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C

아이를 외탁했을 때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by 노군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라 어릴 때 부모님을 동반하지 않고 패스트푸드점에 가거나 외식을 했던 기억은 없다. 동네에 치킨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서 나오는 치킨을 튀기는 냄새가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서있었던 때도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와 몇 년에 한두 번 외식을 하던 집 앞의 경양식 집에서 나온 바퀴벌레까지도 기억한다. 그만큼 손에 꼽는다. 밖에서 도란도란 온 가족(이라고 해봤자 세 식구였지만)이 밥을 먹었던 때가.


아버지는 번 돈 술에다 쓰느라 바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잡으러 다니기 바빴다. 그래서 나는 왕왕 고모 댁이나 이모 댁에 맡겨졌다. 다 우리 집 근처에 살던 시기가 있었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에 부재 중일 때 양쪽 집에 거의 위탁(?) 하는 식으로 나를 맡겼다. 고모 댁은 그래도 '같은 노가'라고 아버지를 이해하자는 둥 노 씨 집안 특유의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고 이모 댁(막내 이모 댁) 은 철저히 나를 무시했다. 특히 이모 댁의 나보다 한 살 많은 형, 그리고 나보다 한 살 적은 여동생의 콤보가 어렸던 나를 무던히도 괴롭혔던 기억이다.


형은 당시 유행하던 스트리트 파이터 기술들로 나를 때리기 바빴고 여동생은 툭하면 내 얼굴을 할퀴기 바빴다(이유도 없이!). 그때가 국민학교 3학년 때였나 그랬는데 애들 정신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이모의 사사가 있었는 듯. 난 늘 이모 댁에 가면 주눅이 들어있었다. 내가 한 마디 하는 것도 죄다 꼬투리를 잡는 성격이셔서 이모 댁에 살 때엔 말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다. 내가 밥 한 공기를 다 먹으면 꼭 이모는 한 공기 더 주냐고 물으셨고 나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는데 그게 밥을 더 줘도 괜찮다는 말인지 안 줘도 괜찮다는 말인지 밥 먹고 나서 꼭 이모는 시비(?)를 거셨다. 이미 입에 붙은 말이라 국민학교 3학년짜리는 밥을 먹을 때마다 돌아오는 이모의 질문에 늘 똑같이 대답을 했다. 그래서 언제나 이모의 눈치를 봤다. 밥을 다 먹고 난 뒤에는 늘 이모의 눈치를 봤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형 동생과 투닥거리며 놀 때(?), 심지어 이모네 맡겨질 때에도 언제나 눈치를 보면서 들어갔다. 나는 사실 생활하기 좀 거북한 이모 댁에 맡겨지기 싫은데 바쁜 우리 부모님들 때문에 괜히 내가 맡겨지는 게 미안해서. 이모는 눈치만 보는 나에게 왜 눈치를 보냐고 또 눈치를 주셨다. 열 살짜리 조카에게. 하도 쥐 잡듯이 애를 잡으려고만 하니 눈치를 봤겠죠. 어릴 때, 아무리 친척 집이라고 해도 어딘가에 애를 맡기면 정말 안 되겠구나 라는 걸 이모 댁에 살면서 많이 배웠다.


한 번은 이모부께서 퇴근길에 'KFC'라는 치킨을 사 오신 적이 있었다. 나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치킨이었으며 살면서 맛을 보기는커녕 길거리에 있는 매장도 한 번 본 적 없는 통닭이었다. 하얀 몰골의 할아버지가 빵-끗 웃으며 새겨져 있던 그 KFC 치킨 박스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예전의 KFC는 세 조각, 다섯 조각, 아홉 조각으로 치킨을 판매했었다. 이모부께서는 다섯 조각이 들어있는 치킨을 사 오셨고 당연히 나까지 포함해서 한 조각씩 먹는 줄 알았다(이모부, 이모, 형, 여동생, 그리고 나). 하지만 그 시절의 어른들이 대개 그렇듯, 아이들끼리만 먹게 해 주셨고 나는 난생처음 먹어볼 치킨을 한 조각 이상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자연스럽게도 형과 여동생이 두 조각씩을 먹었고 나는 한 조각(그것도 퍽퍽한 가슴살)만 맛볼 수 있었다. 형과 여동생이 욕심을 부렸다기보다는 이모가 당연히 당신네 자식들을 더 먹이신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날 맛봤던 KFC 치킨 가슴살 한 조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먹어봤던 살 없는 옛날식 통닭과는 맛의 차원이 달랐으며 짭조름하고 바삭한 닭 조각의 식감은 10살이었던 나의 가슴도 뛰게 만들었다. 비록 한 조각이었지만 유명한 치킨을 먹어봤다는 자부심과 집으로 돌아가서 당장 우리 부모님들께도 먹자고 할 거라는 기대감, 그리고 이모의 치사함에 하루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KFC 치킨을 자주 사 먹어 버릇했다. 어린 시절에 쌓인 울분 같은 게 녹여져 있던 건지 뭔지 아르바이트비를 받는 날은 무조건 KFC 치킨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던 게 생각이 난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잘 사 먹지 않게 됐지만 가끔 KFC 치킨을 먹으면 여전히 맛이 좋다.


아마 군대를 제대하기 전까지 갖추고 있던, 내 뼛속까지 소극적인 소심함을 이모 댁에서 다 기른 것 같다. 여름 방학이고 겨울 방학이고 할 거 없이 눈칫밥을 먹으며 친척 네 집을 전전하던 나로서는 배우고 익힌 게 눈치 보는 것과 주눅 드는 것, 그리고 내가 뭐만 하면 혼을 내시고 비아냥 거리시던 이모의 표정과 언성이 아직도 기억난다. 부디 아이를 양육하게 된다면 사정 때문에 친척 네에 아이를 맡기는 것보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곁에 두고 양육하는 게 최고다. 아이의 인격이 형성되는 시절에 남의 손을 타면 애가 이상해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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