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가족들의 정신건강에 해롭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까지는 별 탈 없이(?) 지냈다. 턱걸이로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다행히 텃세 같은 건 없었고 특히 동기들이 나와 흔쾌히 놀아줘서 정말이지 평생 마셔야 할 술을 그때 다 마신 느낌이다. 틈만 나면 동기들과 어울렸다. 영종도 인가로 여행도 가고 학교 뒤에 있는 산에 올라가,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 새우깡에 소주도 마시고 군산에서 올라온 동기네 집에 단체로 놀러도 가고 모텔 방을 잡아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방학이면 가끔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여자 친구를 만나고 집에 있는 햄스터들에게 밥을 주거나 손을 물리기도 하고 만화책을 보거나 친한 중학교 동창과 차를 몰고 공원에 가서 농구를 하고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분은 대학생이었지만 한량이나 다름없던 나날들이라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주인공들과 진배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이 부모님들께서 내 앞에 이혼 서류를 내미셨다. '너만 좋다고 하면 이혼할 거다' 책임 전가를 나에게 돌리는 모양새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다짜고짜 통보하듯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더니 역시나 아버지 때문이었다. 원래 예전부터 약수를 좋아하시던 분이셨지만 거의 평생을 술에 빠져 사시면서 집에 십 원 한 푼 갖다 주지 않으셨던 분이시다. 어쩌다 출장을 가, 일이 잘 돼서 큰돈을 벌게 되시면 몇 박 며칠을 술집에 쏟아부으신 후, 주머니에서 동전 소리가 날 때 즈음 집에 돌아오셨다. 그래서 나는 내심 혹시 아버지 술 때문이냐고 두 분께 여쭤보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당시 우리 세 가족이 살던 집이 대출을 받아서 구입한 빌라였는데 어머니께서는 대출을 받아 무리를 해 가시면서까지 나에게 집이라도 한 채 해 주시려고 그랬던 거고 당신의 신용이 좋지 않아, 아버지 명의로 대출을 받은 것에 대한, 아버지의 화풀이셨다. 그게 왜 이혼 사유가 되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어찌 됐든 아버지의 술 문제 때문이 아닌, 아버지 명의로 대출을 받아 세 가족이 살던 집 때문에 이혼을 하자고, 그것도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셨단다. 나는 속으로 '이제 때가 된 건가' 싶었다. 예전부터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던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다. 툭하면 아버지께서 휘두르던 가정폭력에, 동네 경찰들도 우리 집 전화번호를 외울 지경이었다. TV에서나 보던 칼부림이나 고성 등은 예삿일이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우리 아버지가 보여주던 그 눈빛과 표정이 몸서리 날만큼 싫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내 몸집이 아버지보다 훨씬 좋아졌으니 삐딱한 부정과 위기감에,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께 눈빛만 부라려도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라며 욕설이 오갔다. 그걸 20년이나 봐온 어머니의 삶은 오죽했을까.
그래서 솔직히 너무 좋았다. 이제야 어머니가 아버지 없는 당신의 제대로 된 삶을 사실 것 같아 기쁘기까지 했다. 그래서 두 분은 그 길로 이혼을 하시고 아버지는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시며 바로 그날 짐을 싸가지고 집을 나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내가 아버지를 버린 것 같아 보였지만 알고 보면 아버지가 우리를 버린 느낌이다. 그 뒤로 7~8년 동안 아버지의 연락은 어디에서도 닿지 않은 채 지나갔고 어머니께서는 식당 일을 계속하시다 새로운 분을 만나셨고 나는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휴가 기간 동안 집에 있지 말고 아저씨 댁으로 오라는 말씀을 어머니께서 몇 번이나 하셨다. 그래서 나는 휴가 첫날 집에 들러 휴가 기간 동안 입을 사복 몇 벌과 운동화 등을 챙기고 아저씨 댁에서 휴가 기간을 다 보냈다. 100일 휴가, 일병 휴가, 포상 휴가, 상병 휴가까지. 마지막 병장 휴가는 어머니께서 내 옷가지들을 모두 아저씨 댁에 갖다 놓으셨다면 바로 아저씨 댁으로 오라길래 그렇게 했다. 그리고 제대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에 가봤는데 아버지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샀던 그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깜깜절벽 파트 2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