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제대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벼룩시장을 보고 겨우 찾은 일자리가 인천에 있는 관광호텔 프런트 일이었다. 오픈 멤버로 들어가게 된 자리라서 지배인님의 지휘 아래 모든 규칙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한 1년 정도 일하고 나니, 지배인님께서 불현듯 현균 씨는 급여가 얼마냐는 물음을 날리셨고 나는 한 달에 백오십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을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배인님께서 화들짝 놀라시며 호텔에서 나가는 돈은 이백만 원이 넘는데, 왜 그것밖에 못 받고 있냐고 되물으셨다. 이윽고 나는 벼룩시장에서 알게 됐던 직업 소개 업체에 연락을 해보니 중개 수수료로 50만 원이 넘는 돈을 가져가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도 매달.
그 길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자의로 그만둔 건 아니고 지배인님께서 그럴 바엔 차라리 당신이 알고 계신 다른 호텔을 소개해 줄 테니 거기에서 부당한 대우받지 말고 일하라는 조언을 듣고 다짜고짜 시흥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게 됐다. 시흥에 있는 호텔은 일단 중개 수수료 같은 개념이 없었다.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취급을 받고 일을 했냐며 시흥 호텔 사람들이 다들 놀랬다. 매니저를 역임하고 계시던 과장님께서는 나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아서 다행히 다른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게 됐다.
인천에서 출퇴근하기가 조금 힘들다고 시흥 호텔의 지배인님께 말씀드리자, 호텔에 있는 작은 쪽방에서 생활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의해 주셔서 얼마 없는 인천 연수동의 반지하 무보증에 있던 내 짐(컴퓨터 한 대, 이불 하나, 밥솥 하나, 베개 하나, 옷 가지 조금, 그리고 신발 두어 켤레)을 호텔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다. 1년쯤 지난 뒤에 함께 일하던 여자 선배 직원이 개인 사정에 의해 그만두게 되었고 그 밑에 있던 다른 여직원도 그만두게 되었다. 갑자기 공석이 두 자리 나 생긴 호텔 프런트에 우리는 부랴부랴 새로운 직원을 모집하게 되었고 서울에 살던 두 살 터울의 여직원 하나, 그리고 그 직원과 동갑인, 창원에서 올라온 여직원 하나. 이렇게 두 명을 새 직원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원래 모텔 같은 호텔들이 대부분 오픈 멤버로 한 번에 직원들을 들이는 걸 좋아하고, 물갈이를 할 때면 거의 순차적으로 기존 직원을 내보내고 새 직원을 들이는 걸 좋아한다.
나름 '선배' 랍시고 가오 같은 걸 잡는 요령도 생각도 없는 인간이라서 새로 온 여직원 두 명에게 딱히 지시 같은 걸 하지 않았다. 힘든 일은 거의 내가 도맡아서 했으며 교대로 호텔 방에 올라가 잠을 청할 때에도 내가 조금 덜 자고 여직원들을 더 재우곤 했다. 모텔 같은 호텔들의 근무환경은 대부분 다르지만 내가 있었던 시흥의 호텔은 2인 1조로 24시간씩 교대 근무를 섰었다. 나와 서울 여직원이 거의 한 조였고 창원 여직원과 대리님이 한 조였다(과장님은 깍두기 스타일로, 근무가 펑크 나거나 누군가가 휴가를 낼 때면 본인이 빈자리가 생긴 조에 들어가 근무를 섰다).
무난하게 몇 개월을 보내던 어느 날, 대리님이 이혼 문제로 자리를 비우게 되던 날이 있어서 창원 여직원과 내가 한 조가 됐던 시기가 있었다. 1주일인가를 창원과 함께 근무했었는데 그 정도로 컨트롤 안 되는 직원은 사회생활하면서 처음 본 듯하다. 새벽에 교대로 올라가 잠을 잘 때 객실 전화기를 아예 내려놓고 아침까지 자는 건 예삿일이었고 툭하면 과장님이나 서울 여직원을 꼬셔서, 일하는 중에 술을 먹곤 했다. 그런 것도 다 사람의 성향이겠거니 하고 몇 번을 싫은 소리 안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나중엔 별다른 연락도 없이 비번 전날에 서울의 클럽에 가서 밤을 새우고 놀다가 아예 출근을 하지 않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여자애 하나 휘어잡지 못한다고 과장님과 대리님은 날 나무랐고 내가 창원을 앞에 앉혀두고 싫은 소리를 해봤자 이미 창원은 나를 '호구'로 여긴 뒤였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을 정말 싫어했다. 창원에서 온 여직원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창원 여직원의 생김새를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조금 남자같이 생겨서 예쁘다고는 절대 말하지 못할 정도로 생긴 녀석이었는데 패션 센스가 한참이나 앞서있었다. 평소에 외모지상주의를 찬양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예쁘장한 여자애가 독특한 옷을 입으면 패션이 좀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창원이 사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못난 얼굴을 옷으로 커버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단순히 옷 입는 것만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나중에 내가 퇴사하고 과장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혼 수속을 밟던 대리님과 눈이 맞아, 같이 호텔을 그만두고 쇼핑몰을 차렸다고 한다. 그것도 사전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덕분에 과장님과 서울 여직원 둘이 며칠 밤을 1 대 1 맞교대를 서면서 고생 좀 했다고... 그리고 원래 대리님의 전 부인은 이혼을 원하는 상태였고 대리님은 이혼은 절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창원이 나타나면서 대리님은 그대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창원이 차린 온라인 쇼핑몰도 대리님의 돈으로 차린 거였고 그 일 이후 거의 형제나 다름없던 과장님과 대리님(양쪽 부모님들끼리 모두 친구 사이시다)은 현재까지 연을 끊고 살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일을 할 때 창원을 조금 잡았더라면 상황이 저렇게까지 흘러갔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나와 창원이 함께 일한 건 겨우 1주일 정도였으니 애초에 창원의 정신세계가 조금 남달랐던 거다. 게다가 나는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방법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하면서 지시를 내리느니 힘들어도 그냥 내가 하는 스타일이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라고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생활, 사람을 부리는 법, 부하직원 관리 같은 건 딱히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아왔다. 이후 직장에서도 타인에 의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나에 대한 없는 말을 지어서 하는 사람들을 볼 때 빼고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넘겼다. 내가 근무 환경이나 급여보다 더 중요시하는 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회사 동료들과 어딘가 쌉쌀-한 게 가슴속에 느껴지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그냥 다 무난하게 일했으면 한다.
그 뒤로 서울 여직원과는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창원은 내 알 바 아니고). 심지어 서울 여직원의 결혼식에도 참석했었다. 지금은 애 낳고 잘 살고 있다. 누구보다 사람들과의 연을 중시하는 편이라서 사회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도 엔간하면 연락을 끊지 않고 지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시흥 호텔 과장님과도 가끔 연락하고 얼굴 보며 지낸다.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기준은 눈치가 빠르고 상사의 비위를 잘 맞춰주며, 부하직원 관리도 으뜸! 거기에 분위기를 띄울 줄도 알고 매사에 열심인 사람이다. 내가 과연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인가를 되묻는다면 절대 그런 편은 아니라고 대답을 하겠지만 그래도 맡은 일은 잘하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곰 같은 여우를 더 좋아한다.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적당히 융통성도 있는 그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