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by 노군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영어로는 'nevertheless', 풀어쓰자면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자면 저 말뜻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덕분에 13년 동안 신용불량자로 살아왔던 나날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뭐든 하려고 애를 썼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전무했기에 팔자에도 없던 레코드샵 아르바이트, 술집 주방 아르바이트, 이마트 보안요원 아르바이트, PC방 아르바이트, 호텔 프런트 업무 등을 전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호텔에서 나오던 날, 나이 먹고 밤을 새우는 일은 너무 힘이 들 것 같아서 무작정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부터 포토샵은 조금은 친숙했고 그림 같은 걸 컴퓨터로 그리기엔 일러스트레이터만큼 최적화되어있던 건 없었으니까. 그 당시에 알게 된 친구의 여자 친구가 일러스트레이터라서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분당인가 야탑에까지 노트북을 들고 가, 나와 생일이 같은 동갑내기 여자아이에게 기초를 배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시내버스에서 우연히 알게 된 국비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며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기본기부터 갈고닦았다. 수업이 없던 주말엔 막일을 뛰고 수업이 있던 주 중엔 오후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공부를 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처음 취업한 곳이 동판에 인쇄를 하는 인천 서구의 그라비아 업체였다. 그라비아 인쇄를 쉽게 얘기하자면 포장지에 새겨지는 문구들을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하고, 그걸 컴퓨터에서 필름 형식으로 출력한 뒤, 동그란 동판에 새겨서 잉크를 묻히면 수십수백 장의 인쇄물들이 나오는 걸 뜻한다. 맨 밑바닥에서 시작했던 일이라 잦은 야근과 선배들의 꾸지람, 그리고 회식이 굉장히 많았던 회사지만 그래도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밥벌이를 했던 회사라 가장 많이 기억이 난다. 그다음엔 문득 책 커버 같은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또 무작정 마포에 있는 영세한 출판사로 이직을 하게 된다. 거의 기본급을 받아 가며 또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을 했던 셈인데 그라비아 회사보다 더 잦은 야근, 함께 일하던 여직원들의 텃세 등을 견뎌내며 내 이름이 박힌 책도 몇 권 내고 재미있게 일을 했던 기억이다. 그 뒤로 아주 작은 쇼핑몰에 들어갔다가, 또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근근이 먹고살던 중, 한국은행에 다니는 외삼촌이 추천해주신 한국은행 인천본부에 계약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쇼핑몰에 있을 땐 사수를 잘 만나서 너무 편하게 일을 했었지만 한국은행에 들어가고 나서는 심각할 정도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 가며 근무했었고 이미 로열패밀리처럼 살고 있는 선배들과의 삶의 질에 대한 격차를 온몸으로 체감해가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열심히 하다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한국은행이 워낙 폐쇄적인 집단이라서 계약서에 '내부에서 있던 일을 외부로 유출했을 시, 법적인 대응 어쩌고...'라고까지 쓰여있던 터라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제고 반드시 세상에 알릴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잡혀가진 않겠지?). 일단 살면서 계약직의 삶을 거의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한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운이 좋다고 밖에 말할 수 없던 정규직 인생이었는데, 계약직에게 행해지는 모든 불합리한 요소들은 다 때려 박았던 한국은행의 나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경력 단절까지 이뤄질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한국은행에 입사를 했던 당시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서 이왕 들어간 거 2년 가까이를 꾹 참고 어찌어찌 다녔다. 한국은행을 나온 뒤엔 예전 쇼핑몰 사장님께서 다른 곳에 사업장을 새로 열게 되어 나를 불러주셨지만 현재는 2개월 만에 다 말아 드시고 나는 여전히 일을 쉬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5년 가까이 운영해온 블로그도 있고, 영화 리뷰는 거의 매주 한 편씩 쓰고 있기에 그럭저럭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출발선을 끊었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상대적으로 내가 설 수 있는 곳은 많이 줄어들고, 과연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일까? 어쩌면 태어나지 않았던 게 더 낫지 않았나?라는, 조금은 비관적인 생각도 많이 하게 된 4개월이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무 기적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라고 했다. 소중하게 주어진 시간들을 낭비하고 인생을 헛되이 살았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지금의 내가 굶으면 무얼 하든 다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나날들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상황이 썩 나아진 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살아있고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의 성공신화를 사랑하지, 패배자처럼 절절대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정말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자부심을 긁어모아, 당당하게 일어설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인생이고 살만하다고 생각하면 살만한 인생이다. 그런 와중에 만났던,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술 한 잔, 커피 한 잔, 밤새 꽃 피우던 음악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을 나누며 이런 부족한 나를 친구랍시고 오빠랍시고 형이랍시고 동생이랍시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주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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