에 위의 두 아이보다는 수월하게 영아기를 보냈다.


남편은 그동안 뭐했냐고?

돈 벌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 10시에 귀가했다.

이렇게 남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던 상황에서 내가 10년 넘게 워킹맘일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번째로, 엄마 노릇 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못해서 생기는 육아와 가사의 빈틈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렸다. 아이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일을 아웃소싱했다. 반찬은 배달하고, 집안일과 육아는 도우미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가능한 내 손이 안 가도록 많은 일들을 시스템화했다. 학원은 픽업해주는 곳으로만 보냈고, 아이는 어릴 때부터 숙제, 준비물 챙기기, 옷 입는 것, 씻는 것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했다.

두 번째는, 일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등바등 사느니 안 하고 말겠다며 퇴사를 수시로 고민했었지만, 육아를 핑계로 퇴사하고 싶지 않았다. 퇴사를 할 때 하더라도, 퇴사 사유가 육아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언젠가 퇴사한 것을 후회하게 될 때, 그 화가 애들한테 가지 않겠나 싶어서. '내'가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을 때, 그때가 퇴사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아이 셋인 워킹맘이라 너무나도 바쁘고 집안일도 육아도 회사일도 다 할 것 같아 보이겠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 엄마 노릇도 제대로 안 하고, 집안일은 다 맡기고, 회사에서도 썩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내가 오로지 '엄마'가 아니어서 행복하다. 나는 하나 두나 세나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김미선 과장이기도 하고,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배우는 수강생이기도 하고, 글 쓰는 브런치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에서 누가 '졸혼'처럼 '졸모'를 언급하여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엄마 역할을 졸업하겠다는 선언이다. 거창하게 선언까지는 아니라도, 나는 벌써 반 정도는 '졸모'한 것 같다. 엄마 역할에서 절반쯤.. 아니 1/3 정도는 벗어나서, 그 자리를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

예전에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일 때, 엄마 김혜자가 삼시세끼 밥하는 것 지긋지긋하다며 1년간의 휴가를 얻어 집을 나가버리는 걸 보면서 남편에게 말했더랬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휴가 받고 혼자 있고 싶어.'

생각해보니 이땐 첫애를 낳기도 전이었다. 그런 걸 보면, 나에겐 애초부터 소위 말하는 모성애라는 DNA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겠나. 적어도 나에게 모성애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주입된 것인걸.

아이가 있으니 엄마 노릇을 안 할 수는 없지만,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아웃소싱하고 남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솔직히, 엄마 노릇하는 시간보다 혼자 노는 시간이 훨씬 더 편한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엄마일 때는 감정이 스펙타클하게 오락가락하고, 혼자일 때는 아기자기고 편안하달까. 아무래도 나는 24시간 아이에게 헌신하는 엄마는 되기 힘들 것 같다.


졸모 선언까지는 아니라도, 솔직히 말은 하고 싶다. 엄마도 엄마 노릇 힘들다고. 엄마는 강하고 모성은 위대해야 한다고들 사방에서 떠들어대니까 차마 말 못 하고 입 다물고 있는 거지,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없었다고. 엄마도 가끔은 육아에서 퇴근하고, 엄마 노릇에서 졸업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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