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이혼 이야기.
- 찰리가 여기 오면 팜스프링스로 데려갈 거야. 난 네 아빠랑 싸울 때마다 그랬거든.
- 거기서 아빠가 짐꾼한테 오럴 해줬다면서요?
난 벤이랑 약혼하고 LA에 살고 있었어요. 그 땐 영화를 찍고 벤이랑 결혼하고 싶었죠. 솔직히 말해서 내 일부가 죽은 기분이었어요. 활기가 없었어요. 그냥 이렇게 자위했죠.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관계도 없다고요. 하지만 찰리를 만나고 내 일부는 죽은게 아니라 잠들어 있었다는 걸 알게됐어요. 대화보다 섹스가 좋았죠. 알고보면 섹스도 대화같았어요. 알고보니 내가 살아난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줬던거죠.
그는 날 인정하지 않았어요. 자기와 별개인 독립적인 인격체로요.
- 난 하나만 해주면 돼요.
- 뭐요?
- 손가락으로 해줘요. 그 이상은 안 할거예요. 이번에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려구요.
알고보면 이혼 이야기.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가 노아 바움백 감독의 손에서 파혼을 맞은 한 쌍의 남자와 여자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역할을 맡은 영화다.
10년동안 공연해온 소규모 연극의 연출자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연극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아내인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이혼절차에 들어간다. 덕망있는 리더십으로 연극 단원 전부를 이끌던 찰리는 자신의 연극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려던 찰나 니콜의 이혼 선언에 멘붕에 빠지지만 이내 '그녀가 원하면 내 재산 전부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려운 시절에 자신의 곁을 지켜주고 묵묵히 지지해주던 니콜을 배려하는 찰리. 니콜은 처음 출연한 헐리우드 영화에서 가슴노출을 감행하며 업계 사람들에게 은근한 이미지를 남겼지만 찰리를 만나면서 10년동안이나 그의 연극에 동참하게 된다. 이제야 고향인 LA에서 제작되는 TV쇼에 주연자리를 꿰찬 니콜. 그리고 어느날 알게 된 극단 연출부 여직원과 찰리의 외도. 니콜은 그 길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10년 동안의 결혼생활 중 자신을 단 한 번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지 않던 찰리의 행태들을 떠올린다. 체념 상태에서 시작하는 이혼절차가 니콜이 LA로 돌아가고 찰리가 홀로 뉴욕에 남게 되면서 두 사람 모두 변호사를 사며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를 사이에 두고 진흙탕 싸움이 되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다.
영화 초반엔 부부가 쌓아올린 10년이라는 시간에서 오는 정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 때문에 모든것을 체념한 듯 조용히 이혼절차를 밟는 두 남녀를 보여준다. 상대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도 그냥 대충 넘어가게 되는게 바로 오래된 커플의 문제점이다. 니콜이 어머니가 있는 고향인 LA로 돌아가면서 갑자기 '이혼소송'으로 까지 번지게 되는데 니콜은 변호사인 '노라 팬쇼(로라 던)'를 만나기 전까지 아들과 남편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나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숨을 거둘 때 까지 목을 놓지 않는 방식으로 싸우는 변호사 노라 팬쇼는 의뢰인을 아들 쯤으로 생각하는 찰리의 변호사, '버트(알란 알다)'와 대결하면서 니콜을 어느정도 우위에 앉혀주게 된다. '처음엔 이렇게 까지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라고 생각하던 부부는 온데간데 없고, 찰리가 아들인 헨리의 특성을 잡고 늘어지는 니콜과 노라 팬쇼 덕분에 변호사 버트보다 훨씬 호전적인 '제이(레이 리오타)' 라는 변호사를 기용하면서 점입가경에 이르는 이혼소송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준다. 당사자도 잊고있던 사소한 행동이나 오랜기간동안 찰리와 잠자리를 갖지 않던 니콜, 어찌됐든 불륜을 저지른 찰리 등 바로 옆자리에서 의뢰인들의 약점으로 부부의 얼굴에 엿을 날리는 변호사들은 찰리와 니콜의 이혼소송을 순전히 '일거리' 쯤으로 치부하며 온갖 칼날들을 상대 의뢰인에게 던져댄다.
결국 현타가 온 두 남녀는 마지막으로 솔직한 심정을 서로 이야기하지만 10년동안 여자는 여자대로 곪아있었고 남자는 '왜 그때 이야기하지 않고 이제야 이야기하냐' 며 서로 으르렁댄다. 영화의 핵심은 파국까지 치달으며 진행되는 이혼소송중에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의 사람들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대목에 있다.
니콜이 찰리를 만나서 헐리우드 영화업계에서 한 발 물러나 10년동안 찰리가 연출한 이름도 없던 연극을 했던 건 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찰리 역시 니콜을 연극의 소모품 정도로 생각했든 그렇지 않든간에 그녀 덕분에 결국 연극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수 있었고 상금도 받으며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TV도 보지 않는 꽉 막힌 외골수같은 연극 감독을 옆에서 끊임없이 지지하고 지탱해준 니콜이 대단하고 그녀를 발판삼아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수 있었던 찰리는 좀 비열하다.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는 이유가 외도를 해야하는 사유는 되지 못하지(요새는 사유가 되려나?). 알고보니 자신이 구원받은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부여하는 일종의 도구처럼 느껴진다는 니콜의 감정을 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해줬으면 이혼까지 가는 사단은 안 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니콜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 이라는 배우에게 다시금 신뢰가 갔다. '판타스틱 소녀백서(ghost world, 2000)' 에서 처음 보고 그 뒤로 쌓아올린 필모그래피는 예술성 짙은 영화와 그녀의 몸매를 상당히 부각시키는 팝콘무비 사이를 오락가락 했었는데, 마블의 '아이언 맨 2(2010)' 이후로 굳어진 것 같은 '섹시한 여전사' 이미지를 어떻게든 벗어버리려는 시도를 왕왕 한다.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도 이혼을 앞둔 여성의 감정연기로 진이 빠질 때 까지 우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데 남편의 외도에서 시작한 자신의 진짜 자아와 가치를 찾아가는 연기를 너무 잘 보여줘서 허스키한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금 무장해제되었다. 특히 LA의 고장난 니콜 집 대문을 세 가족이 닫으며서 보여주던 '우리 이제 이렇게 단절되는거야?' 하는 어쩔줄 몰라하는 순간적인 표정연기는 압권이었다.
밍숭맹숭한, 어딘가 감정이 결여돼보였던 남편 찰리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도 특유의 뭉툭한 중저음 목소리와 더불어 소송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감정적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데, 꽤나 설득력 있는 연기가 일품이다.
영화 장르에 '코미디'가 들어가 있는 만큼 찰리가 어쩔줄 몰라하는 상황들도 재미있었고.
찰리는 영화 마지막에, 영화 초반에 나왔던 '부부상담' 센터에서 서로의 장점만 노트에 적어, 상대방에게 들려주던 걸 끝내 하지 않은 니콜이 쓴 글들을 본다. 찰리와 니콜은 그제야 자신들이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고 가정을 지키려 고군분투했는지 떠올리지만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후였다.
본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하면서도 알고보면 다 상대방에게 맞춰주느라 그랬던 걸 깨닫게되는 장면들은 영화 결혼 이야기의 백미다. 니콜과 찰리가 서로를 물어 뜯으며 미쳐가는 걸 보면서 좀 더 행복한, 일상적인 부부생활이 문득 보고싶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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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결혼이야기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라 국내 상영관에서는 한정적으로 상영한다. 특히 CGV는 넷플릭스를 싫어하는지 이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도 본인들 상영관에선 단 한 번도 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나도 넷플릭스에서 봤다. 결혼이야기는 메가박스를 비롯한 씨네큐브 등의 아트 시네마 전문 상영관에서 주로 틀고있으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싶은 사람은 네이버에서 결혼 이야기를 검색하고 상영관을 고른 뒤에 예매를 진행하면 좀 더 수월할 것이다.