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행복의 조건은 뭐가 있을까. 말로 형용할 수도 없을 만큼,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숫자만큼 개개인이 지닌 행복의 조건은 어마 무시할 거다. 나는 일단 살아있음에 행복했다. 지금 방구석에 편하게 앉아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행복하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쉽고 간략하게 글을 타이핑할 수 있는 양손이 있음에 행복하다.
이렇게 멀쩡히 숨 쉬고 사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 삶을 13년? 14년 정도 살았다. 갓 제대하고 난 다음엔 딱히 특정한 직업이 없어서 신용카드 같은 건 만들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일단 밖에 나가서 어딘가로 이동을 하려면 버스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신용카드 발급 자체가 안됐다. 왜 안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벌이가 일정치 못해서 그러겠거니 하고 살았다. 연수동의 반지하에서. 그러기를 4년. 2009년 정도에 호텔에서 나온 다음, 인천의 주안 쪽에 원룸을 얻고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밤에 양복을 차려입은 아저씨 한 명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누구인고 하니 대출 빚을 받으러 다니는 인물이었다. 2001년 정도에 군에 입대하면서 어머니의 생활비가 모자라 내가 보증을 서서 빌렸던 1,800만 원 정도를 어머니께서 10원 한 장 갚지 않아 내 앞으로 다 떨어졌다고 그 양복은 설명했다. 당신 이러다 큰일 난다는 협박과 함께. 그 길로 어머니께 전화를 하여 어찌 된 일이냐고 여쭤보니 내가 군 입대를 하면서 바로 아저씨 댁으로 들어가셨고 일은 안 하게 되시니 자연스레 빚은 이자만 불어나고 있었던 것. 내 기억으론 그때 생긴 이자(7년 치)가 1,600만 원 정도 돼서, 원금 포함 3,400만 원이 내 앞에 생긴 빚으로 변해있었다.
그다음 날 어머니와 법무사를 찾아가서 어머니는 파산신청, 나는 일을 해야 하니 면책과 변제를 상담받았고 원금만 책정한 금액을 5년 동안 30만 원씩 갚는 조건으로 채무를 처리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대출을 신청한 사람이 파산 신청을 하고 보증을 섰던 사람이 파산 신청을 하지 않았을 경우 법원에 가서 일을 처리하고 재판, 판결, 선고 등의 모든 잡무를 보증인이 해야 한다. 그래서 일을 하던 와중에 회사에 사정을 얘기해서 팔자에도 없는 법원을 들락거린 게 한두 달 정도였다. 그렇게 5년 동안 내가 혼자 빚을 갚았으며(중간에 어머니도 몇 번 도와주시긴 했다), 서른이 훌쩍 넘는 시간까지 신용카드 한 장 못 만들며 살았다. 그래서 월세를 전전했었고 현금이 없으면 밖에 못 나가는 상황들이 왕왕 있었다. 일을 다니면서도 항상 짤리지 않을까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현찰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안됐던 시기였으니까.
이쯤 되면 왜 그런 부모들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실제 그 당시 내 주변 친구들은 다들 의아해했다). 한 번 부모는 때려죽여도 부모라고, 어찌 됐든 그 시절의 잘잘못들을 가리기엔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고 거꾸로 올라가 보면 결국 다 아버지가 돈을 잘 안 벌어다 준 게 가장 큰 이유다. 백보 양보해서 보증을 섰던 내 잘못이라고 해도 우리 집까지 날려버린 어머니의 잘못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그래도 날 낳아주신 부모님이고 특별한 잔병치레 없이 건강한 몸을 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나의 행복의 조건은 별게 없다. 그냥 삼시 세끼 챙겨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밥과 몸을 편하게 쉬게 할 수 있는 집, 이것만 있으면 된다. 이것조차 사치인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갖지 못한 것들을 갈망하기보다는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들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분명히 나보다 잘나고 멋진 사람들은 한국에서만 봐도 수천만 명은 넘을 것이며 나보다 못한 사람들도 그 수만큼 많을 것이다.
예전에 힐링캠프에 나왔던, 화상으로 피부 대부분을 잃은 '이지선'이라는 분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그래도 난 저 사람보다는 괜찮아'라고 위안을 얻는 사람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을 봤을 때 반드시 무너지게 된다고. 나도 분명히 그랬다. 심히 빈곤하던 반지하 시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순간에도 '이것도 못 먹는 사람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끔 했었는데 그때는 당연히 나보다 잘 사는 집에 태어나 별다른 걱정 없이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럽고 서글펐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에 대한 소중함에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건 다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