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외로웠던 엘튼 존의 일대기
난 언제 안아줘요?
원하는 사람이 되려면 과거의 네 자신을 버려야 해.
- 두 번째엔 성공하신 거 같네요.
- 그런 셈이지.
- 두 번째 기회도 없는 사람도 있거든요.
왜 위대한 음악가들은 죄다 불우한 가정사를 지니고 있나.
사실 꼭 그런건 아니다. 아무튼 가정을 원하지 않는 친부에게 버림받다시피 길러졌고 친모는 엘튼 존을 빌미로 그의 아버지와 가정을 꾸리길 원했으나 남녀가 정말 사랑한다고 해도 어려운게 결혼생활 인지라, 엘튼 존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제대로 된 정신세계가 박힐리 만무. 결국 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해주던 할머니 덕분에 영국 왕립음악원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백밴드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음악적 동료를 만나고 조금씩 빛을 보게되지만 23살에 눈을 뜬 성정체성과 약물, 알콜에 빠져 늪지대에 살아가면서도 음악적 성취 하나만은 끝내 놓지않고 결국 모든 중독에서 헤어나오게 됐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로켓맨은 '엘튼 존(태런 에저튼)' 의 이름이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 였을 무렵부터 그의 삶을 쭉- 훑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한 번 듣고 피아노로 똑같이 따라 칠 줄 알던 엘튼 존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그의 '할머니(젬마 존스 / 아이비 역)' 의 권유로 피아노 개인 레슨을 시작했고 결국 왕립음악원의 문턱을 밟을 수 있었다. 진지하고 따분한 음악 보다는 로큰롤에 더 호감이 갔던 엘튼 존은 소울 충만한 보컬 그룹의 백밴드를 전전하다가 작사가이자 오랜 음악적 동료인 '버니 토핀(제이미 벨)' 을 만나면서 레코드사와의 계약도 따내고 미국에도 진출하는 등, 현재까지 '엘튼 존' 이라는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음악적 원류를 세계 음악사에 아로새기게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관객과 자신의 카타르시스만을 쫓으면서 정작 엘튼 존의 가슴 한켠엔 점차 피멍이 들어가는 걸 느낀다. 양친의 애정없는 양육과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늘 사랑을 갈구하게 되고 유명세와 화려한 패션 덕분에 누구하고든지 사랑을 나눌 수 있지만 그 누구하고도 깊고 오래 사귀지 못한다. 그런 공허함을 엘튼 존은 마약과 술로 채우게 되는데 공연 오프닝은 기억 나지만 공연이 끝난 후와 뒷풀이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아주 위험한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맨션에서 수면제 85알을 삼키며 자살시도를 하게되고 1990년에야 시카고의 갱생시설에 6주 동안 입원하면서 술과 마약을 완전히 끊게 된다. 세계적 음악사에 주옥같은 명곡을 남긴 위대한 인물이지만 우울한 개인사나 존의 재력에 혹해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연인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마주하는 엘튼 존을 보고있으면 '보헤미안 랩소디(2018)'와는 결이 상당히 다른, 꽤나 진지하고 화려하면서도 엘튼 존의 일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임을 알게된다.
영화 로켓맨의 주연을 맡은 태런 에저튼은 엘튼 존이 순박한 청년이었던 시절부터 불혹의 나이를 넘길 때 까지를 연기하며, 연기자로서의 스펙트럼을 광활하게 펼쳐서 보여준다. 유명세와 불행은 정비례하는 것 처럼 아무것도 모른채 음악이 좋았던 청년이, 쇼 비지니스의 맛을 보게 되면서 과격하고 폭력적이며 히스테리를 남김없이 발산하는 고약한 뮤지션이 되는 과정을 태런 에저튼은 정말이지 남김없이 표현한다. 이쯤 되면 영화의 흥망과는 관계없이 거의 태런의 인생연기 쯤 되는 듯.
영화 로켓맨은 엘튼 존이 이뤄낸 음악적 성취보다 엘튼 존 개인의 문제를 보다 심도있게 다룬 작품이라서 호불호가 상당히 나뉘는 영화다. 타인에게 의존도가 높지만 기댈 곳 없는 그의 정신세계는 화려한 무대복장으로 표출되는데, 로켓맨의 제작진들이 고증에 힘을 쏟은 티를 내고싶었는지 엔딩 시퀀스에 실제 엘튼 존이 입었던 무대의상과 영화 로켓맨에서 복원한 그 당시 무대 의상을 비교하는 듯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엘튼 존의 의상들은 마치 드랙 퀸들이 또 다른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 한껏 과하게 하는 화장이나 옷 스타일 같았달까.
천재적인 모습 이면에 가려진 엘튼 존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담긴, 로켓맨이었다. 엘튼 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영화 내내 흐르는 주옥같은 명곡들 덕분에 보고 듣는 재미가 있겠지만 엘튼 존의 음악이라곤 'crocodile rock'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음악 전기보다는 인생 전기 영화 자체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로켓맨(rocket man) 의 가사를 옮기며 리뷰를 마치겠다. 심각하게 외로운 삶을 살던 당시의 엘튼 존의 심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노래다.
she packed my bags last night pre-flight
어젯밤 비행기에 타기 전에 그녀는 내 가방을 챙겼어.
zero hour nine a.m.
출발 시간은 오전 9시.
and i'm gonna be high as a kite by then
그리고 난 가장 높게 날고 있는 연 보다 높이 올라가겠지.
i miss the earth so much, i miss my wife
난 지구가 너무 그리워, 내 부인이 그리워.
it's lonely out in space
우주는 외로워.
on such a timeless flight
끝이 없는 비행.
and i think it's gonna be a long long time
오랜 시간이 걸릴거라고 생각해.
'til touchdown brings me 'round again to find
나를 다시 찾아 착륙하기 전까지.
i'm not the man they think i am at home
난 그들이 생각하는 집에 있는 사람이 아니야.
i'm a rocket man.
나는 로켓 맨.
+
영화 로켓맨의 쿠키영상은 없다.
++
엘튼 존은 평소 당대의 뮤지션들과 절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존(john)' 이라는 예명도 비틀즈의 '존 레논(john lennon)' 과의 친분 덕분에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심지어 존 레논의 아들인 션 레논의 대부였다고도 한다.
또한 우리에겐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로 더 친숙하게 된 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와도 절친한 사이여서 1980년 후반, 프레디가 에이즈에 걸렸던 사실을 알고 있던 극소수의 지인들 중 한 명이었고 프레디가 세상을 떠나기 전, 병문안이 가능했던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뭐, 엘튼 존의 음악은 1도 모르고 살다가 동성애 혐오 논란이 일던 에미넴과의 친분 덕분에 같이 공연을 했던 'stan' 라이브 음원(2001년 그래미 어워드 공연) 덕분에 '아 이 아재 목소리가 이렇구나' 라고 인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