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방법.
원래부터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극장'이라는 플랫폼을 제대로 인지한 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였지만 대부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영구와 땡칠이', '우뢰매'를 보러 갔을 때나, 흑백 화면의 '천지창조'를 외갓집 식구들과 단체로 관람했을 때라 영화의 가격이나 극장의 시스템 같은 건 알 턱이 없었다. 그 뒤로 우리 집이 슈퍼마켓을 운영할 때, 주말의 명화에서 해줬던 '쥐라기 공원'을 보면서 '미국의 과학력은 이제 멸종된 공룡까지 복원할 수준이 되었구나'라며 CG를 진짜라고 믿을 정도로 놀라며 영화에 대한 접근성을 늘려갔다. 대부분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나 특촬물을 감상하는 게 그나마 내가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 중에 하나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가위바위보로 얻어걸린 CA 시간의 '영화 감상부'에 가입했던 게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아침에 조조할인 형식으로 극장 단체관람을 하던 게 고 2 때였나 그랬다. 지금의 인천은 문화 발전이 전무한, 어딘가 황폐한 도시가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록 음악의 시발점도 인천이었고 프로야구 구단의 탄생도 인천이 전국 최초였다. 그래서(?) 덕분에 극장도 서울만큼이나 많았다. 피카디리, 인형 극장, 중앙 극장 등 동시 상영을 빌미로 외설적인 영화와 그 당시 유행하는 영화를 끼워 팔면서 한 편 가격을 받던 극장도 수두룩했다. 그 극장들은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설 곳이 없어, '효도 극장'이라는 명목으로 연세 있으신 분들을 겨냥한 고전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으로 살아남은 곳이나 억지로 멀티플렉스를 흉내 낸 극장 말고는 진작에 다 문을 닫은 상태다.
그 시절 인천 소재의 극장은 좌석 번호도 없었고 외부 음식물 반입도 엄청 자유로웠다. 심지어 상영관 내에서 흡연이 가능하던 극장도 있었을 정도니 '매너' 따위는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이다. 여기저기에서 극장 근처에 있는 KFC 매장에서 사 온 치킨 냄새가 나는 건 기본이고 좌석이 없어서 복도 쪽에 앉아서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휴대폰 통화나 삐삐 호출음이 상시 울려대는 건 애교였고 남자 관람객들이 툭하면 담배를 피워대던 통에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영화를 관람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대중 매체들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이었다. 원래 감정이입이 잘 되는 체질이라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들이 겪는 상황이나 감정에 심취해, 툭하면 눈물을 흘리거나 주인공과 함께 분노하곤 했다. 그런 시절들이 뭉쳐져서, 지금의 내가 지닌 감성을 완성한 게 아닌가 싶다. 현재도 '겨울 왕국', '슈퍼배드 1'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울고 조승우 주연의 '클래식'을 보면 러닝타임 내내 다섯 번씩 울고 그런다. 뭔가 슬픈 상황이나 주인공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 말고, 가슴을 찡- 하게 흔드는 장면이 나오면 다짜고짜 눈물이 나온다. 일단 어두운 극장 안에 앉아서 꼼짝할 수 없는 그 한두 시간이 너무 좋고, 무엇보다 다른 모든 일들은 제쳐두고 무언가에 '집중'을 할 수 있는 상황 같은 게 본능적으로 좋았나 보다. 그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행해지는 것과 다름이 없어, 제대로 인지하지도 않은 채 영화라는 것에 빠져드는 걸 수도.
시간이 조금 지나서 '싸이월드'로 발발된 SNS 세계가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펼쳐질 즈음, 내가 본 영화들의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싸이를 뒤져보니 2005년 8월 14일에 남긴 김혜수 주연의 '분홍신' 이 내가 처음 쓴 감상문이다. 제대하고 바로 영화 감상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나 보다. 그걸 14년이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싸이가 망하고 내가 직접 만든 홈페이지를 운영해 가며 영화 리뷰 글들을 거기로 다 이전시켰지만 스마트폰이 도입되면서 읽고 쓰기가 쉽지 않아, 네이버 블로그로 옮겨오게 됐다. 싸이월드 시절에 남긴 영화 감상문은 '리뷰'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간단하게 쓴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아무도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텍스트를 길게 늘여 쓰는 게 버릇이 돼서 인스타그램 등으로 옮겨 적을 때마다 최대한 줄여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쨌든 이제는 1주일에 한 편 이상은 꼭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딱히 평론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닌데 내가 블로그에 남긴 글들을 보고 똑같이 공감하는 사람들이나 내가 모르던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들, 그리고 재밌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희한하고 그렇다. 취미가 업이 되면 참 좋겠지만 글을 쓰는 직업 역시 아직 구태의연한 옛것들이 악령처럼 남아있어, 다 인맥이고 학연이고 그렇다.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고, 시나리오가 주는 메타포나 주제의식에 감동하면서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영화에 심취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